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살인 범죄로 딸을 잃은 엄마가 앉아있다. 다른 사건이지만, 그 앞엔 살인죄로 아들이 교도소에 있는 엄마도 앉아있다. 얼음장 같은 마음과 애절한 마음이 대면해 있는 자리.

"제 마음은 항상 같아요. 죄는 죽음으로 갚을 수 없죠. 하지만 죽지 않으면 더 갚을 수 없죠."
"그렇다고 어떻게 산 사람을 죽여요."
"그러게요, 그 산 사람을 죽인 게 당신 아들이에요."

이 불편한 만남을 주선한 수녀는 "자식이 살해된 부모나 사형된 부모나, 주님 보시기엔 아픈 건 매한가지"라고 한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가?

 다혜는 일 년전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약혼자 상우를 잃었다.

다혜는 일 년전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약혼자 상우를 잃었다. ⓒ 오늘


인권에도 순서가 있다?

요샌 '사람 하나 죽여도 3·4년 복역, 잘하면 집행유예'라 사형수 되기도 어렵다. '범죄자 90%가 가석방인데다 재범률은 70%이상'이다. '가해자는 피해자 정보를 알 수 있지만, 피해자는 가해자가 출소해도 알 도리가 없다'. 길에서 마주치거나 보복 당할 두려움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 이쯤하면, 범죄자에 대한 좀 더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쪽으로 다수의 마음이 움직일까.

 진정한 용서의 의미에 대한 성찰, 영화 <오늘>

진정한 용서의 의미에 대한 성찰, 영화 <오늘> ⓒ 오늘

그런데 혹시 죽기직전 잔인한 폭력을 당했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사체가 정육점 냉동 창고에 전시된 카다피의 최후를 보고 꺼림칙한 사람은 없었을까. 정당한 법적 절차 없는 무자비한 응징에 학을 뗐겠지만, 강력한 처벌과 그에 상응하는 죽음으로 죄 값을 치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카다피가 처참하게 죽었다고 리비아 시민들이 그를 용서한 것은 아닐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27일 개봉한 영화 <오늘>이 던지는 '진정한 용서'의 메시지는 꽤 설득적이다. "중요한 건 용서가 아니라 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인데, 이놈의 사회는 용서만 있지 사과가 없죠. 대책 없는 용서는 '죄악'입니다". 98년 <미술관 옆 동물원>과 2002년 <집으로> 이후 이정향 감독이 8년 만에 들고 나온 신작 <오늘>은 감독의 긴 공백만큼이나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사과도 없는 용서는 가짜잖아"

다혜(송혜교 분)는 약혼자 상우(기태영 분)를 오토바이로 두 번이나 깔아뭉개고 도망간 열일곱 소년 태호를 위한 탄원서를 써줬다. 주위사람들은 범인을 일 년도 안 돼 용서한 다혜를 이해 못하지만, 그녀에겐 용서하면 모두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혹자는 영화시작 5분 안에 작품의 전반적인 흐름과 핵심메시지가 다 나온다고 했다. 1주년 추모예배에서 재회한 다혜와 상우누나의 대화로 시작된 <오늘>은 영화가 앞으로 '용서'에 얼마나 천착할지 예고했다.

"왜 그렇게 서둘러 탄원서를 써줬을까." 
"상우씨도 원했을 거예요." 
"죽은 상우 맘을 어떻게 알아? 용서해주니까 올케는 편해?" 

다큐멘터리 피디 다혜는 상우 사건 이후 용서라는 주제의 영상을 기획, 다양한 사건의 피해자들을 촬영하러 다녔다. 연쇄 살인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노신사, 친오빠의 겁탈을 눈감아준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일생을 살다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성 그리고 어렵게 장만한 동네 구멍가게를 열자마자 범죄로 남편을 잃은 또 다른 중년 여성까지. 용서를 실천한 사람들에게 매번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었는지' 물었고, 이는 곧 다혜 자신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용서에 대한 후회는 있을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단속해오던 그녀가 '용서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 유족을 만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인이) 출소했는지 몰랐어요. 모범수라는데 지는 사과편지 한 장 못 받았어요. 용서는 누가 해주는 겁니꺼. 이 사회는 벌도 대신주고 용서도 대신해줍디더. 자기는 죄 값을 다 치렀다고 했다는데, 징역 살면 사람 죽인 것도 없어집니꺼. 미안하단 말을 듣고 싶었어요. 제가 한 용서가 헛일이 안 되려면 지는 미안하단 말을 꼭 들어야겠어요. 안 그러면 용서 취소할 랍니다."

 <오늘> 속 다혜와 지민은 '용서'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로 자주 부딪힌다.

