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독립영화제 별빛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 정동진독립영화제 별빛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 정동진독립영화제


다른 영화제들처럼 개막을 예고하는 번듯한 기자회견도 없다. 영화제를 알리기 위해 스타배우들을 내세우는 홍보대사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치열한 티켓 예매 경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정동진독립영화제(이하 정동진영화제)에 뭐 볼게 있지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제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 또한 여러 가지다. '세계 최초의(?) 현금박치기 관객상'이 존재하고,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전 작품 야외상영 독립영화제'도 다른 영화제와의 차별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벽도 기둥도 천정도 없고 에어컨도 소용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은 정동진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세계 유일 전 작품 야외상영...벽·기둥·천정·에어컨 없는 아름다운 극장

"칸영화제나 부산영화제도 정동진영화제의 특징을 못 따라온다"는 주장을 들을 때면 코웃음이 일며 허풍이 세 보이기도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다른 영화제들이 엄두를 못 낼 만큼 독창적이면서 창의적인 프로그램과 영화제 풍경은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주장에 수긍되기도 한다.

외형적 조건만 놓고 보면 세계적인 유명 영화제들이 부럽지 않다. 주요 영화제들이 해변이나 항구를 끼고 열리는데 이 조건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해안선이 넓게 펼쳐져 있는 바닷가와 '모래시계' 소나무로 유명한 정동진역. 게다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는 해수욕장까지 이런 환상적인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영화제는 사실 흔치 않다.  

 자유롭게 영화를 보는 정동진영화제 풍경. 모기장 텐트는 사연공모를 통해 영화제 측에서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로열석이다

자유롭게 영화를 보는 정동진영화제 풍경. 모기장 텐트는 사연공모를 통해 영화제 측에서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로열석이다 ⓒ 성하훈


영화제의 상징과도 같은 자유와 낭만은 또 어떤가! 별이 쏟아지는 달밤, 스크린 뒤를 지나가는 기차 소리, 바닷가 옆에 마련된 야외극장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보는 영화, 로열석으로 제공되는 모기장 텐트 등등. 정동진영화제는 추억을 양산할 만한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러니 이들의 자부심과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덕분에 지금껏 무수히 많은 국내영화제를 다녀본 중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영화제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꼽는다. 정동진영화제 역시 국내의 주요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큰소리를 친다. 

"정동진에 대해 모르면서 국내영화제에 대해 안다고 하지 마라. 정동진영화제를 맛보는 순간 우리의 말이 허풍이 아닌 사실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정동진영화제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들만 엄선해 상영"

 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 포스터

14회 정동진독립영화제 포스터 ⓒ 정동진독립영화제

매년 8월 초 첫 주말 개막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올해는 8월 3일 개막해 5일까지 열린다. 한 여름 독립영화 최대의 축제로 꼽히는 정동진영화제는 올해로 14회째를 맞이한다. 

1999년에 처음 시작했으니 나이로 따지면 부산영화제(1996년)와 부천영화제(1997년) 다음으로 국내 3번째다. 전주(2000년)에 비해서도 1년이 앞선다. 영문으로 같이 'JIFF'를 쓰지만 우리가 형이라며 목에 힘을 주는 이유다. 

개최기간은 2박 3일. 모두 7회 상영이 전부이나 짧고 굵은 영화제의 특성은 이미 한 번 와 본 사람들은 누구나 매력을 느낀다. 영화제의 매력을 맛 본 사람들은 그 추억을 쉽게 잊지 못해 여름만 되면 오매불망 이 영화제를 기다린다.

해수욕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멋진 풍광이 한여름의 정취를 돋우는 데다, 물놀이 중간에 모래사장에서 시켜먹는 자장면은 정동진영화제의 별미기도 하다. 휴양영화제의 원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영화'라는 점을 정동진 영화제는 잊지 않고 있다. 

올해 영화제도 국내 독립영화들 중 21편의 영화들을 엄선해 내 놓는다. 작품들 모두 화려하면서도 수준급이다. 음악영화로 유명한 유대얼 감독의 <에튀드, 솔로>, <은교>의 주인공 김고은이 출연한 <영아>, 박성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희망버스 러브스토리>, 정대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투 올드 힙합 키드> 등 국내 각종 영화제 등에서 선보인 작품들이 망라돼 8월의 밤을 독립영화 천국으로 안내한다. 

 2012 정동진독립영화제 상영작 유대얼 감독의 '에튀드, 솔로'

2012 정동진독립영화제 상영작 유대얼 감독의 '에튀드, 솔로' ⓒ 정동진영화제


정동진영화제의 특징은 재밌는 영화들만 골라서 선보인다는 것.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작품 선정 기준에 대해 "언제나 그렇듯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들만 선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는 몇몇 감독들이 직접 출품을 희망하기도 했으나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아 상영작에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매년 수 백 편의 작품을 보고 상영작을 선정하지만 놓칠 수 있는 영화들도 많다"며 "작품 상영을 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영화제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인기 작품은 관객들이 동전으로 직접 선정...쑥불로 모기 퇴치

독립다큐와 단편 영화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작은 규모지만 정동진영화제는 엄연한 경쟁 영화제다. 상영되는 작품 모두 본선 경쟁작이고 매일 1편의 작품을 선정해 시상한다. 3일 동안 3편의 작품이 선정돼 상금을 받는다.

