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은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디 라소다 감독뿐이었을까.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끝날 것 같지 않던 추위도 어느새 누그러졌다. 계절의 시침은 겨울을 지나 봄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야구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야구팬들이 고대하던 프로야구 개막이 다가왔다. 지난 시즌 680만 관중을 돌파하며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프로야구는 올 시즌 700만 관중을 목표로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서게 된다.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밝다. 각 팀의 전력평준화는 물론 박찬호, 이승엽, 김태균, 김병현등 거물급 스타들의 복귀는 야구팬들의 발걸음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겨울 동안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지만 프로야구계는 '아픈 만큼 성숙'을 되새기며 낮은 자세로 팬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어느덧 서른한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2012 프로야구. 그 어느 해보다 흥미진진한 시즌이 예상되는 가운데 오늘부터 8일간 각 팀의 전력을 미리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순서는 지난 시즌 최종성적의 역순으로 진행된다.

다섯 번째 순서는 해태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기아 타이거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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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90년대 광주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태양이 일본으로 떠나고 한동안 암흑의 세계를 겪기도 했다. 2009년 V10을 달성하며 부활에 성공했지만, 프로의 세계에 만족이란 없다. 30년간 10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최고의 명문팀 기아 타이거즈. 그리고 더 큰 업적을 쌓기 위해 나고야와 대구를 환하게 비췄던 태양은 올해 다시 광주로 돌아왔다.

1985년부터 11년간 선동열이 해태의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 타이거즈는 6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빨간 상의와 검정 하의의 유니폼은 타 구단 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해태 왕조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선동렬 감독은 마운드가 아닌 덕아웃으로 친정에 복귀했다.

지난 시즌 기아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전반기까지 2위 삼성에 2게임차 앞선 선두를 유지하며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이했다. 광주에서 벌어진 삼성과의 후반기 첫 경기. 기아타이거즈는 V11을 염원하며 전통의 빨간상의와 검정하의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2-5 역전패. 경기막판 역전패였기에 더욱 뼈아팠다. 후반기 첫 게임의 역전패는 홈 3연전을 스윕으로 내주는 결과로 이어졌고, 1위 자리까지 내주고 말았다.

전반기 막판 타선을 이끌던 김선빈의 부상에 이어 이후 중심타자 김상현, 이범호가 줄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믿었던 투수진마저 난조를 보이며 믿기 힘든 추락을 거듭한 기아는 전반기 52승 35패 이후, 후반기 18승 28패에 그치며 4위 턱걸이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전반기 1위 팀이 4위까지 추락하는 일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1승 뒤 3연패로 힘없이 무너지며 롤러코스터 같은 한 해를 보내야 했고, 그 끝은 조범현 감독과의 이별이었다.

선동열 효과

지난해 전반기에 기아가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선발진 덕분이었다. 그리고 후반기 기아가 몰락한 원인도 선발진 때문이었다. 윤석민만이 시즌 내내 제 몫을 했을 뿐, 양현종은 2008년의 모습으로 회귀했고, 로페즈와 트레비스는 부상으로 후반기 들어 제대로 된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했다. 선발진의 붕괴는 불펜의 과부하로 이어졌다. 전반기 대 질주를 한 손영민은 7월을 기점으로 추락했고, 유동훈도 지난 2년간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오랜 공백을 깨고 돌아온 김진우와 한기주에게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던 상황에서 좌완 심동섭의 발견이 지난해 기아 불펜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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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문가들이 올 시즌 삼성의 유력한 대항마로 기아를 뽑는 것은 선동열 감독의 존재 덕분이다. 역대 최고의 투수답게 삼성 투수코치와 감독을 지내면서 정현욱, 차우찬, 권혁, 오승환 등 무수히 많은 투수들을 길러냈다. 지금 삼성의 막강 불펜은 오롯이 선동열 감독의 작품이다.

기아팬들은 '선동열 효과'가 올 시즌 기아에게도 영향을 미치길 기원하고 있다. 투수들 역시 선동열 감독의 노하우를 전수받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올 시즌 기아 선발 로테이션은 윤석민과 외국인 투수 앤서니와 라미레스, 서재응, 박경태로 꾸려질 전망이다.