<오늘> 속 다혜와 지민은 '용서'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로 자주 부딪힌다. ⓒ 오늘


상우 친구 지석(송창의 분)의 여동생 지민(남지현 분) 역시 다혜를 들쑤신다. 덕망 높은 판사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려온 지민이 보기엔 범인의 사과도 없이 해준 다혜의 용서가 가짜다. 아버지의 사과 한마디면 모두 용서할 수 있다는 지민과 심장에 마취제를 뿌린 듯 무감각한 용서를 한 다혜. 이들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서로의 용서를 궁금해 한다. 동시에 자신의 용서에 대한 다혜의 뒤늦은 의심과 후회도 커져간다.

"제 용서가 사람을 죽였어요"

"그 아이가 궁금합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일지 볼 자신이 없습니다. 이러한 의심을 용서해주세요."
"그런 판단은 주님이 하시는 거죠. 자매님이 용서한 순간 주님에게 그 아이를 맡긴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꼭 용서를 해야 했나요?" 

자신 안의 두려움과 대면해가던 다혜가 알게 된 진실은 이제 자신의 용서를 원망하게 한다. 학교생활하며 잘 지낼 거라 믿었던 태호는 세 달 전 학교 친구를 죽여 소년보호기관에 있고, 오토바이 사건 전에도 엄마를 찌른 경험이 있었다. 자신의 용서가, 아니 그보다 앞서 태호 엄마의 눈가리기식 용서가 약혼자 상우와 동급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다혜는 혼란스러워한다. 용서하지 않을 자유를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섣부른 용서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2007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 영화 <밀양>속 이신애(전도연 분)를 연상시킨다. 아들을 죽인 범인을 신심으로 용서하고 교도소로 면회 갔을 때 마주한 그는 이미 자신(신애)이 아닌 다른 용서를 받은 상태였다.

 이창동 감독 영화 <밀양> 속 한 장면

이창동 감독 영화 <밀양> 속 한 장면 ⓒ 밀양


 이신애는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고자 하지만 주님의 용서로 평온한 모습의 살인범을 보고 분노한다.

이신애는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고자 하지만 주님의 용서로 평온한 모습의 살인범을 보고 분노한다. ⓒ 밀양


"준이 어머님 입에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야기를 듣게 되니 참말로 감사합니다. 저도 믿음을 가지게 됐거든요. 주님이 이 죄 많은 인간한테 찾아와 주신 거지예. 하나님이 제게 손내밀어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 회개하게 해주시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주님께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내 마음이 이렇게 편합니다." 

용서를 해? 당사자가 용서했다고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누가? 여전히 괴로운 자신과 달리 이미 마음의 평화를 얻은 범인을 통해, 신애는 용서의 실체를 의심하고 저주한다. 용서의 전제이기도 했던 태호의 착실한 삶이 배신으로 돌아온 다혜의 방황과 같다. 용서의 배신에 <밀양>이 발악했다면 <오늘>은 슬퍼했다. 다혜는 감당할 수 없어 미뤄온 고통의 통증을 뒤늦게 '자유로이' 느낀다.

"용서는..."

"용서가 뭔데요? 내 딸을 죽인 사람이 내 딸보다 행복하게 사는 거? 살인범 아들을 둔 어머니를 안아주지 않는 건, 나한텐 그를 용서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었어요. 용서는 미움을 없애는 게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하죠. 용서는 미움을 마음의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거예요. 서두르지 마세요. 그건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니까. 그 시간은 자신만이 알아요."

딸 살인범을 용서했지만 사형제 폐지엔 동의하지 않았던 피해 어머니의 진심. 다혜는 용서해야할 사람이 아니라,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이 봐야할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아픈 기억은, 특히 당시엔 더없이 행복했지만 후일 너무 아프게 떠오르는 시간은 기억이 여러 가지로 번복되곤 한다. 후회와 안타까움, 미련이 사실과 뒤섞여 '이젠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기억으로 말이다. 사고당일에 대한 다혜의 회상 씬이 여럿인 것처럼.

 용서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이 봐야할 영상을 만드는 다혜.

용서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이 봐야할 영상을 만드는 다혜. ⓒ 오늘


<오늘>은 '용서'에 관해 끊임없이 되묻는 영화지만, 결국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에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카메라 앞에 선 다혜는 태호에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자신의 범죄로 생이 끝난 이들의 삶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됐을 때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이 용서가 아닌 '오늘'인 것도, 영어 타이틀이 'a reason of live'인 이유도 마찬가지.

"김태호! 너 자신을 사랑해봐. 그럼 네가 없앤 그 사람들의 인생이, 그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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