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을 가득 메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 ⓒ 박성우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선 어느덧 새 시즌이 속속 시작되고 있다. 축구팬들은 한국 선수들이 속한 유럽 클럽팀들을 우리의 홈팀 삼아 응원하며 또 수많은 밤을 지새워야 할 참이다.

박지성이 속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이청용(비록 크게 다쳤지만)의 팀 볼튼, 지동원이 새롭게 옮겨간 선덜랜드, 기성용과 차두리로 친숙해진 스코틀랜드 클럽 셀틱, 그리고 독일의 함부르크 SV, 볼프스부르크까지 챙겨야 할 팀도 많아졌다.

1980년대 차범근이 활약하던 시절, MBC에서 주말 아침에 녹화로 틀어주던 서독 프로축구 경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익숙해진 레버쿠젠, 프랑크푸르트, 바이에른 뮌헨 같은 팀들은 바둑판 모양의 멋진 잔디 위에서 스탠드를 가득 메운 관중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 경기를 보여주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강렬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필자에게 유럽 축구는 오래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유럽, 그중에서도 현재 세계 최고의 리그로 평가받는 프리미어리그의 나라 영국에서 꽤 긴 기간 거주하게 되었을 때 개인적으로 축구에 대해 품었던 기대는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었다. 마치 필자가 한국에서 롯데자이언츠의 열성팬으로서 틈만 나면 잠실이며 목동, 그리고 사직야구장을 드나들던 것 이상이었음은 분명했다.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 프리미어리그


한국보다 영국에서 훨씬 보기 힘든 프리미어리그

하지만, 지금 이곳의 현실은 냉혹할 정도로 어렵다. 첫째, 맨유, 첼시, 아스널 같은 빅 클럽들의 경기 티켓 가격이 지나치게 비쌀 뿐 아니라, 표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다.

북런던을 연고로 하는 아스널의 경우 올 시즌 리그 홈경기에서 가장 많은 수의 1등석 가격이 18만 원 정도(100파운드)이다. 챔피언스리그 결선 토너먼트 같은 인기 경기의 입장권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더해 대부분의 인기 시합 입장권은 연간 회원, 멤버십 회원에게 우선 배정된다.

그러므로 수백만 원에 달하는 시즌 티켓을 사지 못한 일반인들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오는 경우란 스케줄이 바뀌거나 상대가 무명 팀이거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주목을 끌지 못하는 리그컵 시합이거나 사람들이 관람하기 힘든 주중 경기가 대부분이다.

축구의 기원과 역사를 굳이 자세히 언급하지 않더라도, 원래 영국에서 축구는 노동자 계급의 생활이자 여가였다는 것을 우리는 들어서 잘 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된 축구의 산업화 이후 이젠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트래포드나 첼시의 스탬포드브릿지에서 노동계급 혹은 저소득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경기장에서 사라진 가난한 팬들은 어디에?

지난 200년간 리버풀, 맨체스터, 글래스고 등 대규모 공장 지대, 노동자 중심 도시 팀들이 강력한 팬 층과 함께 영국 축구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1990년대 초까지 이 지역 팀들은 상대적으로 중산층을 기반(middle class base)으로 했던 아스널, 첼시, 풀럼, QPR 등 런던 소재 팀들을 압도하며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서민과 노동자 팬들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현장(경기장)에서 빠르게 밀려나고 있다. 1990년 이전엔 단돈 3600원 정도(2파운드, 발코니석)만 내면 자기 팀 경기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티켓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탓에 서민과 노동자 팬들은 자기 팀 경기를 경기장에서 직접 보기 힘들어졌다. 이들은 이젠 TV로 자기 팀 경기를 시청하는 것마저 편하게 즐기기 어려운 처지다. TV로 보려면 연평균 70만 원 이상(400파운드, 수신료 포함, 스카이 방송 기준)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은 동네 술집인 펍에서 맥주 한잔 값 내고 보거나, 공중파인 BBC의 <매치 오브 더 데이(Match of the day)>라는 하이라이트 정도만 씁쓸히 접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지난 20년간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가 되었지만 그들의 오래된 핵심 팬들에게선 점점 더 멀리 도망갔다.

 펍에서 축구를 보는 사람들.

