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29일 밤 서울 구수동의 한 주점에서 1990년대 후반 H.O.T를 담당했던 정해익씨와 젝스키스를 담당했던 김기영씨(왼쪽에서 두번째와 세번째)가 야사를 비롯한 당시의 흥미진진했던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구수동 기똥차에서 1990년대 후반 H.O.T를 담당했던 정해익씨와 젝스키스를 담당했던 김기영씨(왼쪽에서 두번째와 세번째)가 야사를 비롯한 당시의 흥미진진했던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 이정민


1990년대에는 IMF만 있는 게 아니었다. 1998년 청소년보호법이 강화돼 각 방송사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는 복장규제가 있었다. 염색과 귀걸이는 모두 금지. 찢어진 청바지도 입을 수 없었고, 방송 전 프로그램 담당 PD에게 의상을 검사받아야만 했다. 21세기를 앞두고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냐 했겠지만 이것은 지금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 해저마을에 살면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탈 것만 같았던 그 21세기, 지금에도 말이다.

1997년에는 H.O.T와 젝스키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지금은 배우로 활동하는 엄정화와 임창정도 있었고, '롱다리 미녀' 김현정도, 남성듀오 터보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얼굴 없는 가수' 조성모도 등장했다. 아이돌 그룹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가요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음악도, 가수들도 다양했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스타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낼 수 있고 트위터에서 말도 걸 수 있다지만 당시 좋아하는 연예인은 손에 닿을 수 없는 존재, 즉 스타 그 자체였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스타를 '우상'보다 '소모품'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엔 좋아하는 가수를 바꾸면 "잡팬" "변심"이라고 몰아세웠지만, 지금은 당연해지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고성 물품' 보내기도..."가래침 든 물통도 받아봐"

 <응답하라 1997>의 '빠순이들'

<응답하라 1997>의 '빠순이들' ⓒ tvN


"클럽 H.O.T(H.O.T의 공식 팬클럽 이름)는 일관성 있게 단체행동한다고 흰색 풍선을 들었지. 지방 팬들은 임원들이 상의해 차를 대절해서 데리고 오고. 질서는 참 잘 지켰다. 다만 차 넘버를 많이 떼어갔지. 오죽했으면 떼어다가 차 안에 넣고 다녔을까. 고속도로에 다니면 사람들이 신고하고 그랬다. 넘버도 없는 차가 지나간다고. 숙소에 들어와 속옷도 가져갔는데 전엔 큰맘 먹고 샀던 내 명품 청바지까지 가져갔더라. 어찌나 화가 나던지..." (정해익, 이하 정)

팬들은 좋아하는 이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듯, 라이벌을 향한 감정 또한 솔직히 드러냈다. 베이비복스 간미연은 문희준과 열애설이 난 후 면도칼과 눈을 도려낸 사진 등을 받기도 했다. H.O.T 팬은 젝스키스에게, 반대로 젝스키스 팬은 H.O.T에게 선물을 가장한 '경고성 물품'을 보내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되게 심했다. 누가 팬에게 물통을 받아 오는데 뭔가 묵직하더라. 알고 보니 상대편에서 가래침을 모아 보냈더라." (김기영, 이하 김)

"요즘도 팬클럽들이 '조공'(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하고자 보내는 물품)을 하는데 음식을 선물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앙심을 품고 이상한 음식을 보낼 수도 있으니..." (정)

 tvN <응답하라 1997> 정은지

tvN <응답하라 1997> 정은지 ⓒ CJ E&M


'그래도 그 시절은 아름다웠다'..."팬 문화, 당시 청소년에겐 돌파구였다"

이렇게 안티 팬이 스타를 공격하듯, 팬들도 비뚤어진 팬심을 표출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상털기'다. 여전히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장난전화 그만하라" "주민등록번호 도용하지 마라"고 하소연하지만 이는 15년 전에도 그랬다. 전화번호를 바꿔도 3일 안에 알아내고, 국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취소해 긴급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그래도 두 사람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수 따라다니는 팬들을 사회적 문제로 여기기도 했지만 사실 순기능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 노래를 들으며 학구열을 불태우지 않았나. 줄 서서 기다려서 카세트테이프 하나 산 뒤 늘어질 때까지 듣고, 방에 브로마이드도 붙여 놓고. 콘서트 가려고 공부 열심히 해서 용돈을 받기도 하고. <응답하라 1997>에 남기는 댓글들을 보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더라.

요즘 그런 팬 문화가 없는 이유는 가수가 너무 많아서이지 않을까. 여전히 학교  생활은 고달프고, 학원 폭력도 있지만 당시에는 지금에 비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없었다. DDR은 있었지만. 검찰청에서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팬 문화는 일종의 돌파구이자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었던 것 같다." (정)

파릇파릇한 1990년대생에겐 '고릿적 이야기' 같을 수도 있다. 쎄시봉, 7080에 열광하는 앞 세대 사람들을 보며 우리 또한 그랬으니. 영화 <건축학개론>에 이어 tvN <응답하라 1997>까지 1990년대를 재조명한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때 그 시절에 묻어두고 온 아련한 추억이 있기 때문 아닐까. 이해 못 해서 아쉽다고? 잠시만 기다려라. 10년쯤 지나면 당신들이 공감할 <응답하라 2007>이 나타날 테니.

====1997년 당시 H.O.T와 젝스키스 매니저를 만나다 관련기사====


[기억하라 1997①] 우리들의 맹세, 기억해 줄래?
[기억하라 1997②]스타...지금은 '소모품', 그땐 '우상'이었다

H.O.T 젝스키스 응답하라 1997 기억하라 1997 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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