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소녀

하품소녀 ⓒ 필 필름


단편영화 <연거푸 하품을 하는 소녀는 나이를 먹어 가는 중인가 보다>(이하 <하품소녀>)는 일반적이면서도 다소 독특한 인물 유형을 만화적으로 풀어낸다. 영화는 현실에 밀착해 있으나 현실에서 이탈하고 싶어 하는 찐이(이은경 분) 내면의 이중적인 욕망을 그려낸다. 그러면서 무기력함 안에 존재하는 꿈과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강한 내면의 외침을 낭중지추처럼 잘 형상화해내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삶이 고통스럽다고 누가 표현한다면 식상하다. 솔직히 액면 그대로 다가오지 않는다. 해서 이채현 감독은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비틀어 보여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냥 재미나고 신나는 역설적 표현 방식이, 이 영화 전체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여기에서 작품 전반을 관조하는 '하품'은 지루한 일상의 코믹성을 양념처럼 획득한다.

이채현 감독의 첫 단편 영화의 출발은 매우 실험적이다. 영화의 공간은 연극 무대 위에서 시작되어 연극 무대 위에서 막을 내린다. 이러한 영화 속의 무대 도입 설정은, 영화의 분위기를 지극히 몽환적이며 만화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하품소녀

하품소녀 ⓒ 필 필름


마을버스 안, 그리고 교실 안 인물의 유형들은 그 무엇에도 감흥 없는 요즘 세태의 특징을 각각 표정으로 잘 표현해 낸다. 따라서 영화의 현실은 여기서 연극 공간이라는 무대 장치, 설정과 상황들이 영화 속 인물과 인물들을 끊임없이 무의미하게 충돌케 한다.

이 영화는 현시대의 청년들이 안고 살아가는 실존의 막막함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채플린' 영화처럼 재미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오늘도 찐이는 누구나 선망하는 교사란 임무를 다하기 위해 매일 같이 정해진 코스의 마을버스를 타고 마을버스 안의 승객들은 현대인의 잃어버린 꿈의 정체인양 답답하고 느릿하다.

결코 어리지도 않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찐이. 많은 걸 가진 것 같으면서도 또 현실에 쫓기며 살아가는 찐이의 주변부 인물들은 또 다른 찐이의 복제이기도 하다. 현실과 꿈 사이를 왕래하면서도 그 어느 방면으로도 적극적 자세를 취하지 못하는 찐이. 그가 가르치는 미성년 제자들 역시 과거의 찐이의 모습이다.  

 하품소녀

하품소녀 ⓒ 필 필름


카메라의 연출 기법 또한 흔들리는 버스 안의 표정과 불분명한 대사 전달까지 현대인의 불소통의 이미지들을 포착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하품 소녀>는 무의미한 일상과 한번 읽고 나면 삭제해야 하는 핸드폰 메시지 같은 사랑 타령에는 아무런 감흥 없는, 요즘의 세태의 특징을 꼬집고 있다. 

이채현 감독은 하품이 나는 권태로운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코 권태롭지 않은 젊음의 혈기, 낭만, 꿈 등을 반어법적으로 전달한다. 관객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이렇게 찐이의 입을 통해 뱉는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고. 그렇다. 누구나 성장통을 겪고 어른이 된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누구도 그 허망한 꿈이 현재에 안주할 수 있는 자양분이었음을 알게 된다. 해서 <하품소녀>는 누구나 한번쯤 통과의례처럼 거쳐 온 성장통을 뒤돌아보듯이, 꼭 한번은 봐야할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 시대의 청춘백서이다. 기존의 전통 영화기법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별난 감동을 관객에게 듬뿍 안겨준다.

