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는 세상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창입니다. 오마이스타와 함께 대중문화를 비틀어도 보고, 정색해도 보려 합니다. '꼰대'는 되지 말자는 신념 하나로 넘어지면 또 '하악하악' 일어나서, 영화를 보고, 쓰며, TV도 보고, 음악도 듣고, 독립영화도 애호하고, 술도 애정하며, 사람도 사랑합니다. [편집자말]
 SBS 드라마 <유령>의 포스터

SBS 드라마 <유령>의 포스터 ⓒ SBS


고백하건데, SBS <유령> 1, 2회 만큼 압도적이고 완결성 있는 드라마의 출발은 전무후무했다는 인상이다. 김은희 작가는 법의학을 배경으로 한 전작 <싸인>에서도 대선 후보의 딸이 연루된 아이돌 가수의 살인사건에서 출발, 권력 관계과 정의를 설파하는 긴장감 있는 스릴러를 창조해낸 바 있다.

그렇게 <유령>의 기대감은 미안하게도 '소간지' 소지섭도,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통해 전격 발탁된 곽도원도 아닌 김은희 작가의 필력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유령>의 출발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기대 이상이었다.

해커 하데스의 출몰, 인기스타 신효정의 살인사건, 이를 뒤쫓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김우현(소지섭) 경위의 활약. 긴박감이나 속도감도 출중하지만, 살인범으로 누명을 쓴 '하데스' 박기영(최다니엘)과 김우현이 경찰대학 입학 동기인 친구였다는 사실이 일찌감치 밝혀지고, 박기영이 위험을 무릅쓰고 경찰청까지 잠입하는 활약을 보였을 때, 극의 긴장감은 무척이나 팽팽했다. 

그리고 2회의 단 20여 분이 지났을 때, 신효정의 살인범 '팬텀'이 놓은 함정으로 인해 김우현이 즉사한다. 주인공인 소지섭이 드라마 시작 단 80여 분 만에 죽는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 그리고 이어지는 박기영의 '페이스 오프'와 '얼짱' 경찰 유강미의 도움으로 이뤄낸 완벽한 신분 위장.

2회의 서스펜스의 극치는 박기영을 죽이기 위해 보낸 '팬텀'측 사내가 등장했던 병원신이다. 더욱이 신분 위장을 위한 부검 장소에까지 나타나 유강미를 방해하는 형사 권혁주(곽도원) 역시 긴장감을 유발시킨 장본인이었다.

여기에 김우현이 살인사건과 연루돼있다는 단서가 제시되는 한편 '팬텀'을 돕는 조력자들이 "나 혼자가 아니다"란 김우현까지 말까지 더해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혼란감이 드라마 전체를 지배했다. <유령>의 힘은 바로 이 정서에 기인한다. 거듭되는 반전과 서스펜서, 김우현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잠시 '팬텀' 조현민(엄기준)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무려 17부였다.

그때까지 <유령>은 '악의 축' 조현민과 대결하는 대서사의 중간 중간 박기영과 권혁주, 유강미를 제외하고 경찰과 검찰, 언론까지 신뢰를 보낼 수 없다는 서스펜스를 끊임없이 유발시켜 냈다. 경찰드라마와 스릴러 사이를 종횡무진 오가는 <유령>을 지배하는 이 정서야 말로 김은희 작가가 심어 놓은 '유령'의 핵심 정체다. 

 <유령>의 세 주역, 곽도원, 소지섭, 이연희

<유령>의 세 주역, 곽도원, 소지섭, 이연희 ⓒ SBS


<무간도>에서 출발, 독창적인 경찰스릴러로 자리매김하다 

유강미의 회상신, 정복을 입은 채로 "좋은 경찰이 되어라"고 후배에게 말하는 사망 전 김우현의 모습에서, 영화 <무간도> 시리즈의 "좋은 경찰이 되고 싶었어"란 유덕화의 명대사를 떠올리지 않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흑사회의 일원으로 잠입한 경찰과 경찰에 잠입해 승승장구하는 흑사회 스파이, 경찰 대학 동기인 두 남자의 운명적인 대결을 그린 <무간도>는 3부작까지 만들어지며 홍콩의 역사를 그린 시대물과 인간내면을 파헤치는 사이코드라마로 확장되어 갔다.

비장미나 초반부 디테일 등에서 <무간도>와 무척이나 닮아있는 <유령>이 그러나 독창적인 부분은 지점은 '해커'라는 범죄자와 이를 수사하는 사이버수사대의 경찰은 '절친'인 경찰대학 동기로 설정한 뒤, 이 둘을 한 몸에 뒤섞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 기저엔 더불어 김우현이 비리 경찰일지 모른다는 박기영의 회의와 믿음의 이중주가 깔려있었다. 다시 말해, 위장한 몸과 신분의 주인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면서도 그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인 박기영의 숙명.

경찰드라마로서의 <유령>은 이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명제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다. 더불어 '팬텀' 조현민이 출몰시키는 또 다른 '유령'들을 확인해 나가는 게임과도 같았다. 회를 거듭하면서 경찰청의 수장과 사이버 팀의 박사, 언론사 기자들까지 조현민의 수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식이다. 