서재응은 선동열 감독이 올 겨울 가장 큰 성과를 거둔 투수로 지목했다. 외국인 투수와 올 시즌 처음으로 선발로 나선 박경태가 변수가 되겠지만 경쟁력을 갖춘 선발진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한기주의 마무리 안착 여부다. 한 때 김진우의 이름도 거론됐지만, 현재로서는 한기주가 마무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기주가 여의치 않을 경우 유동훈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시즌 내내 뒷문을 책임지기엔 서른여섯이라는 나이가 걸림돌이다. 기아로써는 한기주가 2007-2008 시즌의 모습을 되찾는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한국 야구 최대 계약금을 받으며 '10억팔'이라는 호칭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던 한기주지만 팬들의 뇌리에 남는 활약을 펼친 것은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매일 불펜에서 대기해야 하는 토미존 수술을 받은 그의 팔꿈치도 불안 요소다. 선동열 감독은 한기주가 100% 컨디션을 회복하면 무조건 마무리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아는 시즌 초반 손영민, 김진우, 양현종의 부상으로 계투진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기주마저 자리를 잡지 못할 경우 선동열 감독의 지키는 야구는 빛이 바랠지도 모른다. 뒷문이 약한 팀은 결코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한기주의 마무리 안착 여부는 올 시즌 기아의 열한 번째 우승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올해 팀 타율 1위는 KIA?

타고투저였던 2010년. 기아는 .260의 팀 타율로 리그 6위에 그쳤다. 전년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고타저 현상이 빚어졌던 지난해에는 오히려 .269를 기록하며 리그 3위로 상승했다. 시즌 초반 기아 타선을 이끌었던 김선빈이 강정호의 타구에 맞지 않고,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던 이범호와 차츰차츰 MVP 모드로 돌아가던 김상현이 부상으로 도합 60경기 이상 빠지지 않았다면 기아는 더욱 강력한 공격야구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모두 건강하게 돌아왔고, 기존 선수들도 큰 부상 없이 스프링 캠프를 마쳤다. 선동열 감독이 올 시즌 KIA가 팀 타율 1위를 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도 스프링캠프 기간동안 야수쪽엔 부상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 사람이 있다. 최희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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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의 라인업 포함 여부는 기아 타선 전체의 힘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범호-김상현-나지완 보다는 이범호-최희섭-김상현-나지완으로 이어지는 타선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문가들도 최희섭의 복귀 여부가 기아가 삼성과 함께 2강에 들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중요 변수로 보고있다.

최희섭이 복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전제가 필요했다. 최희섭 자신의 건강과 팀 동료들에 대한 사과가 그것이었다. 최희섭은 현재 부상에서 회복해 2군에서 실전 경기를 치르고 있다. 기아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지난달 말 선수들 회식자리에 참석해 무릎까지 꿇며 동료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선동열 감독도 최희섭 복귀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최희섭의 복귀는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겨울, 최희섭은 팀의 4번 타자이자 주축선수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말았다. 연봉도 4억 원에서 1억7천만 원으로 반토막 이상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이제 과거의 일일 뿐이다. 동료들도 최희섭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건강과 멘탈이 강화된 최희섭이 돌아왔을 때 선동열 감독의 팀 타율 1위 공약은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공은 최희섭에게로 넘어갔다.

멈춰버린 바람, 해태 전성시대를 재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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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타이거즈가 선동열 감독을 선임한 것은 과거 해태왕조를 재현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했던 이순철 해설위원은 수석코치로 복귀했다. 이강철, 이건열, 정회열 코치도 덕아웃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아 팬들은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부푼 마음으로 시즌 개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즌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해태왕조의 한 축을 담당했고, 기아에서 유일하게 해태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팬들에게도 기아 선수단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소식이었다.

이종범의 은퇴가 기아 전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01년 기아로 복귀한 뒤 10년 넘게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이종범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공허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구심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선수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힘이 약해진다는 뜻과 같다.

지난 2년간 기아 야구에는 끈끈함이 없었다. 이 점은 해태 타이거즈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 상대팀들은 앞서고 있어도 불안하다고 했다. 해태의 전력도 강했지만 도무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드는 해태 선수들의 근성 때문이었다. 해태 선수들도 지고 있어도 도무지 질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2년간 기아 야구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2010년엔 재앙과 같았던 16연패로 속절없이 무너졌고, 지난해에도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자 맥 없이 쓰러졌다. 모든 스포츠에는 부상 등의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 변수를 헤쳐 나가느냐의 여부가 한 해 농사의 풍년 여부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기아는 지난 2년간 생각지 못한 변수가 나타나면 바로 꼬리를 내려버리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선동열 감독은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 팀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지난 2년간의 실패는 선수들을 위축시켜 놓았다. 올 시즌 기아는 대권을 노릴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팀 전력과 성적이 정비례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팀 분위기는 가장 으뜸으로 중요하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서재응이 덕아웃에서 비키니를 입고 치어리딩을 해도 다른 선수들이 뜻을 함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체 팀원이 하나가 되었을 때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근성과 끈끈함이 묻어날 수 있다. 기아는 지난 2년간 실패한 이유를 곱씹어야 한다.

기아에서 10년넘게 선수들 사이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였던 바람의 아들은 이제 멈춰섰다. 어쩌면 올 시즌 기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윤석민이 20승을 하는 것도, 최희섭이 40홈런을 치는 것도 아닌, '정신적 지주' 이종범의 빈자리를 메워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기아 이종범 선동렬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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