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앨범 재킷

▲ 정태춘 박은옥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앨범 재킷 ⓒ 다음기획


정태춘·박은옥의 정규앨범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가 나왔다.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이후 무려 10년 만에 발표한 앨범이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어느덧 노인의 나이가 됐지만, 이 앨범을 통해 투영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노장들의 시선은 여전히 '붉다'.

시대를 반영하듯 전반적으로 어둡고, 외로움과 고립감이 느껴지는 노래가 많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평화와 이를 위한 연대,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 여전히 '붉다'

쓸쓸한 기타 연주와 함께 황량한 바람 소리, 열차 소리, 발자국 소리 등으로 스산하게 문을 여는 '서울역 이씨'는 한 노숙인의 죽음을 소재로 한 노래다.

정태춘은 이들을 가리켜 "이름도 없고 바코드도 없는 몸뚱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바로 그런 '시선'이 얼마 전 그들을 서울역에서 내몰았다면서 그 '시선'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이 곡을 통해 묻고 있는 듯하다.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것이 다름 아닌 '내' 시선은 아니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데,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눈처럼 그 눈물처럼 사라져 주듯이"라는 가사에서 "사라져 주듯이"라는 대목이 가슴을 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겨울 비 오다 말다, 반구대 어둑 어둑'. 일기의 한 대목처럼 시작하는 "저녁 숲 고래여"는 이른바 '4대강 사업' 때문에 훼손 위기에 놓인 울산 울주 반구대 유적지를 소재로 한 곡이다.

분노? 그보다는 안타까움, 그리움, 미안함

하지만 원망이나 분노의 기색은 없다. 대신 이 노래에는 "고래는 이미 물 아래로 떠났을까", "우리 너무 늦게 도착했나" 등 가사에서 엿볼 수 있듯 안타까움과 그리움, 미안함 등의 감정이 가득하다.

그 감정이 향하는 대상은 미래 세대 혹은 자연이다. 노래 중반, 정태춘의 독백과 박은옥의 노래가 교차하는 "허어. 그 배를 볼 수가 없군요"라는 대목은 이 노래의 모든 정서를 집약하고 있다.

이미 사라졌거나 스러져 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두 노장의 안타까움과 그리움, 무력감 등은 '강이 그리워'라는 노래로 이어진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슬픔을 머금은 박은옥의 목소리는 가슴속을 싸하게 만들 정도로 시리게 느껴지는데, '사람'이 아닌 의구한 '자연'에서 위안을 찾는 그녀의 노래에서는 세상살이의 '헛헛함'과 시대의 고독, 짙은 외로움 등이 묻어난다.

무상한 것들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은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한 동경을 낳기 마련이다. '꿈꾸는 여행자'는 바로 그런 쉬이 변하지 않는 '시원'(始原), '샹그릴라'를 꿈꾸는 여행자에 대한 노래다. 이 곡에서 '샹그릴라'는 "지상에서 누구도 본 적 없고", 오로지 '긴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또 "그대의 샹그릴라"라는 가사에서 읽을 수 있듯 화자는 이 세상에 만인의 '샹그릴라'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불가와 도가의 색채가 느껴지는 가사, 목가 풍의 편곡이 두드러진 곡인데, "여기 다시 돌아오시지는 마세요 꿈꾸는 그대, 그리운 여행자"라는 마지막 가사는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할 듯싶다.

그래서'눈 먼 사내의 화원'을 들어보면...

중국 현악기 얼후의 애잔한 선율이 인상적인 노래, '눈먼 사내의 화원'은 죽어서도 여전히 눈이 먼 한 사내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에게는 은밀한 화원이 있다. 하지만 이승의 어느 누구도 그의 영혼과 화원을 보지 못한다. 따라서 이 노래의 화자는 다름 아닌 눈먼 사내 그 자신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그 화원을 찾아주는 건 오로지 새들과 나비들, 은빛 강물 헤엄치던 물고기들뿐이다.

그 스스로 떠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떠날 수 없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죽어서도 이승에서의 삶을 반복하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공허와 외로움, 서글픔 등이다. 인간다움을 잃고 파편화 된 삶을 살아가며 외롭다고 아우성치는 '눈먼'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로도 읽히는 노래다.

1970년대 '유행가'를 연상시키는 편곡과 정태춘의 구수한 창법이 일품인 '섬진강 박시인'은 악양골 박남준 시인을 떠올리면 만든 노래로 알려졌다. "연분홍 봄볕에도 가슴이 시리더냐 그리워 뒤척이던 밤 등불은 껐느냐", "봄은 오고 지랄이야, 꽃비는 오고 지랄" 등 해학적인 가사에서 느껴지듯 노래의 주된 정조는 따뜻함과 정겨움이다.

하지만, '붉디붉은 청춘의 노래'를 "초록 강물에 주어 버렸노라"고 짐짓 초탈한 듯 툭 던지는 화자의 노래에는 무심한 세월을 향해 가볍게 눈흘기는 늙은 사내의 서글픔이 묻어 있다.

왜 민중의 삶을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에 비유했을까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는 '역사의 바다'에서 점차 소외되어 가고 있는 민중의 삶을 시내버스에 빗댄 노래다. 이 노래에 비친 민중의 삶은 남루하기만 하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집과 일터를 오가는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노선을 오가는 시내버스처럼 '구속'된 존재가 됐고, 안식처가 되어야 할 그들의 '집' 또한 '아무도 돌아오지 않'을 고립된 장소가 돼버리고 말았다.

반면 '바다'는 그들이 있어야 할 곳, 그들이 돌아가야 할 곳을 가리킨다. 화자는 노래한다. "네 먼  바다는 아직 일렁이고 있고", "누군가 또 거기 작은 배를 띄우고 있으니", "너의 바다 또 널 기다릴 것"이라고. 결국 이 곡이 품고 있는 건 희망을 찾으라는 전언이다.

그 희망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노래가 '날자 오리배'다. 정태춘은 앨범 후기에서 "오늘도 이 지구 위를 떠도는 세계의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이 노래를 썼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호방함과 상상력이 넘치는 노랫말이 돋보이는 이 곡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연대를 촉구한다.

이 노래가 그리는 연대의 시작이자 끝은, 바로 "비자도 없이 또, 국적도 없이 그 어디서라도 그 언제라도", "그 땅 위에 올라가 일할 수 있는 세상", "그 이웃들과", "경건한 숲들과", "그 별들과", "그 대지와" '하나'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화자라면 아마도, 오리배가 하늘을 날 듯 거침없이 꿈을 꾸고 상상력의 나래를 펴는 일이 필요하다고 답하지 않을까?

그리고 변하지 않은'92년 장마, 종로에서'

이번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1992년 발표했던 8집 타이틀곡 '92년 장마, 종로에서'다.

이와 관련하여 <한겨레신문> 서정민 기자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라는 노랫말이, 오늘날과 판박이처럼 들어맞는다"며 새 앨범의 마지막을 이 노래로 맺음한 것에 의미를 두기도 했다.

정태춘은 앨범 후기에서 "지금 이 땅의 순정한 진보 활동가들과 젊은 이상주의자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다시 녹음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1992년과 2012년의 간극은 이십 년이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 또한 많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10년 만에 나온 정태춘·박은옥의 새 노래들 역시 예전과 비교했을 때 많은 부분 변했고, 또 많은 부분 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해석은 결국 듣는 이의 몫이겠지만, 확실한 것은 두 노장의 귀환으로 오랜만에 듣게 된 '어른'의 목소리, '어른'의 시선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게 느껴진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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