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영화계의 화두는 단연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다. 26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개봉 첫날인 25일 43만6622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간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첫날 오프닝 스코어(39만5951명)를 가뿐히 제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대박행진은 불 보듯 뻔하다.

영화진흥회에 따르면 영화 개봉 이틀 만에 누적 관객수가 100만 명에 육박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도둑들>은 26일 오후 4시 현재 예매점유율 42.4%로 2주 넘게 예매율 1위를 지켜온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근소한 차(42.1%)로 앞서며 1위에 올랐다. 그 덕분인지 27일 현재 배급사인 '미디어플랙스' 주가는 상한가를 쳤다.

호화 캐스팅의 스펙터클한 '도둑질'

 <도둑들> 포스터

<도둑들> 포스터 ⓒ 쇼박스

한국의 도둑들과 중국의 도둑들이 뭉쳤다. 그들의 목표물은 마카오 카지노에 있는 '태양의 눈물'이라는 빅 다이아몬드. 한 팀으로 활동하여 미술관을 터는데 성공한 뽀빠이(이정재 분), 예니콜(전지현 분), 씹던 껌(김해숙 분), 잠파노(김수현 분) 그리고 막 출소한 '초대받지 않은 여자' 팹시(김혜수 분), 그렇게 한국의 떼도둑들은 마카오 박(김윤석 분)의 주선으로 홍콩에서 중국의 떼도둑들과 만난다.

홍콩으로 간 한국 도둑들이 4인조 중국도둑 첸(임달화 분), 앤드류(오달수 분), 쥴리(이심결 분), 조니(증국상 분)를 만나는 장면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나름 솜씨로는 국제적인 도둑들이 한자리에 모여 주도면밀하게 전개하는 도둑질은 가히 천재적이다. 성공하기 어려운 도둑질이지만 2천만 달러의 달콤한 유혹은 그들을 도둑질의 현장으로 밀어 넣어버린다.

도둑들 서로 간에 물고물리는 배신과 반전은 최고의 긴장감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간다. 신비주의 그 자체인 마카오 박, 예전에 함께 활동하던 뽀빠이와 팹시를 배반하고 사라졌다가 이번 도둑질의 기획자 보스로 등장한다. 뽀빠이도 팹시도 믿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 실은 뽀빠이가 배반자였다는 반전으로의 이끎은 조금은 자의적이기도 하다. 줄타기의 명수지만 까칠한 성격에 더하여 자신밖에 모르는 예니콜, 그래도 그녀는 나름 자신의 캐릭터에 충실하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히트로 김수현을 기대했던 관객들이 그마나 전지현에게 위로를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수현은 전지현과의 러브라인에 충실하지만 배역의 무게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오로 등장한 신하균의 감칠맛 나는 연기 또한 기대 이상이다. 신하균으로 시작하여 신하균으로 끝나는 최동훈 감독의 재치는 <도둑들>이 도둑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여튼 캐스팅은 화려하다. <타짜>에 이어 다시 최동훈 감독과 호흡을 맞춘 김혜수는 이번에도 유감없이 도전적인 도둑의 캐릭터를 너무도 잘 소화해낸다. 금고털이의 귀재로 등장, 마카오 박과의 잊지 못하는 러브라인을 통하여 여성성 또한 잊지 않는다. 확실한 자기 색깔을 농도 짙게 연기한다. 호화 배우들의 스펙터클 도둑질, 참 볼만하다.

떼도둑은 영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마카오 박(김윤석 분)

마카오 박(김윤석 분) ⓒ 쇼박스


"도둑이잖아?"

마카오 박의 이 말은 '도둑놈이 도둑놈의 것을 도둑질하는 게 뭐 잘못 됐냐'는 뜻이다. 도둑이니까 도둑의 것을 도둑질할 수 있다. 도둑이니까 배신도 가능하다. 도둑이니까 마음이든, 물건이든, 사랑이든, 뭐든지 훔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도둑놈이 도둑질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도둑놈이 아니라고 우기는 도둑들이 도둑질을 한다.