펍에서 축구를 보는 사람들. ⓒ 박성우


주식회사 프리미어리그와 스카이TV의 불안한 축구 비즈니스

프리미어리그에 낀 거품 경제의 문제점이 요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전부터 안정환, 조재진, 이영표 등 많은 한국 선수들과도 이적설이 났던 포츠머스FC가 좋은 예다. 역사적으로 이 팀은 열정적인 노동자 계급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했다. 그런데 악질 경영진이 2008/2009년 시즌까지 단기 차익을 노리고 전 세계의 엘리트 선수들과 투기 자본들을 마구 끌어들였다. 그 과정에서 의심스런 돈과 구단 소유권 거래가 오가다 얼마 전 불어닥친 글로벌 재정 위기 때 결국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이 같은 사례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클럽들에서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과거 명문구단이었던 리즈 유나이티드 역시 마찬가지다. 리즈의 넓은 팬 층과 지역적 기반이 역사 속으로 이 팀이 사라지는 것을 간신히 막았을 뿐이었다. 프리미어리그는 결국 루퍼트 머독의 스카이 위성채널과 함께한 1992년 이래 세계 최고의 인기 브랜드가 되었지만,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위험 자본에 마구 휘둘리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인기 구단들은 경기력뿐 아니라 부채 규모에서도 연일 최고를 갱신하고 있다. 맨유와 첼시의 부채는 공식적으로 각각 1조2000억 원(7억 파운드)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아스널이 7300억 원(4억1000만 파운드)으로 3위, 리버풀이 5000억 원(2억8000만 파운드)으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이 부분에서도 빅4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이 부채 금액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은 구단 경영자들이 아니다. 아쉽게도 바로 우리를 포함한 글로벌 팬들이다. 실제로 리버풀, 맨유 등에선 재벌 경영진들이 원래 약속했던 것과 달리 직접 투자 없이 금융권에서 돈을 계속 빌려서 팀을 꾸려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아주 먼 나라인 우리의 방송사들과 삼성, LG, 서울시, 금호타이어, 최근의 한화그룹 등은 이들 구단의 경영을 앞장서서 돕고 있다. 삼성의 경우 알려진 바와 같이 유니폼 스폰서로서 웬만한 한국 프로야구단 연간 운영비와 맞먹는 200억 원 이상을 첼시FC에 매년 지급하고 있다.

 잉글랜드 축구가 국제대회 우승과 거리가 먼 이유를 설명한 <이브닝 스탠더드>.

잉글랜드 축구가 국제대회 우승과 거리가 먼 이유를 설명한 <이브닝 스탠더드>. ⓒ <이브닝 스탠더드>


축구는 사회주의 스포츠?

축구에는 랭킹이나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 이는 정치·사회·문화적 배경을 빼곤 사실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런던의 보수적인 타블로이드 무가지인 <이브닝 스탠더드>(2010년 6월 29일자)는 심지어 이렇게 주장했다.

"축구는 사회주의 스포츠다. 몇몇 선수들이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긴 하지만, 90분간 리오넬 메시든 누구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뛰어야 한다."
"슈퍼스타가 있는 팀보다는 사회주의적·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강한 팀이 성공적이다. 국가 대항전에서 독일이 그 본보기다. 아니면 과거 공장이나 소외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클럽 팀들이 그 예다. 그래서 앞으로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에서 잉글랜드가 우승하기란 불가능하다."

사실 축구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표현들에서도 축구라는 스포츠의 '근원적 불순함'이 은근히 묻어난다. '단결, 연대, 목표' 등을 뜻하는 'Solidarity, united, goal, come together' 같은 구호가 그 대표적 예들이다. 현재 유럽 챔피언인 FC 바르셀로나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심지어 "우리는 좌파 축구(leftist football)를 한다"고까지 말한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8월 12일자)에 따르면 펩 과르디올라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중심으로 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가 '시장 경제 중심 클럽(market economy-centric club)'이라면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한 FC 바로셀로나는 '계획 경제 중심 클럽(planned-economy tack)'으로 운영한다고 강조한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판단된다. 누군가 구단에 투자를 하면 팀은 그 즉시 성공해야만 한다. 램퍼드, 제라드, 루니 같은 선수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스스로 가장 잘 안다. 주급과 이적료를 통해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조국 잉글랜드를 위한 플레이를 첼시, 맨유 등 자신들의 클럽을 위한 활동과 더불어 아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까? 당연히 그럴 것 같지만 이젠 그들의 상당수가 당당히 아니라고 밝힌다.

박지성의 팀 동료였고 잉글랜드 대표팀을 위해 10년 가까이 뛴 게리 네빌이 8월 중순 <메일>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아예 자신이 대표팀에서 보낸 기간은 '개인적으로 볼 땐 시간 낭비였다'고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할 정도이다. 재정적 보상을 중심에 놓고 보면 그들에겐 팀 활동과 국가를 위한 활동이 앞으론 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게리 네빌은 대표팀에서 보낸 기간에 대해 '개인적으로 볼 때는 시간 낭비였다'고 말했다.

게리 네빌은 대표팀에서 보낸 기간에 대해 '개인적으로 볼 때는 시간 낭비였다'고 말했다. ⓒ BBC


세계 최고의 리그, 최고의 명성. 그 속에도 역시 자본주의에 의한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모순이 내재한 듯하다. 투기 자본에 휩쓸려 더 많은 클럽은 더 큰 부채에 시달리고, 지역 출신 선수들은 점점 성장이 느려지고, 더 많은 열성 팬들이 배척되고, 결국엔 자국 대표팀의 숭고한 명예조차 명예롭게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영국 축구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영국이 국제 대회 우승과 거리가 먼 것과 최근 들어 우리가 일본을 이기지 못하는 것 사이엔 아무 연관이 없길 바란다. 그리고 캡틴 박지성의 대표팀 자진 은퇴나 클럽 소속 선수들에 대한 대표팀 소집의 어려움 역시 영국의 사례들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FC바르셀로나 박물관에 세계의 유명 축구 경기장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는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FC바르셀로나 박물관에 세계의 유명 축구 경기장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는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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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문화연구자. 지역의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함. 10여년 전 유학시절 <오마이뉴스>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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