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지나가고 있다. 어느새 화사했던 봄꽃이 지고 장미가 피기 시작한다. 따뜻함을 넘어 더워진 날씨 속에 소매는 짧아지고 땀이 나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고 있다. 이 5월이 다 가기 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를 보고 뭔가 생각하고픈 사람들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종로다.

5월 말과 6월 초 사이, 우리가 주목할 만한 영화들이 선을 보이는 세 영화제가 종로와 청계천 일대에서 펼쳐진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영화제이지만 뭔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단순히 영화만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제에 참여한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도 있는 영화제이다.

규모는 작아 보여도 내용은 알찬, 관객이 만드는 영화제들이 5월 끝자락을 장식한다. 비슷비슷한 상업영화에 물린 관객들이라면 한번 발걸음을 옮겨도 좋을 것이다. 종로의 초여름을 구경하면서 말이다.

우리 다함께 놀자, 거리 두지 말고!

먼저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제12회 LGBT 영화제가 있다. 지난해에도 지면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지만 이 영화제는 바로 성소수자의 현실을 담은 세계 각지의 영화를 소개하는 비경쟁 영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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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테디베어상을 받은 아이라 잭슨 감독의 <라잇 온 미>다. 10년을 사랑해온 두 남자. 육체 관계를 이어가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두 남자 커플이 스스로 행복한 삶을 선택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폐막작도 흥미롭다. 50년대 전쟁의 상흔에 지친 한국인들의 열렬한 인기를 얻었던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이다. 이 영화에서는 지금은 사라져가는 여성국극을 추억함과 동시에 당시 남장 배우들에게 열광하는 여성 관객들의 팬덤 현상을 다루고 있다. 스스로 왕자가 되기로 결심한 소녀들이 그 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공연히 '성소수자' 영화제라고 뭔가 심각한 이야기만 있을 것이란 생각은 금물이다. '우리, 다함께 놀자!'라는 슬로건처럼 이 영화제는 그저 아무런 거리를 두지 말고 자연스럽게 '다함께 놀면' 그만이다. 때론 유쾌하게, 때론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만 되어있으면 충분히 이 잔치를 즐길 자격이 있다. 그저 다함께 놀면 된다! 어울리면 된다!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소리없는 외침'이 된다

다음날인 25일에는 청계광장에서 영화제가 열린다. 일단 이 영화제는 공짜다. 청계광장을 지나가다가도 거리낌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이 말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행위가 곧 표현의 자유, 인권의 자유를 향한 소리없는 외침이 된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표현의 자유를 향한 외침, 제17회 서울인권영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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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동안 무료로 인권영화를 상영했던 인권영화제는 영리를 목적으로 상영하는 영화가 아니라도 무조건 상영등급을 받아야하는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벽에 가로막혀 거리상영을 계속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의 노동자, 장애인 등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미얀마(버마) 등의 평화를 위한 투쟁의 기록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개막작은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씨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희망버스의 진화를 담은 김정근 감독의 <버스를 타라>이며 28일 저녁 상영되는 폐막작은 용산참사의 진실을 둘러싼 기나긴 싸움을 담은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영화들이 저마다의 개성있는 표현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알린다.

날짜도 좋다. 25일부터 28일까지는 그야말로 '황금연휴'다. 연휴에 하루 정도는 청계천을 지나가다 슬쩍 광장에 들러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잠깐이라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뉴스가 전혀 알리지 않고 있는,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우리 이웃들의 진실. 잠깐이라도 이 진실에 귀를 기울여볼 때다.

한국 영화의 희망, 미리 한 번 만나보시라

이 두 영화제가 끝났다고 낙담하기는 이르다. 31일, 또 하나의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 독립영화인들의 축제, '인디포럼 2012'다. 31일부터 6월 7일까지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열리는 이 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미래이면서 한국 영화의 희망이 된 독립영화인들의 장·단편을 만나볼 수 있다. 미래의 작가, 미래의 배우들을 미리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매년 연말에 개최되는 서울독립영화제와 함께 독립영화의 축제로 우뚝 선 인디포럼의 특징은 바로 새로운 작가들의 신선한 영화들을 바로 접할 수 있다. 특히 각각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상영되는 단편영화들을 통해 영화인들의 고민과 그들이 표현한 우리의 자화상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즐거움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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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간 남자 주인공이 부의금을 훔쳐 데이트를 한다는 내용인 최아름 감독의 <영아>(<은교>의 김고은이 주연으로 나온다)와 서울의 한 전문계고 여학생의 취업 준비 과정과 그 후의 이야기를 다룬 한자영 감독의 <나의 교실>이 영화제의 시작을 알린다.

영화를 준비하려는 감독의 여정을 담은 예그림 감독의 <아마추어>와 무기력한 삶을 살던 한 청년이 우연히 본 여학생과 상상 속의 로맨스를 꿈꾸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박준석 감독의 <낯선 물체>가 대미를 장식한다.

상영시간마다 관객과의 대화가 있고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한번쯤 새로운 영화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영화인들과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그야말로 '딱'이다.

작은 이들의 연대, 모든 걸 열고 마음껏 즐기길

장황하게나마 영화제 소개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들 영화제의 지향점은 서로 다른듯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

아직 우리에겐 '아웃사이더'로 인식되어 있지만, 비록 손에 가진 것은 터무니없이 적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거리에서, 혹은 영화관에서 관객과 함께 이야기하고 연대하면서 힘을 조금씩 키운다.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을 주는, 이런 것들이 어우러졌다는 것이 이 영화제들을 한꺼번에 소개할 수 있는 이유다.

모쪼록 5월이 가기 전에 뭔가 색다른 경험, 뭔가 인상 깊은 이야기를 원한다면 종로와 청계천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축제'에 같이 어울려보면 어떨까. 그저 즐기고 놀면 된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기만 하면 된다. 모든 걸 다 열어놓고 마음껏 즐기시길(그러다 지갑도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 후원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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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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