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사람에게 가십이었다. 영화 <남쪽으로 튀어>와 임순례 감독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부터였다. 크랭크인을 앞두고 홍대 인근에서 열렸던 고사 때부터 이미 말이 많았다. 촬영이 시작된 뒤 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단들이 벌어졌다. 사실상 파국은 거의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남쪽으로 튀어>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품이다. 무능한 백수인 줄 알았던 아버지가 알고 보니 학생운동의 전설적 존재였다는 사실을 아들이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김윤석이 아버지 역으로 캐스팅되었고 그 밖에 오연수, 김성균, 한예리 등이 출연한다.

지난 21일 <남쪽으로 튀어>의 연출을 맡은 임순례 감독이 촬영 중 현장을 떠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사실이 외부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그에 앞선 20일 월요일이었다. 감독이 현장을 떠난 건 그 전 주였다. 영화는 80~90퍼센트 가량 촬영이 진행된 상태였다. 영화의 제작을 맡은 영화사 거미의 이미영 대표가 나머지 촬영을 지휘하고 있다고 했다.

<남쪽으로 튀어> 촬영장 떠난 감독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든 감독이자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대표로 있는 임순례 감독.

임순례 감독.ⓒ 유성호

감독이 현장을 떠나버린 초유의 사태를 둘러싸고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진 건 김윤석과 임순례의 갈등이었다. 김윤석이 현장에서 월권행위를 했고, 이를 참다 못한 임순례 감독이 현장을 떠났다는 것이다. 김윤석이 현장에서 연출, 촬영 방향에 대해 적극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타입이라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그는 극단에서 연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배우의 월권행위에 격분한 감독이 현장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실제 벌어진 일의 근본적인 원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애초 <남쪽으로 튀어>는 시나리오 각색이 잘 풀리지 않아 난항을 겪은 바 있다. 이때 김윤석이 직접 각색을 해왔고, 그 결과물이 워낙에 좋아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미영 대표는 김윤석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감독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통보 식으로 (김윤석이 원했던) 촬영 감독이 결정되었다. 조용규 촬영감독과 김윤석, 이미영 대표의 조합은 지난 <거북이 달린다> 때와 같은 것이었다.

본격적인 문제는 크랭크인 이후 현장에서 발생했다. 이미영 대표가 현장에 상주하며 다른 스태프들이 모두 지켜보는 상황에서 감독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 여러 차례 목격되었다. 이를테면 "왜 촬영 감독의 말을 무시하느냐"고 고함을 치는 등의 일이 있었다. 임순례와 이미영은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이었다. 결국, 갈등을 해결하는 스타일의 차이가 상호 간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쌓았다. 임순례 감독이 현장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처음 들려왔을 때 "대표는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 "김윤석이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있다"와 같은 (전파자들의) 자기 해석도 함께 포함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언론의 보도가 쏟아지면서 급격히 정리되었다. 22일 보도가 나온 이후 이미영 대표는 "임순례 감독과 부부처럼 호흡을 맞추며 영화를 함께 제작하던 중에 갈등이 있었다"고 코멘트했다. 그날 하루 동안 대체 몇 사람에게 "부부처럼 호흡을 맞추며"라는 말에 관련한 농담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현장 복귀를 위한 감독의 (공개되지 않은) 조건이 받아들여지고 상황이 정리되는 데에는 롯데엔터테인먼트의 강력한 의지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 임순례 감독은 현장에 복귀했다.

이번 사단은 이명세 감독의 <미스터 K> 하차를 상기시킨다. 완전히 같은 사건이라고 보기에 디테일은 다르다. 이명세 하차 사건의 경우 감독에게 또한 문제 소지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의 골자만 두고 들여다볼 때, 연출자에서 투자, 제작자로 권력 중심이 완연히 이동한 영화 제작환경의 변화를 감지해볼 수 있다.

23일 현장 복귀... '최종편집권 보장'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을 것

프리 단계에서 제대로 조율되지 않고 얼버무려진 것들, 이를테면 '그냥 현장에서 승부를 보면 되겠지'라는 감독과, 이를 지켜보며 과잉대응하게 되는 제작자의 동상이몽이 프로덕션 단계에서 기어이 돌출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연출자와 제작자 사이의 탄탄한 신뢰관계다. 그러나 이미 시스템만 따지고 보면 서로의 실질적인 위상 자체가 다르다.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고 생각한 감독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강수를 감행하게 하였던 그 요구사항은 무엇이었을까. 현장복귀를 위한 임순례 감독의 요구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최종편집권 보장'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을 것이라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나마 임순례 감독이었기에 강수라도 가능했다.

더 이상 감독의 개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위험요소를 순순히 받아들일 제작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그 위험요소가 종종 영화를 '영화'로 만든다는 사실은 유난스런 원리주의가 되었다. 시네아티스트들의 입지는 거의 사라졌다. 이게 과연 무턱대고 개탄할 일인지는 순기능과 악영향을 공정하게 따져볼 일이다. 산업이 거대화될수록 제작자를 비롯한 투자 배급사에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는 건 피하기 어려운 수순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가 향후 평균 제작비 이상 영화들의 몰개성한 기획상품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