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펼쳐진 야외공연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펼쳐진 야외공연 ⓒ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해임 파문으로 논란을 겪었던 전주국제영화제가 21일 새 집행위원장을 선임하면서 재정비에 들어갔다. 파문이 커지면서 지난 3개월간 혼란을 겪었던 영화제는 9월부터 새 위원장을 중심으로 내년 행사 준비를 위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신임 집행위원장으로 고석만 여수엑스포 총감독을 선임한 전주국제영화제의 선택은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지역 축제의 역할을 감당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영화제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화해야 한다"거나 "영화 외에 볼거리를 늘려야 한다"는 지역 언론의 요구를 수용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올해 영화제 폐막 기자회견에서 "영화제가 영화와 공연 말고는 볼 게 없었다는 시민들의 지적이 많다"는 지역신문 기자의 질문에 "영화제는 영화'도' 트는 축제가 아닌 말 그대로 영화제다"는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답변은 해임의 빌미가 됐다.

영화제 역할에 대한 지역 언론의 의견에 대해 영화인들의 의견은 상당히 비판적이었는데,  새 집행위원장 선임은, 결과적으로 영화제와 프로그래머의 갈등 원인이었던 지역 언론의 요구에 힘을 실어준 선택으로 풀이된다. 영화제 측은 지역 언론과의 갈등이 프로그래머 해임의 주된 사유가 아니라는 입장이었으나, 공개적으로 밝힌 핵심 사유 중 상당수는 지역 언론과 관계된 사안이었다. 

"영화와 공연 이외에 훨씬 다채로운 볼거리를 찾으신다면 지금 열리고 있는 한지문화축제를 비롯해 전주의 다른 축제를 찾으시거나 '여수엑스포'에 가시면 된다"는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폐막 기자회견 답변에 반응하듯, 여수엑스포 총감독을 역임한 인사가 집행위원장에 선임된 것은 재밌는 우연이다.  

"문화 자원은 많은데 보편화 대중화 산업화할 뭔가가 빠져있다"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 않은 마당에 고석만 신임 집행위원장이 영화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예단하기는 조심스럽다. 빼어난 드라마를 만들어 냈던 스타 방송 연출가로, 역량 있는 문화예술행정가로 능력을 검증받은 인사인데다 전주영화제 쪽도 그의 연륜과 경험을 통해 다져진 기획력과 리더십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EBS 사장 재임 시절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만들어 방송을 통해 다큐 영화를 소개한 것 등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방송의 공익성을 활용한 의미 있는 시도였고, 덕분에 < EBS 국제다큐영화제 >는 올해로 8회째를 맞으며 다큐영화의 저변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독립영화에 비중을 두는 전주영화제의 성격과도 맞는 부분이다. 

 여수엑스포 총감독을 맡고 있던 때 연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고석만 전주국제영화제 신임 집행위원장

여수엑스포 총감독을 맡고 있던 때 연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고석만 전주국제영화제 신임 집행위원장 ⓒ 임현철


영화제를 비롯한 문화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그가 여수엑스포 총감독을 맡으면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을 통해 기본적인 방향성을 유추할 수 있다.

고 위원장은 여수엑스포 기간인 지난 6월 전주영화제 이사를 맡은 지역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융합콘텐츠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문화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강조했다. 물론 여수엑스포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지역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문화가 밥 먹여 주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UEC(Urban Entertainment Center, 도심형 복합문화예술센터)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왔고, 구체적인 콘텐츠도 제안했다. 전라북도가 자원은 많은데 그것을 보편화, 대중화, 산업화할 수 있는 뭔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며 "전주만 해도 영화제와 대사습, 한옥마을 같은 자원이 있는데,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그런 것들이 제각각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주가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가려고 한다면 특히 UEC의 개념이나 기구, 체계를 주목할 것을 권하고 싶다"고 조언했다.

문화 자원의 보편화, 대중화, 산업화를 언급한 부분이나 제각각 놓여있는 자원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한 대목은 신임 집행위원장의 시각의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을 역임했던 그가 융합콘텐츠를 강조하는 부분도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전주영화제가 고석만 집행위원장 선임을 통해 대외적인 국제영화제로서의 위상 강화보다는 지역 문화 예술 축제로서 지역 문화 자원과 조화를 이루고 기능성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대외적인 면 보다는 내부적 축제성 강화에 초점 맞춘 듯

고 위원장이 10년 가까이 영화제를 이끌며 입지를 구축했던 전임 위원장과 비교할 때 영화계보다는 방송과 문화 행정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국내 주요 영화제 집행위원장들보다 상대적으로 연배가 높다는 점도 국제영화제로서 전주의 위상 강화를 염두에 둔 선택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영화제라는 것이 영화계 인사들의 사교장이자 네트워크를 다지는 공간이기도 한데, 영화계에 기반이 약한 60대 중반 인사가 국내외 영화인들과 관계를 다지고, 프로그래머 해임으로 실추된 영화제 이미지를 회복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소홀해지거나 기존 색깔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제는 영화'도' 트는 축제가 아니다"라는 발언이 지역 언론의 비판을 받고 끝내 해임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흐름에서의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영화인과 관객들이 전주가 '영화도 트는 축제'로 전락할까 봐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로그래머 해임에 대한 영화인들의 앙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점도 신임 집행위원장의 숙제가 될 것 같다. 전주영화제 측은 "전임 위원장이 이미 정리한 사안"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영화계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전주영화제는 신임 집행위원장 선임을 계기로 영화계 인사들과 소통을 위한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석만 전주국제영화제 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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