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도 살인사건>(2007)으로 데뷔한 신예감독 김한민의 <최종병기 활>이 흥행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이미 개봉된 한국판 흥행대작인 <제7광구>나 <고지전>을 압도하면서 개봉 닷새 만에 1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런 추세라면 740만 관객을 동원한 <써니>를 누르고 올해 한국영화 최다관객 동원도 가능해 보인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가능하다.

<최종병기 활>은 요즘 유행하는 한류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시작하여 몇몇 스타로 이어진 한류열풍이 케이 팝으로 세계적인 화제다. 이 시점에서 90억 원을 투입한 전쟁영화가 개봉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긴박감과 속도감, 그리고 거듭되는 반전

 영화 <최종병기 활>

영화 <최종병기 활> ⓒ 영화 <최종병기 활>

영화는 1636년 병자호란과 개성, 압록강 일대를 시간과 공간 배경으로 설정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25년 뒤인 1623년 발생한 인조반정을 앞에 배치하여 등장 인물들과 역사적인 사건의 연관을 밝혀놓았다.

선조의 아들 광해군(1608-1623 재위)은 7년 동안 전국을 병화로 물들인 임진왜란의 후유증을 극복하면서 내치와 외교 면에서 큰 수완을 발휘하였다.

반면에 그는 왕권강화를 위해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유폐하여 사림의 분노와 원성을 자아낸다. 서인들은 청나라 전신인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왕으로 옹립하였으니 그가 인조다. 인조는 명나라를 섬기고 후금을 멀리함으로써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을 불러온다.

영화는 정묘호란을 뛰어넘고, 병자호란에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남한산성 전투나 '삼전도의 굴욕' 같은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주화파 최명길과 주전파 김상헌의 날선 대립이나 남한산성을 둘러싼 조선과 청나라 병사들의 전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긴박감과 속도감 그리고 거듭되는 반전으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인조반정에서 광해군 편에 섰다가 몰락한 인물이 남이(박해일 분)와 자인(문채원 분)의 부친이다. 반역자로 몰려 죽으면서 그는 남이에게 누이동생 자인을 보살피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아끼던 활을 남이에게 넘겨준다. 멀리서 아버지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난 남이와 자인은 개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런 까닭에 남이는 잠시도 자인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 13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어엿하게 장성한 남이와 자인. 반역자의 자식들을 길러준 집안의 아들 서군(김무열 분)은 자인에게 마음이 있다. 이렇게 <최종병기 활>은 남매와 연인이라는 틀로 세 사람의 주인공을 엮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청나라 왕자 도르곤과 그를 수행하는 명궁 쥬신타(류승룡 분)와 정예부대 '니루'를 축으로 상대진영을 축조한다.

영화의 사건은 직선궤도를 그리며, 사유나 숙고 혹은 반성의 여지를 전혀 주지 않고 쾌속으로 진군한다. 누이를 보살피겠노라고 아버지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려는 남이와 만주족의 기상과 형제애를 대표하는 쥬신타. 그들의 쫓고 쫓기는 추적이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 시위처럼 관객을 긴장시킨다. 그것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끝난다.

 영화 <최종병기 활>

영화 <최종병기 활> ⓒ 영화 <최종병기 활>


<최종병기 활>에서 활과 함께 눈길을 끄는 소품이 있다. 자인과 서군의 혼례식 날 남이가 자인에게 준비한 신발이다. 꽃무늬가 예쁘게 새겨진 청록당혜. 댓돌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은 참 정갈하고 비할 데 없이 곱다. 하지만 시간과 함께 신발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네 번이나 되풀이되는 신발의 등퇴장은 관객의 시선을 강렬하게 붙들어 맨다.

조선 활과 육량시가 만났다, 결론은...