정동진영화제 '땡그랑 관객상' 2011년 정동진영화제 모습. 상영 작품들중 관객들이 가장 재밌게 본 작품에 동전을 넣으면 가장 동전을 얻은 작품에게 관객상이 수여된다.

▲ 정동진영화제 '땡그랑 관객상' 2011년 정동진영화제 모습. 상영 작품들중 관객들이 가장 재밌게 본 작품에 동전을 넣으면 가장 동전을 얻은 작품에게 관객상이 수여된다. ⓒ 성하훈


독특한 것은 심사위원이 모든 관객들이라는 점이다. 인상 깊었거나 마음에 드는 작품명이 쓰여 있는 깡통에 동전을 넣어, 가장 많은 동전을 받은 작품이 수상작으로 결정된다. 이름 하여 세계 최초의(?) 현금박치기 관객상인 '땡그랑 관객상'이다.

동전의 액수를 차별하지 않고 모든 동전을 '평등화'시킨 것은 이 관객상의 특징이다. 500원이나 10원이나 동전 한 개의 가치로만 볼 뿐 액수로 차별하지 않는다. 가장 많은 동전을 받은 작품이 모든 동전을 갖는, 미국 대선에서나 볼 수 있는 '승자독식제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모기떼로부터 관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쪽에서 쉴 새 없이 피우는 '쑥불'은 정동진영화제의 낭만이다. 사전에 공모를 통해 '쑥불원정대'를 조직해 영화제 내내 피울 쑥을 구비해 놨다. 하루 3팀의 관객에게 제공되는 모기장 텐트 '로열석'은 사연 공모를 통해 선정하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27일까지 사연 신청을 받고 있는 게시판에는 로열석 제공을 바라는 관객들의 절절한 읍소가 줄을 잇고 있는 중이다.

 정동진영화제에서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피우고 있는 쑥불

정동진영화제에서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피우고 있는 쑥불 ⓒ 성하훈


하루의 상영이 끝난 후 관객과 영화인들이 함께 하는 뒤풀이도 매력적이다. 영화제 주상영장인 정동진초등학교 대강당에 마련된 장소에서 그 날의 관객상을 수여하고 독립영화 감독들과 배우들이 자원봉사자 관객들과 어우러져 즐거운 뒷담화 시간을 갖는다. 영화제 마지막 날 상영이 끝난 후 모든 관객과 함께 하는 기념촬영은 관객과 영화제의 간격이 존재하지 앟는 정동진의 추억이다.

영화제 최초 '쓰리 엠씨' 시스템...록밴드 '허클베리핀' 개막 공연

작은 독립영화제지만 준비는 결코 허술하지 않았다. 올해 개막식 또한 화려하게 펼쳐진다. 영화제 측은 "올해는 영화제 사상 최초로 개막식 사회자를 3명이나 두는 '쓰리 엠씨(3MC)' 체제로 개막한다"고 밝혔다. 

4년째 붙박이 사회자로 나서 매번 파트너를 갈아치우고 있는 <똥파리>의 배우 김꽃비가 올해도 예외 없이 사회를 맡았다. 이 자리를 몹시 탐냈던 <은하해방전선>의 배우 서영주 씨는 남녀 사회자를 뽑았던 전례를 생각해서 남장을 할 각오로 콧수염까지 준비하는 열정을 보여 결국 사회자로 선정됐다. 영화제 측이 크게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나머지 한 자리는 <종로의 기적>을 만들고 <두 개의 문> 크레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이혁상 감독이 맡았다.

개막 축하공연은 록밴드 '허클베리핀'이 펼친다. 중성적인 매력의 폭발적인 소리로 누구도 독창적인 음악성을 펼치고 있는 밴드의 공연이 정동진의 밤을 더욱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정동진영화제 개막 축하공연에 열광하고 있는 관객들

2011년 정동진영화제 개막 축하공연에 열광하고 있는 관객들 ⓒ 성하훈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매해 연인원 5000명 정도가 참여할 만큼 영화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의 숙박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야영장을 이용하면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관객들이 학교 내에 텐트를 칠 수 없다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학교 운동장에 영화제 측이 몇 개의 텐트를 설치하는 것은 이는 게스트 숙소"라며, "초청 감독이나 배우  등에게 민박집이나 호텔 대신 야영텐트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영화제 측은 혹시나 있을지 악천후에 대해 "비가 많이 올 경우 우의를 나눠 주지만 태풍도 정동진 영화제를 비켜갈 정도다. 날씨는 정동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장담했다.

강릉시네마테크가 주관하고 있는 정동진영화제는 2002년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이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에어스크린을 비롯해 야외상영 설비 일체를 제공하고 있다. 정동진독립영화제의 모든 영화는 무료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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