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결과를 알리고 있는 잉글리시 축구협회 누리집(TheFA.com) 첫 화면

경기 결과를 알리고 있는 잉글리시 축구협회 누리집(TheFA.com) 첫 화면 ⓒ TheFA.com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꿈꿨던 트레블의 영광은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드넓은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90분간의 경기 중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실수가 결국은 승부의 갈림길을 만들고 말았다. 그들이 자랑하는 축구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 들어온 8만6549명의 대관중 앞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끌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우리 시각으로 17일 새벽 1시 15분 런던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0-2011 잉글리시 FA(축구협회) 컵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준결승전에서 0-1로 아쉽게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박지성과 베르바토프의 불운

 

한국인은 물론이거니와 적잖은 아시아인들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축구 선수 박지성은 지금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큰 영광을 누려왔다.

 

정규리그(프리미어리그) 타이틀은 물론, 별들의 잔치라고 일컫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월드컵 우승 트로피도 모두 들어올려 보았다. 흔히 칼링 컵이라고 말하는 리그 컵 트로피는 사소한 편에 속할 정도다. 축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받는 연봉 이상으로 정말 부러워할 일이다.

 

하지만 1872년에 시작되어 세계 최고(最古)의 축구대회라 인정받고 있는 잉글리시 FA컵과는 아직까지 인연이 닿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준결승전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특히, 박지성과 베르바토프에게는 더 아쉬움이 큰 경기가 되고 말았다.

 

간판 골잡이 웨인 루니가 축구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아 이 경기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퍼거슨 감독은 베르바토프를 가장 앞쪽에 배치하고 그 뒤에 다섯 명의 미드필더를 세웠다. 그 중에 박지성은 주로 가운데로 움직이는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다. 축구팬들이 종종 표현하는 '센트럴 팍' 바로 그 자리였다.

 

이들을 이렇게 배치한 효과가 생각보다 일찍 나타났다. 경기 시작 14분만에 박지성은 기막힌 논스톱 패스를 베르바토프에게 자로 잰 듯 밀어주었다. 맨체스터 시티 수비수들이 파 놓은 오프사이드 함정까지 무용지물이 된 완벽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공을 받아든 베르바토프가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상대 문지기 조 하트가 재빠르게 각도를 줄이며 달려나온 탓도 있었지만 마무리 슛이 너무 조급하게 시도되고 말았다. 백작 특유의 우아한 마무리 기술이 그럴 때 필요했지만 그의 발목은 굳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르바토프는 곧바로 이어진 공격에서도 나니가 왼쪽 끝줄에서 밀어준 공을 향해 미끄러지며 밀어넣기를 시도했지만 발끝 동작이 골을 넣기에는 조금 모자라 더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2년 전(2009년 4월 19일) 그곳에서 에버턴을 상대로 벌인 2008-2009 FA컵 준결승전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연장전까지 득점 없이 비긴 두 팀은 결국 승부차기에 나섰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첫 번째 키커 베르바토프의 실패로 인한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2-4로 고개를 숙였던 것이었다.

 

박지성 또한 65분에 상대 벌칙구역 반원 밖 좋은 위치에서 직접 프리킥을 얻어내며 활약했지만 나니의 오른발 킥이 상대 문지기 조 하트의 손끝에 맞고 크로스바를 때리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이래저래 두 선수에게는 FA컵 트로피가 더 가물가물하게 느껴진 날이었다.

 

넥타이를 맨 관중석의 '루니'

 

이 중요한 경기에서 결승골은 너무 사소한 실수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축구를 '실수의 스포츠'라 말하나 보다. 52분에 먼저 문지기 판 데 사르의 걷어내기 실수가 상대 미드필더 다비드 실바에게 걸렸고 거기서 이어진 공의 줄기가 결국 골문을 흔들어 버린 것. 더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미드필더 마이클 캐릭이 얼굴을 감싸고 있어야 했다.

