이대로 끝이야?

<SBS 스페셜>(연출 이광훈) 엔딩 자막이 오르자 스친 생각이다. 지난 23일 <SBS 스페셜>은 '워싱턴 거리에는 쌍둥이 자매가 있다' 편을 방송했다. 1981년 한국에서 태어나 7살이 되던 해 "이모네 집에 가 있어, 아빠가 곧 데리러 갈게"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미국으로 입양된 쌍둥이 자매(민미영,미경•31) 이야기였다. 방송에 따르면 자매는, 결코 누군가를 입양해서는 안 되는 양부모에게 입양 돼 학대를 받으며 살다가 성인이 되던 해 양부모를 떠나 워싱턴 D.C.에서 노숙자로 지내고 있었다.

12,000명의 노숙자가 떠도는 워싱턴. 노숙인 쉼터 앞에서 취재를 시작한 제작진은 1시간 만에 자매를 만나게 된다. 지난해 봄, 워싱턴에 있는 한국 영사관 앞에서 '한국으로 보내달라'며 시위하는 자매를 기사로 접한 SBS 제작진이 이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눈 앞에 있는 자매. 그러나 제작진은 먼 발치에서 바라볼 뿐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다. 다음 날 같은 장소에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자매를 향해 제작진이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건넸다.

"실례해요. 먹을 것 좀 드리고 싶어요."
"싫어요. 싫어요. 그냥 가세요. 괴롭히지 말아요. 경찰 불러."
"괴롭히려는 게 아니에요. 음식을 나눠 먹고 싶었어요." 

 사람들과 단절된 채 생활하고 있는 쌍둥이 자매.

사람들과 단절된 채 생활하고 있는 쌍둥이 자매. ⓒ SBS 화면캡처


간단한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자신들을 향한 호의도 자매는 날카롭게 받아쳤다. 며칠 뒤 제작진은 한 살 터울 동생(민복기 씨)과 함께 다시 자매를 찾았다. 26년 동안 떨어져 산 오누이. 그러나 누나들은 한국에서 온 동생을 쳐다도 보지 않는다. 당황한 동생은 꿈에서만 보던 누나들이 앞에 있지만 아무 말도 못한 채 한국에서 가져온 아버지 사진을 건넬 뿐이다. 사진을 보면 옛 기억을 떠오르지 않을까. 하지만 누나는 사진을 보기는 커녕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피붙이도 소용없었다. 모든 것을 지나치게 경계하고 배척하는 쌍둥이 자매. 입양된 이후 26년간 어떤 일이 있었기에 자매들은 이토록 폐쇄적으로 변한 것일까. 제작진은 '입양된 가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한 뒤 노숙 생활을 하기 전 자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 양부모에게서 벗어난 자매는 2003년까지 네바다주에서 거주하다 2004년,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강제침입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이후 노숙자 보호소에서 생활하다가 2010년 매릴랜드주를 거쳐 워싱턴에서 노숙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노숙자 신분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편지 한 통이 그들을 바꿔 놓았다. 버림 받은 것이 아니라 납치를 당해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라 믿고 살던 자매에게 한국 아버지의 '가난해서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버렸다'. 26년간 버텨왔던 믿음이 깨져버린 자매는 그렇게 무너져내렸다.

 한국에서 남동생이 찾아왔으나 자매는 반응이 없다.

한국에서 남동생이 찾아왔으나 자매는 반응이 없다. ⓒ SBS 화면캡처


그런 자매에게 제작진이 손을 내밀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취재 마지막 날에도 자매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입양 이후 자매의 삶을 전하지 못했다. 주변 인물을 통해 전해 듣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한인타운에서 자매를 만난 적 있다는 청년, 며칠간 자매를 돌봐준 한인 이웃, 슈퍼마켓 주인, 그리고 주변의 노숙자들. 자매와 지속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인물들에게서 자매의 속사정을 전해듣기는 어려웠다.

'자매들이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자매의 양부모가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소아성애자인 것 같다'는 워싱턴 한인교회 목사의 말을 통해 자매의 과거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이번 <SBS 스페셜>은 제목 그대로 '워싱턴 거리에는 쌍둥이 자매가 있다'를 지켜봤을 뿐, 이후 이들이 한국에 돌아올 것인지,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 수 있는지 등 이들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해 주지 못했다.

텍스트를 통해 자주 접한 '국외로 입양되는 한국의 아이들 수가 많다'는 사실과 '더 나은 환경에서 자식이 잘 자라주길 바라며 입양을 보낸 부모의 바람과 달리 실패한 케이스도 많다'는 적나라한 현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이번 방송은 '입양'하면 늘 따라오던 문제점을 다시 확인하는데 그쳤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방송은 끝났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이대로 끝내도 될까.

SBS 스페셜 해외입양 입양 이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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