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본명 조윤석)이 작년 12월 20일 5집 <아름다운 날들>로 돌아왔다. 1998년 밴드 미선이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1년 루시드폴이라는 아티스트명으로 동명의 1집 앨범을 발매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대학원 생명공학 박사이기도 한 그의 논문은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되기도 했다.

루시드폴(본명 조윤석)이 작년 12월 20일 5집 <아름다운 날들>로 돌아왔다. 1998년 밴드 미선이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1년 루시드폴이라는 아티스트명으로 동명의 1집 앨범을 발매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대학원 생명공학 박사이기도 한 그의 논문은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되기도 했다.ⓒ 안테나뮤직


크리스마스 때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설명이 먼저 필요했다. 루시드폴(본명 조윤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스위스 폴카'가 떠오르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그는 "엣헷헷"이라는 겸연쩍은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관련기사 : <스케치북> 크리스마스 특집, 변태와 솔로의 그 슬픈 경계)

12월 24일, 집에서 TV나 보는 솔로들이 내년에는 TV와 함께하지 않도록 아예 끔직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의 크리스마스 특집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대실망쇼2'에서 그는 폴카를 췄다.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하이디의 복장을 한 채. 공연 차 들른 부산 본가에 들어서자, 마침 부모님이 그 장면을 시청하고 있었다. "차라리 무슨 말씀이라도 해주셨으면 좋겠는데..."라고 말끝을 흐린 그는 아버지가 "폴카 잘 추대~"라는 말만을 남겼다고 전했다. 요즘 루시드폴은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PD들로부터 굉장히 '진지한' 섭외 요청을 받고 있지만 정중히 고사하고 있다고.   

루시드폴도 이렇게 방송출연하게 된 요즘이 신기하다. 2001년 1집 <Lucid Fall> 이후 2~3년마다 꾸준히 한 장씩 내온 정규앨범이 벌써 다섯 번째. 한때는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생명공학 박사'라는 타이틀이 음악보다 앞서 화제가 되곤 했던 그는 이제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남 영광입니다"라는 식의 일명 '스위스 개그'를 창시한 재밌는 뮤지션으로 거듭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때그때의 상황을 노래에 담는 것"

 루시드폴은 스위스 유학 중 겨울에만 한국에 돌아와 2집 <오, 사랑>(2005)과 3집 <국경의 밤>(2007)을 발매했다. 4집 <레 미제라블>(2009)부터는 아예 귀국을 한 후에 전업 뮤지션을 결심하고 만든 앨범이다.

루시드폴은 스위스 유학 중 겨울에만 한국에 돌아와 2집 <오, 사랑>(2005)과 3집 <국경의 밤>(2007)을 발매했다. 4집 <레 미제라블>(2009)부터는 아예 귀국을 한 후에 전업 뮤지션을 결심하고 만든 앨범이다.ⓒ 안테나뮤직


5집 <아름다운 날들>은 루시드폴 특유의 나긋나긋 속삭이는 듯한 보컬과 따뜻하게 감싸 안는 기타 선율이 반가운 앨범이다. 익숙하다는 것이 새삼 고마워지는,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처럼.

하지만 그 커다란 줄기 안을 들여다보면, 1998년 그가 보컬과 기타를 맡았던 밴드 미선이를 시작으로 2001년 루시드폴 1집부터 현재까지 각 앨범의 결이 다르다. 가진 것이라곤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뿐이었던 1집에 비해 세션의 참여가 돋보이는 5집의 사운드는 풍요롭고 완성도도 높다. 유학 중 만든 2, 3집과 비교하자면, 마음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래서 반대로 누군가는 악기의 빈 공간이 많던 가난한 뮤지션, 타지에서 외로운 공학도였던 루시드폴의 거칠고 쓸쓸한 감성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마침 인터뷰가 있던 날, 그는 3년여 만에 미선이 멤버들을 만난다고 했다. 

루시드폴은 미선이부터 약 14년간의 음악생활을 더듬으며 "운명처럼 휩쓸러 왔다"라고 표현했다. 록을 하고 싶었다기보다, 밴드를 하면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선이를 시작했다. 멤버들이 모두 군대에 간 후 병역특례로 산업체에서 일하게 된 그는 혼자 남아 루시드폴이라는 이름으로 2001년 1집을 만들었다.

 마침 <오마이스타>와 인터뷰가 있던 6일 저녁, 미선이 멤버들과 3년여 만에 만나기로 했다는 루시드폴은 "음악에 대한 욕심 없이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서도 "가능하다면, 온라인을 통해 재밌는 음악작업을 함께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침 <오마이스타>와 인터뷰가 있던 6일 저녁, 미선이 멤버들과 3년여 만에 만나기로 했다는 루시드폴은 "음악에 대한 욕심 없이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서도 "가능하다면, 온라인을 통해 재밌는 음악작업을 함께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테나뮤직


당시 음반 내는 걸 도와주겠다던 엔지니어 형에 의해 시작한 루시드폴이었지만, 그 사람에게서 앨범 공연 수익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음악을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만큼 지쳤던 그는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다. 지금의 소속사 안테나뮤직 정동인 대표와 "앨범 내고 싶을 때 편하게 낸다"는 약속을 하고. 겨울에만 한국에 들어와 작업을 해온 지 이렇게 8년째가 됐다.