 

오른쪽 수비수 존 오셔가 미드필더 캐릭에게 짧게 연결하면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뒤에서 달라붙는 상대 선수를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캐릭의 그 다음 연결은 너무나 치명적인 것이었다. 체격 조건이 좋은 상대 미드필더 야야 투레가 거칠게 달라붙는 것을 너무 늦게 감지한 것. 가로채기를 당하여 결승골을 내준 뒤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경기장 안팎에 있는 두 명의 선수가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한 선수는 경기장 안에 있다가 어처구니 없이 쫓겨난 미드필더 폴 스콜스였고, 또 한 선수는 아예 이 경기에서 뛰는 권리조차 박탈당해 넥타이를 매고 관중석에 앉은 골잡이 웨인 루니였다.

 

맨유의 가운데 미드필더 스콜스는 실점 이후 20분이 흐른 뒤 무리한 동작을 제어하지 못해 마이크 딘 주심으로부터 곧바로 빨간 딱지를 받았다. 박지성이 가슴으로 떨어뜨린 공을 잡아서 역습으로 전개하는 과정 중 두번째 터치가 길게 달아나는 바람에 위험한 밟기 반칙을 저질렀던 것. 스콜스의 날카로운 축구화 스터드는 맨시티 수비수 사발레타의 허벅지에 상처를 내고 지나갔다. 모자란 것을 양보할 줄 아는 교훈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현재 팀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라이언 긱스가 첼시 FC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을 치르느라 피곤하여 이 경기에 못 나온 것을 생각하면 스콜스 자신이 이 순간에 다리를 빼며 절제했어야 옳았다. 그래야 남은 시간이라도 정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동점골을 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는 스콜스 말고도 또 한 명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바로 넥타이를 매고 관중석에 앉아 있는 웨인 루니였다. 그는 당연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어야 했지만 축구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아 뛸 수 없는 처지였다.

 

루니는 지난 2일 밤 런던에 있는 업튼 파크에서 벌어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프리미어리그 31라운드 맞대결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하며 4-2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TV 중계 카메라에 대고 욕설을 내뱉는 바람에 2경기 출장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던 것. 그 여파가 이 중요한 더비 매치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셈이었다.

 

이 결정에 대해 동료 선수들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측에서도 부당하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축구장의 스포츠맨십을 지키려는 축구 종가의 생각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축구장은 넓고 경기는 좀처럼 쉼 없이 이어진다. 지나고 나면 땅을 쳐도 소용없을 정도로 후회할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덧붙이는 글 | ※ 2010-2011 잉글리시 FA컵 준결승전 결과, 17일 새벽 1시 15분 웸블리 스타디움(런던)

★ 맨체스터 시티 FC 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득점 : 야야 투레(52분)]

◎ 맨시티 선수들
FW : 발로텔리
MF : 가레스 베리, 데 용, 야야 투레, 다비드 실바(86분↔비에이라), 아담 존슨(79분↔라이트 필립스)
DF : 콜라로프, 레스콧, 콤파니, 사발레타 
GK : 조 하트

◎ 맨유 선수들
FW : 베르바토프(74분↔안데르손)
MF : 나니, 캐릭, 스콜스(72분-퇴장), 박지성, 발렌시아(65분↔에르난데스)
DF : 에브라, 비디치, 퍼디낸드, 오셔(84분↔파비우)
GK : 판 데 사르

2011.04.17 09:43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10-2011 잉글리시 FA컵 준결승전 결과, 17일 새벽 1시 15분 웸블리 스타디움(런던)

★ 맨체스터 시티 FC 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득점 : 야야 투레(52분)]

◎ 맨시티 선수들
FW : 발로텔리
MF : 가레스 베리, 데 용, 야야 투레, 다비드 실바(86분↔비에이라), 아담 존슨(79분↔라이트 필립스)
DF : 콜라로프, 레스콧, 콤파니, 사발레타 
GK : 조 하트

◎ 맨유 선수들
FW : 베르바토프(74분↔안데르손)
MF : 나니, 캐릭, 스콜스(72분-퇴장), 박지성, 발렌시아(65분↔에르난데스)
DF : 에브라, 비디치, 퍼디낸드, 오셔(84분↔파비우)
GK : 판 데 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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