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작은데 노래나 할 수 있겠어?" 이런 물음에 "대체 음악을 하게 생겼다는 게 어떻게 생겨야 하는 거지?" 라며 반발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키워온 보컬로서의 꿈이 한국에선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일본으로 가버릴까 고민도 했다.

보컬리스트 김지은의 모습이었다. 평균 이하의 키에 가늘고 맑은 목소리의 그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유를 대며 조금씩 자신의 꿈에 한 발씩 다가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다른 나라에 비해 다양성과 음악에 대한 저변이 아직은 부족한 거 같아요. 네티즌들 역시 부정적인 모습에 더 크게 반응하시는 거 같고요. 음악적인 면에서도 한 쪽을 너무 크게 봐주지 않나 생각해요. 두꺼운 목소리에 대해 노래 잘 한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그 외의 목소리엔 시큰둥하시죠."

김지은의 이유 있는 항변이었다. 올해로 26살인 그가 음악을 해오며 느꼈던 점은 좋았던 기억보단 아쉬움이 커보였다. 밴드 '바이올렛 톤'의 보컬 김지은은 그렇게 매번 한국에서 뮤지션으로 사는 데에 대한 안타까움을 몸소 느끼며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인디밴드 '바이올렛 톤'의 보컬 김지은

인디밴드 '바이올렛 톤'의 보컬 김지은 ⓒ 이선필


짜임새 있는 팝 밴드 '바이올렛 톤'..."굵은 목소리 아니더라도 밀리지 않아"

대학에서 실용 음악을 전공한 김지은은 애초에 밴드 음악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한창 동요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올 무렵 마침 비슷한 또래의 보아가 데뷔했었고 나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단다. 그리고 그렇게 독학과 레슨을 병행하면서 노래를 불러오다 지금의 밴드에 들어갔다.

밴드 '바이올렛 톤'은 강한 비트보단 팝적인 느낌이 짙은 성격의 팀이었다. 2005년에 임정욱(기타)과 이성일(드럼)을 주축으로 결성된 후 몇 번의 멤버 교체 후 지금의 모습으로 활동 중이었다. 김지은이 특유의 편하고 밝은 목소리로 밴드의 특징을 더욱 살리고 있었다.

김지은이 밴드에 전격 합류한 지는 1년 반이 지났단다. 김지은 스스로도 "강한 비트와 멜로디 보단 사람들이 좋아할 멜로디를 선호했고 밴드의 분위기와도 잘 맞았다"며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진로를 이쪽으로 정하고 입시를 봐야지 했을 때까진 제 목소리가 너무 싫었어요. 거미·빅마마 등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듣곤 했잖아요. 애초에 아이돌 음악을 하겠다는 마음보다 홍대에서 알아주는 밴드가 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러다 한국에서 음악 하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일본은 소규모 공연장도 많고 저변이 넓잖아요. 일어 공부를 해서 일본으로 넘어가고 싶은 생각도 했죠. 거기다 제 목소리 역시 한국에서 먹히지 않는다는 목소리라고들 했고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괜찮은 거 같아요. 더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파워풀하게 노래를 하기 보단 맑고 깨끗하다 이런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당찬 포부를 말함과 동시에 김지은은 "그때 '요조'가 홍대에서 확 뜨더라고요"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반 농담이었겠지만 나름 고무적일 법 했다. 김지은은 당시 상황을 생각하며 타루, 옥상달빛 등 나름 인기를 얻고 있는 인디 뮤지션의 이름을 들었다. 김지은과 비슷한 음색의 음악인들이었다.

 인디밴드 '바이올렛 톤'의 보컬 김지은

인디밴드 '바이올렛 톤'의 보컬 김지은 ⓒ 이선필


여전히 밴드가 설 무대 많지 않다...<탑 밴드> 예선 탈락의 '수모'도 불사

전업 뮤지션은 그야말로 김지은에겐 꿈과 같았다. 국내서 내로라하는 인디 뮤지션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뛰어난 음악성에 나름 인지도도 있다지만 국내 환경이 음악만 하고 먹고 살기에 절대 녹록치 않다는 건 이미 익숙한 현상이 되어버렸다.

김지은 역시 대학에서 보컬을 전공하며 전업 가수로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학원 등을 전전긍긍하며 강사로 수입을 벌어왔다고 했다. 이건 양반이었다. 한때 그는 한 중소기업에서 취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 못해 기타를 매고 출퇴근을 했다고 한다. 결국 회사를 나오긴 했지만 운이 좋았는지 한 예술 고등학교에서 보컬 강의도 할 수 있었던 그였다.

"KBS <TOP 밴드>에도 나갔다니까요. 밴드 오빠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의 손무현 작곡가와 친분이 있어서 허가를 받고 편곡했거든요. 이 곡과 밴드 곡을 가지고 나갔는데 예선에서 떨어졌어요. 한 심사위원은 원래 두 마디만 듣고 끊었어야 했다며 독설도 하셨죠. 돈이 궁하니까 '빅맥송'도 해볼까 멤버들과 상의하기도 했고요."

근본적인 아쉬움은 바로 국내에선 밴드가 설 무대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여러 오디션 프로가 나오는 상황이지만 갈수록 홍대 등지의 클럽은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 분명한 증거가 되겠다. 김지은 역시 이런 부분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내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인맥 이런 게 영향이 크더라고요. 보컬이라면 또 학교 간판도 있어야 하죠.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학교가 아닌 상황에서 혼자 프로필을 쌓아가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한탄만 하는 거 같다고? 현실은 이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한때 자우림, 크라잉넛, 언니네 이발관 등을 배출했던 유명 클럽들이 어느새 유명무실해져 있는 현실이다. 또한 신예 밴드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던 클럽 쌤은 지난 해 문을 닫았고,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역시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한 상황이다.

"왜 한국은 중간층이 없는 걸까요?" 음악과 영화 얘기를 오가다 나온 김지은의 말에 강한 여운이 있었다. 음악이고 영화고 망하거나 흥하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되는 현실이 어쩌면 기형적인 한국 문화 구조의 단면을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소소하면서 꾸준히 사랑을 받는 뮤지션들이 이 땅에 잘 자리잡기를 기대하면서 '바이올렛 톤'의 노래들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지난해 발매한 이들의 싱글 앨범 <바램...그 설렘>을 추천한다.

 김지은

ⓒ 김지은


 밴드 '바이올렛 톤'의 공연 모습

밴드 '바이올렛 톤'의 공연 모습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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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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