"제 음악을 들어온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지만, 만들어온 입장에서는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제약 조건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밖에 볼 수가 없겠더라고요. 무엇보다 20대 중반과 30대 중반의 감성이 같을 수는 없잖아요. 나중에 장가가서 아기 낳으면 또 달라질 거예요. 굉장히 평범한 아빠가 될지도 모르죠. 미선이 때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것도 결국 어느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음악이었던 것 같아요."

루시드폴이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나는 음악을 오래하고 싶은 사람이고, 오래 할 것이다'라는 다짐이다. 그는 6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2년에 한 장 이상 앨범을 꾸준히 내온 카에타로 벨로조의 빽빽한 디스코그래피 같은 것을 꿈꾼다. 평생 10~20장의 앨범을 만든다는 큰 그림에서 보면 1집에서 5집 사이는 굉장히 짧은 기간인 셈이다. 그래서 루시드폴에게는 그냥 그때 그 나이, 여러 가지 상황을 앨범에 녹이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저도 뒤를 많이 돌아보고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편이지만, 불과 2~3년 전에 잘 지내던 친구들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아요. 연인과의 관계도 처음 만나 사귀었을 때와 1~2년 후가 다르듯이. 사람은 그 자리에 있는데, 그 시기는 다시 못 오잖아요. 2001년의 루시드폴 1집을 들었던 분들이 똑같이 나이를 먹고 지나온 것처럼 제 음악도 바뀌어 온 거예요."

"5집, 가장 음악적 맞춤에 따라 만들었다는 느낌"

 루시드폴은 보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제가 노래를 못하잖아요"라고 부연설명을 달곤 한다. 그는 보컬에 대해 "제한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려고 노력해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라며 "그러다보니 어떤 식으로든 보컬이 계속 변화해 왔다"라고 말했다.

루시드폴은 보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제가 노래를 못하잖아요"라고 부연설명을 달곤 한다. 그는 보컬에 대해 "제한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려고 노력해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라며 "그러다보니 어떤 식으로든 보컬이 계속 변화해 왔다"라고 말했다.ⓒ 안테나뮤직


루시드폴은 매 앨범마다 가장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보컬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1집의 '해바라기' 같은 곡을 지금 들어보면 과연 같은 사람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 정도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녹음실 밖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쑥스러웠다"라고 회상했다. 그래서 미선이 공연 때도 "리버브(reverberation:다수의 반사음(에코)이 합성되어 얻어지는 음악적 효과) 좀 최고로 올려주세요!"라며 목소리를 감췄었다고. 하지만 2집 <오, 사랑>부터는 그의 목소리가 전면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루시드폴이 좀 더 가까이서 우리를 다독인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 이때부터다.  

루시드폴은 여기에 세션들을 좀 더 늘리면서 빈 공간을 채워왔다. 5집에서는 기타 베이스 피아노 등의 기본적인 팀 외에 드럼·플루트·트롬본 등의 악기가 참여했고, '그리고 눈이 내린다'라는 삼바 곡을 위해 탄탄·판데이루 등의 악기를 처음 구성해보기도 했다. 루시드폴은 "20대의 플루티스트 윤혜진 드러머 신동진부터 75세의 트럼페터 최선배 선생까지, 다양한 세대의 연주자들과 한 팀으로 자연스럽게 하모니를 냈던 것이 뿌듯하다"며 녹음 당시 찍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공동 프로듀싱과 건반을 맡은 조윤성의 추천으로 루시드폴의 5집 앨범에는 70대의 트럼페터 최선배 선생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루시드폴은 "사실 처음에는 연배가 높은 분이라 부담스러울 것 같았는데, 확실히 연륜만큼 연주의 톤이 좋았다"며 "쉬는 시간에는 '한때 음악이 너무 힘들어서 차력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해주셨다"라고 작업 분위기를 전했다.

공동 프로듀싱과 건반을 맡은 조윤성의 추천으로 루시드폴의 5집 앨범에는 70대의 트럼페터 최선배 선생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루시드폴은 "사실 처음에는 연배가 높은 분이라 부담스러울 것 같았는데, 확실히 연륜만큼 연주의 톤이 좋았다"며 "쉬는 시간에는 '한때 음악이 너무 힘들어서 차력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해주셨다"라고 작업 분위기를 전했다.ⓒ 안테나뮤직


그래서 이번 앨범은 그에게 마치 제대로 된 영화감독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을 줬다. 그는 "음악적인 맞춤에 따라 세션을 배치해서 만들어봤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 앨범이다"라고 소감을 표했다. 초기 앨범이 '지인의 지인'의 도움으로 품앗이하듯 만들어졌다면, 3집부터는 작품에 맞는 캐릭터를 캐스팅하듯 세션을 팀으로 꾸려왔다. 특히 5집은 프로듀서로서 머릿속의 그림을 제대로 그려 봤다는 점에서의 성취감이 있다.

"프로듀서로서 이번 앨범은 풍족하게 만들었지만, 쓸데없이 비용을 쓴 건 없어요. 가뜩이나 요즘 음반을 판매해서 수익을 올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다행히도 회사 규모가 좀 커지면서 녹음실도 생겼고, 일부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됐어요. 정말 농담이 아니라, 재형이 형(정재형)이 CF를 몇 개 찍어줘서 회사에 여유가 좀 생겼어요. 그동안은 제가 공연해서 회사 먹여 살리는 소년 가장이었는데, 이제 큰 형이 큰 형 노릇을 하는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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