88억을 하룻밤에 땄다는 전설적 레전드 마카오 박의 주도하에 그들의 도둑질은 관객을 도둑놈 세상의 한복판으로 끌어넣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스펙터클은 배우들의 스펙만큼이나 짜릿하고 폐부를 시원하게 만든다. 나는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를 한방에 날려 줄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떼법'이란 단어가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을 후벼 판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닥치는 대로 터는 떼도둑들이 '떼법'의 소유자들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지만 영화는 떼도둑들의 행동거지를 통하여 시원한 카타르시스에 젖게 만든다.

실은 우리 사회는 생존권 투쟁을 위해 길거리로 내몰린 이들이 '떼법'이라는 소릴 들을 때가 많다. 심지어는 대통령조차 귀족노조 운운하며 생존권 투쟁을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실은 그들을 거리로 내몬 이들이 '떼법'의 소유자들이 아닐까. 영화에선 도둑이라 인정한 이들이 도둑질한다. 현실에선 절대로 도둑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자들이 진짜 도둑질을 한다.

떼도둑은 실은 금붙이나 다이아몬드를 터는 이들이 아니다. 영화에서 떼도둑이 등장하는 게 아니고 사회에, 정치판에, 몰지각한 지도층들의 삶의 현장에, 일부 재벌들의 경영철학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잘 보이지 않아 더욱 교묘한 떼도둑들 말이다. 영화에선 드러내놓고 털지만 현실에선 교묘하게 턴다. 영화에선 무식하게 털지만, 현실에선 점잖게 턴다. 더 많이, 더 깊숙이.

영화에서 도둑들은 말한다. "도둑이잖아?" 그러나 현실에서는 수갑을 차고서 끌려가면서도 자신은 정치적인 모함에 걸려 든 것뿐이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들 말한다. 그냥 쉽게 생각해 보라. 도둑이라고 인정하는 도둑이 미운가, 도둑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도둑이 미운가. 난 후자가 더 밉다.

줄을 타는 자, 줄을 끊는 자

 <도둑들>의 스틸 컷

<도둑들>의 스틸 컷 ⓒ 쇼박스


<도둑들>은 <오션스 일레븐>을 생각나게 만든다. 카지노를 터는 방법이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게 있다. <오션스 일레븐>은 도둑들이 한마음이다. 그 도둑들은 의리도 있고 목표와 낭만도 공유한다. 그러나 <도둑들>의 도둑들은 의리도 없고 목적도 공유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음모와 배신,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한다.

역으로 그래서 더 재미있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를 통해 범죄영화의 흥미를 불붙였다면, <도둑들>을 통해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들을 내세워 우리들이 사는 사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줄을 타는 도둑이 있는가 하면, 줄을 끊는 도둑이 있다. 마카오 박이나 예니콜의 줄타기 실력은 가히 환상적이다. 이 사회에서도 줄 잘 타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영화가 정치판이나 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을 '줄타기'와 '줄 끊기'로 조각해 보려는 것은 아닌지. 대통령의 형님과 최측근들의 비리가 연일 매스컴의 주요 주제가 된 지 오래다. 그들은 줄을 잘 탔더랬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즉 그 줄을 멋지게 끊어야 한다.

이미 지난 이야기의 오버랩이긴 하지만 줄타기 하던 마카오 박의 줄을 끊은 뽀빠이는 전혀 마카오 박에게는 애정이 없다. 개인용도로 썼다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 위원장의 발언은 어느덧 정치자금으로 변했다. 줄타기일까, 줄 끊기일까? MB 형님의 검은 돈(?)은 어떤 길을 걸으며 MB와의 이별의 길을 사뿐히 지르밟을까? 그리 쉽지 않게 보인다. 줄타기와 줄 끊기 그렇게 쉬운 게 아니리라.

덧붙이는 글 *<도둑들> 감독 최동훈, 출연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등, 제작 (주)케이퍼필름, 배급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상영시간 135분, 2012. 7. 25 개봉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당당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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