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아라의 신곡 Cry Cry가 수록된 [EP] Black Eyes

티아라의 신곡 Cry Cry가 수록된 [EP] Black Eyes ⓒ 코어컨텐츠미디어


티아라(T-ara)의 신곡 'Cry Cry'가 네티즌들로부터 인기 그룹 SS501의 '데자뷰'와 미국 팝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히트곡들을 표절한 게 아니냐며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여러 아이돌 가수의 팬들 사이에선 언론에 크게 알려진 사례들만이 아니라 자기네들끼리 논쟁을 벌일 정도로 비슷한 곡들이 상당히 있는 듯하다.

'Cry Cry'를 처음 들었을 때 필자 역시 굉장히 놀라서 한동안 굳어 있었다. 가요를 들으면서 이 정도의 충격을 받아본 적이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노래가 굉장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론 너무도 익숙한 느낌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신곡이지만 마치 신곡이 아닌 것처럼 너무도 익숙한 느낌의 멜로디가 귀에 감겼다.

흔히들 바보가 아니고서야 뻔히 들통이 날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들을 상식처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반대의 경우들이 논란을 일으켜 가요계를 시끄럽게 한 경우도 있었다. 이미 지난 일들 하나하나 다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그 가운데는 비슷하지만 논란만 일으킨 경우도 있었고, 정말로 의도적인 표절로 확인된 사례도 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란 엄청난 고통이기도 하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만들고 나면 다른 누군가의 작품들과 비슷한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에 다수의 창작자들이 한 번 이상 공감할 때가 있을 것이다. 오래된 한국영화인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보더라도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던 다른 창작자의 작품들이 의도하지 않은 표절을 일으키는 경우가 그렇다. 이럴 땐 당사자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표절이라는 문제는 확실히 맞는지 아닌지를 가리기 쉽지 않다. 헷갈리고 아리송하다. 표절 문제의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외국에서는 정말로 골 때리는 대형 사건이 터진 경우도 있다. 록 음악 역사에 있어서 살아있는 전설로까지 추앙받는 메탈리카가 어느 무명밴드의 곡을 표절했다고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메탈리카의 이름에 먹칠을 할 만한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곡은 그들의 간판급 히트곡인 'Enter Sandman'이었다. 유튜브에서 'Tapping Into The Emotional Void'를 검색하면 엑셀이라는 그룹이 연주한 곡을 실제로 들어볼 수도 있다. 두 곡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상당히 놀랄 것이다. 엑셀 맴버들의 말에 따르면 이 곡이 메탈리카의 작품보다 2년 먼저 발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명확한 결말에 이르지 못했다.

 티아라 신곡이 표절 논란에 휩싸여 빠르게 소식 전파 중인 모습.

티아라 신곡이 표절 논란에 휩싸여 빠르게 소식 전파 중인 모습. ⓒ 김현준


정말로 의도된 표절일 경우에는 거짓말로 부인할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겠지만 이것 역시 의외로 당당하게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킬 빌'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렇다. 그는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고 한다. 자신의 첫 작품인 '저수지의 개들'이 임영동 감독의 '용호풍운'을 의도적으로 훔쳐온 것이라면서 말이다. 실제로 두 작품은 설정과 줄거리 그리고 디테일까지 일치한다. 하지만 이 경우엔 타란티노만의 확실한 개성이 작품에 살아있었기에 그의 이름이 인정받을 수 있었다.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필자가 음악의 표절을 이야기 하면서 갑자기 영화를 예로 드는 것이 무리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대중음악의 길이가 영화의 러닝타임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명제에서 둘은 동일한 적용을 받는다. "서양 12음계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멜로디의 숫자가 수학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 이미 1980년대 초"라는 신해철의 지적처럼 스토리의 유형 역시 셰익스피어 이후로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한데도 대중문화 작품들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되어진다. 창작이란 결국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터이다. 결국 표절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작품의 확실한 개성이 살아있는지 '오리지널리티'에 집중하는 것이다. 문화가 개방되고 미디어가 발달해 대중이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지금의 환경에서 쉽사리 판가름 내리기 어려운 표절 논란에 집중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편이 더 발전적일지도 모른다. 과연 티아라의 'Cry Cry'에는 그녀들만의 이름을 새길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살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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