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깔 희망버스>의 한 장면

<깔깔깔 희망버스>의 한 장면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레고 블럭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희망버스, 러브스토리>

레고 블럭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희망버스, 러브스토리>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지난 한 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김진숙 민주노동 지도위원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수정 감독의 <깔깔깔 희망버스>와 박성미 감독의 <희망버스, 러브스토리> 등 2편이 22일 신촌 아트레온 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여성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된 것.

여성 감독이 여성 노동자의 농성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두 편의 영화는 19일 개막한 여성영화제 최대의 화제작이었다. 특히 여성영화제는 '희망 조직하기'를 올해의 키워드로 설정해 '1% 대 99%'의 싸움 속 방향 전환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를 나타내 왔다. 좌절과 갈등의 시대 영화를 통해 희망을 불어넣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주제와 잘 들어맞는 두 작품의 상징적 의미는 컸다. 

관객들은 뭉클한 시선으로 한진중공업과 희망버스의 지난 1년을 회상했다. 2011년 독립영화 진영이 심혈을 기울였던 프로젝트답게 좌석을 가득 채울 만큼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수정, 박성미 감독은 "희망버스는 그 자체로 굉장히 놀랍고 훌륭한 소재였다"며 첫 상영에 대한 감회를 나타냈다.

영화로 완성된 '희망버스' 감동..."보수언론 왜곡에 작품 만들 생각해"

<깔깔깔 희망버스>는 6월부터 10월까지 5차례에 걸쳐 진행된 희망버스를 오롯이 담고 있다. 희망버스 여정 외에 다양한 행사는 물론 85호 크레인 주변에서 지원하는 날라리 외부세력과 노동자를 비추며 한진중공업과 희망버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85호 크레인과 희망버스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진숙을 걱정하는 고 이소선 여사의 모습, 장례기간 중 김진숙을 만나기 위해 영정으로나마 한진중공업을 찾는 모습을 비롯해 트위터 등 SNS의 활약상도 영화 담겨 있다. 전 국민적 관심 속에 마침내 승리한 과정을 통해 희망의 기운을 전달한다.

309일간의 험난한 농성을 마치고 크레인에서 내려와 눈물짓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모습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한해 좌절 속에 어렵게 싹튼 희망을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잔잔하게 묘사했고 뻔히 아는 내용이 새롭게 다가오며 길게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희망버스, 러브스토리>는 레고 블록을 활용해 9분짜리 애니메이션 단편으로 제작됐다.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희망버스와 이를 막는 자본 권력과의 충돌을 핵심만 추려서 묘사했는데, 크레인을 로봇으로 변신시켜 상상력을 결합했다. 로봇으로 변한 크레인은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함께 권력과 자본을 응징하기 위해 성큼성큼 발을 내디딘다.

2편의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희망버스, 러브스토리>의 제작 과정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농성을  '날라리 외부세력'으로 도운 박성미 감독이 <깔깔깔 희망버스>에서 비중 있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두 작품 모두 특색 있는 재미를 안겨주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화 상영 직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수정 감독은  "힘든 일을 헤쳐 가는 과정에서 기적 같은 경험을 체험해 즐거웠다"면서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멋지고 아름다웠다"고 제작 과정에서의 소회를 밝혔다.

박성미 감독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위에서 너무 밝게 지내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지난 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일부 보수 언론이 '희망버스가 부산영화제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에 화가 나 작품을 생각하게 됐다"고 제작 동기를 설명했다. "사람들을 모아서 만들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려 레고 블록을 활용해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감독들. 맨 우측부터 이수정 박성미 심혜정 감독 홍소인 프로그래머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감독들. 맨 우측부터 이수정 박성미 심혜정 감독 홍소인 프로그래머 ⓒ 성하훈


노조원 부인 "우울증에 자살하려다 희망버스 덕분에 살았다"

한진중공업을 소재로 만든 두 작품에 깔린 것은 '희망'이다. 절망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희망을 갖고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 냈음을 일깨워준다. 박성미 감독은 "우울증에 자살까지 생각했던 노조원의 부인이 '희망버스 덕분에 자살하지 않고 살았다'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희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4.11 총선 직후 상영되면서 이번 총선 결과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기도 충분해 보인다. 험난했던 과정을 겪었지만 희망버스의 여정이 마침내 원만한 타결의 동력이 됐다는 점에서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희망버스 영화는 시리즈로 이어져 <깔깔깔 희망버스> 외에 앞으로 2편 정도 더 나올 예정이다. 김진숙에게 밥을 올려준 황이라씨와 애타게 크레인을 지켜봤던 사람을 재구성한 <309일>, 한진중공업을 비롯해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 제주 강정마을을 돕고 있는 '날라리 외부세력'에 카메라를 들이댄 <날라리들>도 준비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며 좌절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노력이 영화를 통해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수정 감독은 후속 시리즈 작품에 대해 "제작비 여건에 따라 완성 시기가 결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깔깔깔 희망버스>는 여성영화제의 제작 지원을 받아 완성됐다. 

한편 한진중공업의 최근 상황과 관련해 날라리 외부세력의 핵심이기도 한 박성미 감독은 "조남호 회장이 노동자들의 생계비를 지급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전하며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을 요청했다. 김진숙 지도위원도 최근 트위터를 통해 '노사 간의 약속엔 수 천 명의 생존이 달려있다. 작업복 입고 집회에 참석하면 생계비를 안 준다는 건 합의문 어디에도 없다'며 생계비 지급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음을 알렸다.

 22일 여성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깔깔깔 희망버스>의 이수정 감독(좌측)과 <희망버스, 러브스토리> 박성미 감독(우측)

22일 여성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깔깔깔 희망버스>의 이수정 감독(좌측)과 <희망버스, 러브스토리> 박성미 감독(우측)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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