바람에 휘날리는 너른 풀밭을 젊은 여인이 칼을 움켜쥔 채 달리고 있다. 쥬신타의 육량시로부터 오라버니를 구하려는 자인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남이와 쥬신타 그리고 자인이 일직선상에 자리한다. 쥬신타는 자인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다시 바람이 분다. 마지막 남은 화살을 먹이면서 남이는 생각에 잠긴다. 아버지 말씀이 떠오른 것이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되고,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남이의 활솜씨다. <고지전>에 등장하는 저격수 '이초'처럼 남이의 화살은 귀신처럼 적의 명줄을 꿰뚫는다. 그의 주특기는 바람을 이용해 휘어 날아가도록 화살을 날리는 곡사. 아주 짧은 시간에 표적을 정하고 과녁을 향해 순식간에 화살을 날리는 남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레골라스도 남이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쥬신타는 화살촉 무게만 240그램에 활 길이가 170cm에 달하는 육량시로 남이와 대적한다. 육량시는 순식간에 상대방의 팔다리를 잘라낼 만큼 강력하고 치명적인 무기로 가공할 파괴력을 자랑한다. 때로는 말을 타고, 때로는 도보로, 때로는 허공으로 솟구치면서 남이와 쥬신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전개된다. 객석은 잠시 숨 돌릴 겨를조차 없다.

활이 허공을 날 때마다 객석을 울리는 음향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북과 장구 같은 전통 타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음향은 박진감과 속도감 그리고 짜릿한 쾌감까지 선물한다. 이안의 대표적인 무협영화 <와호장룡>(2001)에서 용과 수련이 한밤중에 무예를 겨루면서 대결할 때 들려왔던 기막힌 북소리의 놀라운 매력이 느껴지는 것이다.

<최종병기 활>에 관객이 몰리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어렵고 까다로운 사극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영화는 속도와 재미에 집중한다. 광해군과 인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역사의식과 민족자주, 중국과 조선이라는 역사적 대립물을 가볍게 던져버린다. 적에게 잡혀간 누이동생을 찾아 나선 오라버니의 용감무쌍한 활약상이 영화의 초점이다.

역사에 등장했던 인물들은 허구적으로 그려진다. 화려한 의관으로 장식한 도르곤이 대표적이다. 육량시의 쥬신타와 조선신궁 남이는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조상들이 아무리 무기력 했기로서니 그렇게 일방적으로야 당했겠느냐는 애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발상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거기에 기름을 붓는 사람들이 남이와 서군 같은 영웅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

영화 <최종병기 활> ⓒ 영화 <최종병기 활>


그들의 영웅성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바쳐진다. 누이를 지키려는 남이나 자인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려는 서군이나 맥락은 동일하다. 따라서 영화는 17세기 조선이 아니라 21세기 오늘의 관점을 보여준다. "백성을 버린 임금은 임금이 아니다"라거나 "왕이 바뀌거나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공부할 의미가 없다"는 남이의 말에도 그것은 드러난다.

신분과 남녀를 막론하고 5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개돼지처럼 청나라로 끌려갔다. 대다수가 돌아오지 못했음을 영화는 자막으로 알려준다. 너무도 처절하고 비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우울하고 구슬픈 대목에 <최종병기 활>은 조금 치장을 해준 것이다. 영화는 무겁고 어려운 역사는 모두 버리고 재미 하나에 집중한다. 전략은 딱 들어맞았다.

역사 의식과 재미의 공존은 불가능한가

<최종병기 활>은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철저하게 할리우드 방식을 따른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결론을 향해 치달아간다. 그래서 미국영화 공식에 익숙한 한국관객의 취향과 맞아 떨어진다. 가족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주제나 말을 타고 추격하는 장면, 총잡이들의 일대일 대결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서부영화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그런데 관객들의 표정이 흐뭇하다. 언제 두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이름 날리는 배우들과 잘 짜인 각본, 뛰어난 음향효과와 속도감 넘치는 구성 그리고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활의 경연까지. 재미와 흥행을 위한 공식을 두루 갖춘 영화가 <최종병기 활>이다. 기막힌 대사 하나 없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한 가지만. 12세 관람가로 개봉된 영화이기에 객석에는 어린 관객들도 많다. 재미에만 치중하면 역사의 진실이 흐려질 수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역사가 영원히 과거의 일로 되려면 어린이들도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하지만 <최종병기 활>에는 역사가 아니라 재미와 속도와 할리우드 액션이 그득하다. 그 둘 다 쫓는 건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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