아래는 지난 26일 오후 7시 30분경, 해운대의 '빌리진' 공간에서 시사회 이후 만난 이채현 감독을 인터뷰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채현 감독

이채현 감독 ⓒ 송유미


- 많은 영화감독들이 단편영화로 데뷔하고 또 좋은 단편 영화 하나 갖고 싶어 하는데요. 단편영화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단편영화라고 하면 짧은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영화인데요. 그것만으로는 매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영화마다의 매력은 있겠지만요. 대부분 단편영화는 신인감독들이나 학생들이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라 신선함은 있지만, 또 너무 모호하거나 심오해서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았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니 이번에 만든 작품이 기성에 대한 도전장이라고 말하는 뜻으로 전달되면 안 될 텐데요.(웃음)"

- 연극배우로, 또 화가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번에 단편 영화를 제작한 특별한 뜻이 있나요?
"질문이 어렵네요.(웃음) 실은 '필 필름(하늘개인날 극단 대표 겸임)' 곽종필 대표께서 6년 전에 써놓은 영화 시나리오를 보시고 영화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이야기에 출발해 이렇게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해서 출연 배우들이 '하늘개인날' 극단식구들이 많습니다. 물론 객원 기성 배우들도 몇몇 참여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연극과 영화는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닐까 해요. 연극무대에서만 작업을 할 게 아니라, 영화라는 장르에도 연극의 영역을 확장하자는 취지와 새로운 도전을 목표로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작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일반적인 영화처럼 만들지는 말자! 새로움, 독특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기로 합의하면서, 일반 영화와 다르게 소극장 세트를 만들어 차별성과 만화적인 느낌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토대로 만화적이고 코믹하게 만드는 데 모두들 집중했습니다.  

저의 길은 연극배우로 처음 시작했지만, 오늘은 감독이며, 내일은 또 다른 무언가가 되어있을 겁니다.(웃음) 제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한해서 주어진 일에, 주어진 역할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작업을 추구하고 있지만,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제 인생에 도전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이 한 가지 일에 집중을 하라고 충고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한 가지 일에 너무 몰두하다보면 그 속에 갇히거나 벽을 만납니다. 다양한 예술 작업을 통해 저는 새로운 에너지와 힘을 얻어 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었기에 계속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하품소녀

하품소녀 ⓒ 필 필름


- <하품소녀>를 통해 관객에게 주는 싶은 메시지가 특별히 있다면요.
"<하품소녀>는 일상의 지루한 현실에서의 일탈을 이야기합니다. 한때 꿈 많은 아이(소녀)였지만,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 일상 속에서 하품이나 연거푸 하고 앉아있는 모습 말입니다.

여기서 하품은 지루한 일상, 현실을 상징합니다. 꿈 많던 소녀 시절의 꿈과 활기를 역설적으로 나타냅니다. 가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만으로 활기를 잃어야만 하는 것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소녀 적 꿈을 간직하고 펼칠 수는 없나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해서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서 관객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 영화는 산업이자 예술이라고 합니다. 이 두 개를 조절하기가 힘들 텐데요. 이 감독께서는 앞으로 어느 편향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지요?
"꽤나 까다로운 질문이네요.(웃음) 예술과 상업적인 측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이 많은 것 같지만 그 만큼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겠지요. 너무 예술적이라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너무 상업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겉만 번지르르 해서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둘 다 지향하고 싶습니다."

 하품소녀

하품소녀 ⓒ 필 필름


- 이번 단편 영화를 제작하시면서 느낀 점들을 말씀해 주시면 합니다.
"먼저 제가 쓴 시나리오로 내가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 개인적으로 기쁩니다. 첫 작품이다 보니 막막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이 많았습니다. 소품 준비, 콘티 그림 하나하나 손수 직접 만들고 그려나갔습니다. 무엇보다 제작비 문제, 그리고 첨단의 영화 제작 시설 등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값진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하품소녀>을 장편으로 제작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하품소녀>를 장편으로 제작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작품이 단편으로 소박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필 필름의 곽종필 대표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출연한 배우들과 제작에 참여해 주신 많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채현 감독은 누구 ?

동서대 연극과 졸업
연극 <쓰레기 재활용되다>,<거미줄> 작, 연출 / <소녀-그리고 해답 찾기> 작, 연출, 배우 등으로 참여 / <조선형사 홍윤식 (부산시립극단)>조연출 참여 / <루시루시앙> 드라마투루기로 참여 / MBC무전기1300 12부작 방송 출연 / <그 남자 보이첵>등 외 다수 영화 연극 배우 및 스텝  활동 하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그 바다, 프러시안 블루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