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틀쉽>의 한 장면.

영화 <배틀쉽>의 한 장면. ⓒ UPI코리아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배틀쉽>(감독 피터 버그)이 개봉 5일 만에 110만 관객을 돌파(17일자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했다. 관객이 몰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배틀쉽>은 오락적으로 매우 재밌는 영화다. 아무 생각없이 본다면 시계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도 130여 분이 흘러간다.

그러나 다시 곱씹어본다면 '킬링타임'용의 재미있게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특히 몇몇 장면은 한국인의 정서와 전혀 맞지 않는다. 전 세계 중 한국에서 최초로 개봉했다는 점이 무색할 정도다.

'욱일승천기' 휘날리며...미국과 일본의 '뿌리깊은' 제국주의

<배틀쉽> 중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은 바로 일본의 욱일승천기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보여주는 욱일승천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상징' 중 하나다. 욱일승천기는 일본 국기인 일장기의 붉은 문양 주위로 햇살이 퍼져나가는 것을 형상화한 모양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이 사용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1년 AFC 아시안컵 당시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기성용 선수는 욱일승천기를 걸고 국내 관객을 자극한 일본 측 관중을 향해 '원숭이 흉내' 골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욱일승천기가 프린팅된 티셔츠를 입은 연예인이 비난을 받는가 하면 MBC <남극의 눈물> 프롤로그편에서는 욱일승천기를 내건 선박이 항해하는 모습이 등장해 시청자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배틀쉽>에서는 욱일승천기가 아주 자랑스럽게 펄럭인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빨리, 전 세계에서 최초 개봉한 영화이면서 말이다. 일본 해군 나가타(아사노 타다노부)가 지휘하는 해상자위대 구축함도 등장한다. 알렉스 하퍼(테일러 키치)는 나가타와 끝까지 생사를 같이한다. 우리나라 국민 정서에 좋지 않은 욱일승천기를 보여주면서까지 '최초 개봉'에 공을 들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친일 영화'라는 논란을 일찌감치 의식한 탓일까. 피터 버그 감독은 지난 5일 내한 당시 "아버지가 미국 해병대 출신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는 등 한국은 내게도 각별한 나라"라면서 "국적, 세대에 관계없이 온가족이 즐겁게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편에는 한국의 해군장교로 이병헌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피터 버그 감독 또한 어느 정도 친일 시비에 대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선제공격 않는 외계인...그래도 침입했으니 다 죽여버리라고?

<배틀쉽>의 대결 구도는 '착한 외계인'과 '폭력적인 지구인' 같다. 지구에서 쏜 전파를 토대로 지구를 탐사하러 온 외계인은 교신할 수 있는 우주선이 인공위성과 부딪히면서 홍콩에 불시착한다. 그래서 이들은 하와이에 있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별과 통신하려고 한다.

그러나 훈련 중인 함대에서는 경고음이 울린다. 지구인들은 외계인이 울린 경고음을 공격으로 간주해 선제공격에 나선다. 외계인 역시 반격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본성'은 영화 곳곳에서 나온다. 어린아이이거나 무기가 없거나, 공격할 의사가 없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동료를 구하러 왔을 때도 목적만 달성할 뿐,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 전화기를 가지러 왔다 자신들과 맞닥뜨린 지구인을 구해주기도 한다.

<배틀쉽> 속 외계인은 단지 지구에서 자신들에게 왜 신호를 보냈는지 파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설상가상 외계인은 함대 속 인물들과만 대립할 뿐, 정작 그들에게 신호를 보냈던 NASA 등 상부 인물과는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 볼거리에 심혈을 기울이다 정작 이야기의 흐름은 놓쳐버린 대목이다.

2편의 가능성을 내비친만큼 피터 버그 감독이 속편에서 궁금증을 풀어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속편도 부실한 내용으로 진행된다면 그저 '킬링타임용'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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