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애니메이션<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더빙한 배우 강소라.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픽사 애니메이션<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더빙한 배우 강소라.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강소라는 세심하다. 태풍 산바로 비가 줄기차게 내리던 17일, 우산을 받친 채 카페 밖에서 자신을 촬영하는 사진기자를 향해 강소라는 연신 "아이구 어떡해"라며 걱정을 했다.

근데 또 막상 가족에게는 무뚝뚝하다. 강소라가 더빙을 맡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 VIP 시사회 일정을 깜빡하고 부모님께 알리지 못했단다. 다른 사람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어머니만 참석했다니, 참으로 '쿨'한 가족이다.

픽사의 13번째 작품이자, 처음으로 여성 그것도 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강소라는 메리다 역을 맡았다. 곱게 빗으려면 3박 4일은 걸릴 듯한 빨간 곱슬머리를 가진 메리다는 드레스보다 활쏘기를 좋아하는 거친 공주님이다. 공주의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호방하게 웃고, 소리를 지르는 메리다 때문에 강소라는 녹음 첫 날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했다.

메리다는 그동안 강소라가 맡았던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강소라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던 영화 <써니>의 하춘화가 발차기 하던 포스를 떠올려도 좋다. 드라마 <드림하이2>의 신해성처럼 씩씩하면서도 발랄하다. 실제 강소라의 성격도 그 캐릭터들에서 조금씩 따오면 된다. 그는 "춘화처럼 털털하지만, 메리다처럼 남자한테 의지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해성이처럼 상처도 잘 받는다"고 말했다. 

 픽사 애니메이션<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더빙한 배우 강소라. 태풍으로 인해 많은 비가 내린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미소짓고 있다.

태풍으로 인해 많은 비가 내린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강소라가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그놈의 빵 때문에... 가는 연기학원마다 퇴짜"

강소라가 가장 좋아하는 픽사 작품은 <월E>(2008)다. 그냥저냥 아는 제목을 대는 줄 알았더니, "이 세상에 그 사람과 나만 남은 상황에서의 사랑이 아름답다"며 "사는 게 점점 삭막해지니까 최후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로봇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술술 풀어놓는 감상평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우주로 떠난 후, 지구에 홀로 남은 폐기물 수거처리용 로봇 '월E'에 대해 꽤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 메리다 역을 맡기 위해 디즈니 아시아 지역 관계자와 사전 미팅을 했을 때, 보너스 점수를 얻은 것도 디즈니 팬으로서 쌓인 지식 덕분이다. 관계자는 <노틀담의 꼽추> 여자 주인공의 이름을 물었고, 강소라는 디즈니 내부 직원들도 가물가물해 한다는 '에스메랄다'를 단번에 맞췄다고. 

 픽사 애니메이션<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더빙한 배우 강소라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픽사 애니메이션<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더빙한 배우 강소라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어릴 때부터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의 팬이었던 강소라는 외동딸을 공주처럼 키우고픈 엄마의 바람대로 공주풍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곱게 자라 선생님이 되어서 같은 선생님과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꿈과 달리, 강소라는 언젠가부터 그 이상향에서 멀어져갔다.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치마 말고 청바지만 입지 않나. 빵만 먹어서 살이 찌질 않나. 무협지를 보질 않나. 외동딸이라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서 주로 책을 봤는데, 무협지를 좋아했거든요.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연기를 하겠다고 했으니 부모님으로선 '놀랠 노'자였죠. 근데 뚱뚱하다고 가는 연기학원마다 퇴짜를 맞았어요. 절 받아준 학원을 다녔어요.(웃음)"

빵을 너무 사랑한 탓에 몸무게가 70kg에 육박하기도 했었던 강소라는 부모님에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20kg을 감량했다. 그리고 '독한 계집애'라고 인정받았다. 지금도 통통한 볼살이 가장 스트레스라는 그는 "이것만 없어지면 하늘을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볼을 감쌌다.

"뭐든 혼자 해버릇, 남에게 의지하는 게 어렵다"

 픽사 애니메이션<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더빙한 배우 강소라.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강소라는 영화 <써니>에서 하춘화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 이정민


강소라가 연극영화과를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갈등이 심했던 것처럼, 메리다의 엄마인 엘리노어 왕비는 '공주의 품위' 때문에 사내 같은 딸과 늘 싸운다. 그런 엄마를 조금 '바꿔' 달라고 마녀에게 부탁했을 뿐인데, 주술에 걸린 엄마는 곰으로 변하고 만다. 메리다가 정해진 시각까지 마녀가 낸 문제를 풀지 못하면, 엄마는 평생 사람이 될 수 없다.

메리다가 곰의 모습을 한 엄마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후반부 장면을 녹음할 때, 강소라는 "실제로 눈물이 나서, 대사를 잘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목이 메였다"고 말했다.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감정 이입이 된 강소라의 목소리는 '우는 흉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주 정확한 발음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삽입될 수 있었다.

 픽사 애니메이션<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더빙한 배우 강소라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소라는 2009년 영화 <4교시 추리영역>으로 데뷔했다. "당시 대학교를 휴학하고 놀고 있었다"는 그는 "'노느니 가보자'는 마음으로 집에 있던 차림 그대로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덜컥 붙었다"고 회상했다. ⓒ 이정민


엄마의 잔소리 없이 활 하나만 있으면 세상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메리다처럼 강소라 역시 뭐든 혼자 하는 게 익숙한 사람으로 자랐다. 하지만 때로는 그게 부담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언젠가는 혼자가 될 수 있으니까 앞길을 빨리 개척해서 부모님한테 보태드려야겠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부유한 편이 아니어서 제가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잡일 같은 걸 했죠. 하다못해, 슈퍼 일을 잠깐 봐주고 500원씩이라도 받았어요.

뭐든 혼자 해버릇 하니까 '제가 할게요'라는 말은 잘 하는데, '해주세요'라는 말은 절대 못해요. 그나마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남에게 의지라는 걸 하게 됐죠. 하지만 전 아직 어린데, 주변에서는 이미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곤 해요. '쟤는 괜찮겠지'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강소라도 엄마 눈에는 늘 아이처럼 보이나보다. 이제는 엄마보다는 매니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딸에게 "밥은 먹었니" "저녁엔 뭐 해줄까" 물어보며 챙긴다고. 강소라는 공주 이야기이기 전에 모녀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두고 "엄마와 딸이 함께 보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추천했다. 모녀관계에 대한 팁도 있다. 웬만하면 대화로 해결할 것, 오해가 생기기 전에 미리 풀 것.  

 픽사 애니메이션<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더빙한 배우 강소라.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맑은 눈동자로 비오는 창 밖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픽사 애니메이션<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더빙한 배우 강소라.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카페에서 맑은 눈동자로 비오는 창 밖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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