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기획 아이템을 내라고 성화다. 하지만 전 언론사에 있을 때 이미 기획기사 수백 개를 썼었다. 더 이상 이리저리 묶을 것도 없다. 더 이상 식상한 아이템으로 기획기사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국장님이 내놓으란다. 와, '죽것다'. 다시 머리를 쥐어 짜낸 결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내가 영화를 만들어보자. 내가 영화를 만들며 느낀 것을 써 보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조경이 기자가 신인배우 도지한과 인터뷰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조경이 기자가 신인배우 도지한과 인터뷰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이정민


사실 단편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는 지난해 숙원사업이었다. 재미없는 기사 쓰기도 권태기가 찾아왔고, 매니저들, 꽃미남 꽃미녀 배우들 인터뷰도 지루해지고 새로운 신선한 자극제가 필요했다.

5년 전 영화기자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매니저들에게서 '빼앗거나' 제작사 대표들로부터 모니터링 개념으로 건네 받은 시나리오 읽기가 재미있었었다.

그렇게 읽은 시나리오만 수백 권. 하지만 이제 시나리오 읽는 것도 지쳤다. 비슷비슷한 공식,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서 몇 개 반짝반짝 하는 시나리오를 볼 수 있을 뿐. 이제 시나리오도 읽는 것도 중단.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다. 

아이폰영화제, 스마트폰영화제...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니 박찬욱 감독도 아이폰을 들고 뛰어 다니며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거장의 단편영화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학도들 그리고 영화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영화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다만, 잘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동안 남의 영화 참, 잘도 까더니만...

 조경이 기자(오른쪽)가 사람엔터테인먼트 이소영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경이 기자(오른쪽)가 사람엔터테인먼트 이소영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지난해 단편영화를 위한 시나리오 2편을 써뒀었다. <고소영의 부츠>(가제)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가제)이다. 두 편을 써두고 주연배우도 캐스팅했었다. <고소영의 부츠>는 제작비가 좀 많이 드는 상황이라,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으로 선택. 류현경·강예원·송유하 주연으로 배우들 캐스팅을 시도했고 촬영감독님도 만났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이나 <고소영의 부츠>나 모니터링을 돌리자, 몇몇은 재미있게 읽었고 대다수는 시나리오가 참신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참, 나도 남의 영화 '잘 까지만', 내 시나리오가 "참신하지 못하고 진부하다"며 "꼭 만들어야 하냐? 그 돈 있으면 차라리 시집가는 자금에 보태라" 등등. 솔직한 평을 원했더니 정말 솔직하게들 말씀들 하시더라.

그래서 살짝 재미나게 읽었다는 이들보다 '너만 좋자고 영화 만드냐?'는 독설이 더 가슴에 꽂혀서 다 접었다. 그때 함께 파스타를 돌돌 말아먹으며 캐스팅 섭외를 하겠다고 시간까지 빼앗았던 류현경과 송유하님에게는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  

모두 '킬'당하면 어쩌지?

<고소영의 부츠>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 지난해 단편영화를 찍기 위해서 써 두었던 두 편의 시나리오. <고소영의 부츠>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

▲ <고소영의 부츠>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 지난해 단편영화를 찍기 위해서 써 두었던 두 편의 시나리오. <고소영의 부츠>와 <그녀를 만나기 10분전> ⓒ 조경이


그러다 최근 각자 자신의 이름을 건 연재물 아이템을 내라는 국장님 지시가 떨어졌다. 참신과는 거리가 멀어진 나이(더 나이든 기자분들께는 죄송)...그래도 쥐어 짜내야 한다. 그러다가 지난해 내 마음 속의 아이템 '단편영화 만들기'가 스쳐갔다.

그렇게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고소영의 부츠> <그녀를 만나기 10분전>에 이어 <참, 따뜻한 세상>을 새로 써 봤다.

주위에 모니터를 한 결과 모 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L양은 <고소영의 부츠>가 "더 재미있다"고 그걸로 영화로 만들라고 했다. 한 스포츠지 연예부 L기자도 역시 <고소영의 부츠>에 한 표를 던졌다. 

같은 교회에 다니며 김수현 드라마를 독파하는 열혈 드라마 마니아인 C양은 둘 다 별로고 <참, 따뜻한 세상>(가제)에 한 표를 던지며 열띤 디테일까지 잡아주었다.

이제 한 작품을 잡아서 계속 시나리오를 수정해 가야 한다. 무엇을 할까. 그것부터 결정하기 어려운 지금. 이번 주 내로 국장과 부편집장에게 3편을 모두 전해주고 그 중에서 하나 골라달라고 해야겠다.

그런데...3편 모두 '킬' 당하면 어쩌지? 

단편영화만들기 류현경 강예원 송유하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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