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 정규앨범 5집 <아름다운 날들> 재킷 사진

▲ 루시드 폴 정규앨범 5집 <아름다운 날들>재킷 사진ⓒ 안테나뮤직


루시드 폴은 시적인 가사와 가슴을 파고드는 서정적인 보컬, 잔잔한 멜로디가 특징인 노래들을 불러왔다. 이번에 발표한 정규앨범 5집 <아름다운 날들>에 실린 곡들 또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4집 <레 미제라블>에 실렸던 '평범한 사람'처럼 '임팩트' 있는 곡은 없지만, <아름다운 날들>은 오늘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줄만한 곡들로 채워져 있다.

'외줄타기'는 인생의 한 순간을 외줄타기에 비유한 곡이다. '삶'의 무게감을 덜고 싶은 화자는 말한다.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고, 또 그와 함께 '울고 싶을 때 울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다고. 공동체가 붕괴되고 파편화된 개인들이 늘고 있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곡이다.

'그리고 눈이 내린다'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뒤 비로소 그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된 사람의 심정을 담은 노래다. 그는 '외롭다는 건' '잊혀지는 게 아무렇지 않도록' '기다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말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는 믿음이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화자의 마음이 보사노바풍 리듬 및 편곡에 실려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어부가'는 안빈낙도의 삶을 노래한다. '자발적 가난의 행복'을 예찬했던 한 시인처럼 이 곡의 화자 또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경구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좁은 이 배 한가득 채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난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무얼 놓지 못해 주저하는지' 등의 가사가 마음을 잡아챈다. 샹송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곡이다.

'어디인지 몰라요'는 사랑을 놓치고 망연자실한 사람의 마음을 그린 노래다. 화자는 시간 감각과 공간 감각을 상실했는데, 마치 사랑이란 처음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무심히 갈 때도 이렇듯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거라고 몸소 표현하는 듯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조응하며 나아가는 조윤석의 보컬은 화자의 고립감을 두드러지게 하면서도 묘한 안도감을 준다.

'그 밤'은 사랑의 불완전성을 노래하는 곡이다. 화자는 사랑이 주는 행복이란 두려움이나 외로움 등의 감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정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지난날을 회상하는 그의 마음을 전달하는 조윤석의 보컬은 초탈한 듯 정제돼 있다. '당신과 나 두 사람만 있다면' '우린 조금은 더 행복할 수 있겠지'라는 가사가 쓸쓸하게 느껴지는 노래다.

'꿈꾸는 나무'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미친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노래다. 화자인 나무는 사람들을 위해 '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지만, 되고 싶지 않은 게 하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바로 그건 '누군가를 겨누며 미친 듯이 날아가는 화살'. 쉘 실버스타인의 우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외로운 당신'은 루시드 폴이 세상의 모든 외로운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노래다. '아무 일 없다고 그냥 말하지 마요', '들켜도 돼요 내가 뛰어들 수 있게' 등의 살가운 가사가 귀에 쏙 들어온다. 청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듯 찰진 기타 주법과 드럼 연주가 리듬감을 만들어내며 활기를 주는 재즈풍의 곡이다.

드라마틱한 기타 연주로 시작하는 '불'은 쉬이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불씨들에 대한 두려움을 노래한 곡이다. 화자는 사랑과 미움, 욕망 등 끓어오르는 내면의 감정들과 맞서고 있다.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 중 멜로디 라인이 가장 도드라지는 곡으로, 기타와 퍼커션, 피아노가 어우러지는 편곡 또한 극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노래의 불빛'은 루시드 폴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직접 표현한 곡으로 읽힌다. '아픔도 외로움도 부서질 수 있게' 달래주고, '고인 아픔도 얼어붙었던' '마음도 데'워 주는 친구 같은 노래, 그 노래를 듣는 모든 이들을 친구로 묶어주는 햇살 같은 노래가 바로 그 노래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경쾌한 곡이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는 이별에 대한 노래다. 화자는 시련 속에서도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었던 이와 헤어졌지만, '쓸쓸해도 힘들어도'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어떤 이별이었든 화자는 그이와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여름의 꽃'은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여름 한철을 보낸 사람이 계절의 끝자락에 서서 자신을 위로해준 것들을 향해 감사하며 이별을 고하는 노래다. 바람과 햇살과 수평선의 노래 덕분에 그의 외롭고 고단했던 여름은 아름다운 날들로 남을 수 있었다.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은 전반적으로 이별의 정한, 외로움, 작은 소망 등 홀로 남은 자 혹은 홀로 살아가는 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격한 감정을 표출하기보다 스스로의 감정을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듣는 이  또한 노래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과정에 동참하게 되는데,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들이 솔찮을 듯하다. 이는 상당 부분 루시드 폴의 노랫말에 존재하는 여백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루시드 폴의 노랫말들은 보편적인 정황을 드러내면서도 구체적인 사연을 들려주지 않는다. 슬프다, 외롭다, 기쁘다 등 화자의 상태가 어떤지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다. 대신 청자는 자신의 사연을 그 여백에 채워 넣게 되는데, 그 순간 마술처럼 감정이입이 일어나고, 조윤석이 불러주는 노래는 곧 '나의 노래'가 된다.

그래서 루시드 폴의 이번 앨범은 고요한 밤 또는 적요한 새벽에 홀로 들으면 제격일 것이다.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부드럽게 들려오는 조윤석의 보컬이 청자의 아련한 기억들을 소환할 것이고, 다시 그 기억들은 그에게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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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언론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최초 매체비평에 뜻을 두고 가입을 했음. 문화, 예술, 국제, 사회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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