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자전거로 1시간을 달려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 도착했다. 구단 관계자에게 물어 미디어 카드 받는 곳으로 찾아 들어갔다. 지갑 속에는 2012 인천 유나이티드 홈 경기 시즌권이 들어 있었지만 이날만은 쓸 수 없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에 내린 '무관중 경기 징계' 때문이다.

김봉길 감독대행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는 지난 14일 오후 7시 30분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12 K리그 15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를 치렀다.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경기 종료 직전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는 바람에 1-1로 비겼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1승 6무 8패(10득점 20실점)의 성적으로 여전히 꼴찌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여전히 소리높여 이름을 외쳐주는 팬들이 있다.

무관중 경기의 비애

 인천 유나이티드 주장 정인환의 헤더 선취골이 포항 골문 왼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가는 순간.

인천 유나이티드 주장 정인환의 헤더 선취골이 포항 골문 왼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가는 순간. ⓒ 심재철


지난 3월 24일 저녁,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 기쁜 일이 생겼다. 아담해서 더 아름다운 축구 전용경기장을 개장한 이래 인천 유나이티드의 뜻깊은 첫 승리 기록이 만들어진 것이다. 상대는 대전 시티즌이었다.

FA컵 32강 토너먼트(vs. 김해시청 3-0 승)를 빼고 인천은 아직까지 정규리그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아마도 대전과 겨뤄 이겼던 그 경기 때문에 마가 낀 모양이다. 돼지머리라도 올려놓고 절을 해야 할 판이다.

사실 대전과의 그 경기는 문제가 없었다. 경기 종료 직후 대전 서포터즈가 인천 유나이티드 마스코트 유티의 탈을 쓴 직원을 폭행한 것이 불씨가 된 것이다. 이 사건이 번지다가 결국 양 팀 서포터즈간의 폭력 사태까지 이어졌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경기장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에게 엄한 벌을 내린 것이다.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들이 경기 시작 전에 경기장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들이 경기 시작 전에 경기장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심재철


이 일로 인해 일부 팬들도 등을 돌리고 구단 또한 여러가지 오해를 받았지만 인천 유나이티드는 그 죄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아무리 주중 경기였지만 수천 명의 관중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 채 무관중 경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폭행 당사자는 아니지만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즈 미추홀 보이즈는 경기장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 등 자발적 봉사활동을 펼쳤다.

일부 팬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서쪽 구석 출입구 밖에 매달렸다. 철문 사이로 조금 보이는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마음으로라도 선수들의 이름과 인천 유나이티드를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가 유일하게 보이는 경기장 밖 풍경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가 유일하게 보이는 경기장 밖 풍경 ⓒ 심재철


실제로 인천 서포터즈는 경기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석 옆 관중석에는 공식 명단에 올라가지 못한 2군 선수들과 부상 선수들이 모여 앉아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보도 여자 친구와 나란히 앉았고 수비형 미드필더 손대호와 왼쪽 미드필더 장원석도 그 자리에 있었다. 지난 경기 퇴장을 당한 반델레이 피지컬 트레이너도 올라와 있었다.

일부 언론은 텅 빈 관중석 사진만 찍어 보도하기에 바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극소수 서포터즈의 생각 없는 행동이 이렇게 큰 일을 만든 것이다. 아마도 이 사례는 우리 프로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교훈이 될 것이다. 초록 그라운드 위의 꿈을 키우는 어린이들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니 정말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기록지(매치 리포트)에 적힌 82명의 관중 숫자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아마도 출입증을 목에 걸고 앉았던 각종 언론 관계자들과 선수들 숫자일 것이다. 어찌 보면 무관중 경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자석 자리도 모자랄 정도였다. 어떤 언론사 기자는 여느 때보다 훨씬 많이 찾아온 기자들 숫자를 보고 놀라며 '빅 매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씁쓸하게 들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기장 밖 철제 울타리에 매달려서 소리 높여 응원해준 사람들이다. 대다수 언론들은 무관중 경기라는 사실만 부각시키며 비아냥거렸지만 거기에도 피가 끓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명목상의 무관중 경기였지만 분명히 거기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석 옆에 앉은 선수들도 인천 서포터즈의 큰 목소리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있기에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릴 수 있는 것이다.

양 팀 주장의 엇갈린 희비

 43분, 포항 아사모아의 오른발 슛이 이윤표의 팔에 맞는 순간,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43분, 포항 아사모아의 오른발 슛이 이윤표의 팔에 맞는 순간,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 심재철


일반 관중들의 함성은 없었지만 경기에 임하는 양 팀은 꽤 비장한 분위기였다. 꼴찌 탈출과 최근 10경기 무승(5무 5패)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던져야 하는 인천과 역시 최근 경기 기록이 초라한 포항의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웃은 것은 인천이었다. 28분, 미드필더 정혁이 차 올린 오른쪽 코너킥을 주장 정인환이 이마로 꽂아넣었다. 정인환을 전담한 포항의 마크맨은 몸싸움을 잘 하는 미드필더 신형민이었다. 공교롭게도 둘은 등번호도 20번으로 같고 팔뚝에 주장 완장을 차고 있었다.

신형민을 뿌리치며 솟구친 정인환의 이마에 맞은 공은 포항 문지기 신화용이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왼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갔다. 인천으로서는 근래에 보기 드문 멋진 선취골이었다.

상대 팀 주장에게 골을 내준 포항의 주장 신형민에게도 기회가 왔다. 43분에 아사모아가 오른발로 강하게 찬 슛이 인천 수비수 이윤표의 팔에 맞았다고 김완태 주심이 호루라기를 분 것. 이윤표는 유니폼 상의까지 걷어 올리며 몸통에 맞았다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들여 넣은 선취골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포항 주장 신형민의 오른발 페널티킥을 인천 문지기 유현이 막아내는 순간.

포항 주장 신형민의 오른발 페널티킥을 인천 문지기 유현이 막아내는 순간. ⓒ 심재철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포항의 주장 신형민은 오른발로 강하게 차서 왼쪽 구석을 노렸지만 순발력이 뛰어난 인천 문지기 유현의 다이빙에 걸렸다. 양 팀 주장의 희비는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나마 신형민이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종료 직전에 터진 동료 수비수 김원일의 극적인 동점골(신진호 왼쪽 코너킥 도움) 덕분이었다. 곧바로 종료 호루라기가 울렸을 때 인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드러누울 정도로 허탈함을 느꼈지만 포항 선수들은 마치 이긴 것처럼 기뻐했다.

이제 인천 선수들은 6월 17일 저녁 경기를 위해 광주로 떠나야 하고 포항 선수들도 서둘러 내려가 17일 FC 서울과의 안방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K리그는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2012 K리그 15라운드 인천 경기 결과. 14일 오후 7시 30분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 인천 유나이티드 FC 1-1 포항 스틸러스 [득점 : 정인환(28분,도움-정혁) / 김원일(90+3분,도움-신진호)]

◎ 인천 선수들
FW : 설기현(90분↔유준수) / AMF : 최종환, 김재웅(59분↔김태윤), 박준태(64분↔한교원) / DMF : 정혁, 난도 / DF : 전준형, 이윤표, 정인환, 박태민 / GK : 유현

◎ 포항 선수들
FW : 고무열, 박성호(46분↔신진호), 아사모아(67분↔노병준) / MF : 황진성, 신형민, 이명주(79분↔문창진)
DF : 박희철, 김광석, 김원일, 신광훈 / GK : 신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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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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