김은희 작가는 이러한 전제를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서스펜스의 재료로 활용하는 동시에 경찰청에서 안에서 조사를 받던 조현민의 수하를 죽인 내부 변절자를 찾는데 한 회를 다 바치는 등 한 회 한 회 적극적으로 끌어 온다. 조현민에게 살해당한 한영석(권해효) 형사의 정체 역시 서스펜스와 반전의 도구였을 정도다.  

또한 <유령>은 형식적인 면에서 1,2 회로 구분되는 에피소드식 구성과 '팬텀' 조현민을 잡기 위한 대서사로 극의 구성이 혼재되어 있다. 김은희 작가는 신효정의 죽음과 1년 후 악플러 연쇄살인사건, 디도스 사건, 민간인 사찰까지 개별 에피소드를 해결해나가다 조현민을 전면에 등장시켜나가며 연속극으로서의 성격을 확대시켜 나갔다. '미드'나 '일드'와도 친숙한 젊은층과 연속극에 길들여진 대중들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영리한 포석이 아닐 수 없다.

개별 사건을 굳이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1년 전 신효정 살인사건과 10여 년 전 조현민과 김우현의 아버지가 연루된 세강그룹 사건을 연결시키는 치밀함 말이다. <유령>의 또 다른 독창성은 끊임없이 사람을 죽여 나가는 조현민과 이와 대결하는 박기영의 무기로 '사이버 세계'를 설정했다는 데 있다.

 <유령>의 두 주인공, 소지섭과 엄기준

<유령>의 두 주인공, 소지섭과 엄기준 ⓒ SBS


'사이버 세계'의 리얼리티와 유령이란 상징성 

"컴퓨터는 사람의 뇌와 똑같아요. 그걸 들여다본다는 건 그 놈의 머리 속을 본다는 것과 마찬가지죠.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것들, 탈세, 불법 비자금, 불법 부동산, 불법 정치자금, 주가조작. 컴퓨터 키보드 몇 번 치면 다 나오게 돼 있어요."

조현민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작은 아버지에게 돈을 무기로 삼은 그와 자신과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이버 세계를 지배하는 그는 악성코드, 해킹, 디도스 등으로 세강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고 급기야 경찰청까지 손아귀에 넣는다. 

악성댓글, 이메일, 동영상 유포, 해킹, 디도스 등의 용어가 매회 등장하는 <유령>의 리얼리티는 이렇게 '사이버 세계'가 현실세계의 거시적인 시스템은 물론 우리의 일상까지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댓글로 인한 피해, 디도스 공격으로 인한 피해, 해킹 인 죄 등 <유령> 속 사건들은 국내외 뉴스를 망론하고 우리가 언제라도 접할 수 있는 종류다. 조현민이 세강그룹 임원들을 옭아매기 위해 각종 비리의 증거들을 스마트폰 메시지로 보내는 장면은 결정적이다.

<유령>은 조현민의 이러한 세계관을 국내의 현실과 꽤나 수위적절하게 접목시킨다. 현실에 꽤나 근접해 있는 '사이버 세계'가 언제든지 침투당할 수 있다는 공포, 이를 뒤에서 지배하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들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경고. 그리고 이를 막는 이가 '유령'과도 같은 존재인 '해커' 박기영이란 점에서 오는 장르적 재미. 무엇보다 '사이버 세계'의 익명성과 맞닿아 있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유령>의 서스펜스 장치 .

이렇게 꽤나 다층적인 구조나 해석의 여지를 지닌 <유령>의 운명은 사실 <해를 품은 달>이나 <넝쿨째 굴러온 당신>처럼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는 포지션은 아니었으리라. 종영까지 단 2회를 남겨둔 <유령>의 최고 시청률이 고작 15%대라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유령>은 연출자 교체와 더불어 후반부로 갈수록 삐걱거렸던 <싸인>과 달리 출발부터 결말부에 이르기까지 고른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다. <추적자>에 이어 완성도 높은 장르드라마의 출현을 오래 기억해야 할 듯 싶다.

 지난 5월 서울 목동 SBS사옥에서 열린 SBS드라마스페셜 <유령>제작발표회에서 천재해커 하데스와 트루스토리신문사 대표 박기영 역의 배우 최다니엘, 사이버수사대의 메인 서버 김우현 역의 배우 소지섭, 사이버수사대 얼짱경찰 유강미 역의 배우 이연희, 세강증권 대표 조현민 역의 배우 엄기준, 트루스토리 기자 최승연 역의 배우 송하윤, 강력계 에이스 미친소 권혁주 역의 배우 곽도원이 거수경례를 하며 마무리 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목동 SBS사옥에서 열린 SBS드라마스페셜 <유령>제작발표회에서 천재해커 하데스와 트루스토리신문사 대표 박기영 역의 배우 최다니엘, 사이버수사대의 메인 서버 김우현 역의 배우 소지섭, 사이버수사대 얼짱경찰 유강미 역의 배우 이연희, 세강증권 대표 조현민 역의 배우 엄기준, 트루스토리 기자 최승연 역의 배우 송하윤, 강력계 에이스 미친소 권혁주 역의 배우 곽도원이 거수경례를 하며 마무리 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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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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