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영국 왕 조지 5세는 둘째 아들 요크공작에게 폐막연설을 대독시켰습니다. 당시 대국민연설은 몇 년 전 첫 방송을 시작한 신기술인 라디오를 통해 처음으로 생중계되고 있었습니다. BBC 아나운서가 안내 멘트를 하고 빨간불이 세 번 깜박인 뒤 연설을 시작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는 "저는 오늘 친애하는 국왕폐…폐…하…폐…"만 반복됩니다. 그리고 요크공작의 연설을 들으려던 이들은 모두 고개를 떨구고 맙니다.

연설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현 영국 여왕의 아버지이자 '말더듬이 왕'으로 유명한 조지 6세입니다. 요크공작은 형인 윈저공이 아버지 사후 에드워드 8세로 즉위하지만 미국인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 '세기의 로맨스'로 왕위를 내놓은 뒤 영국 왕이 된 인물입니다. 조지 5세는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새로운 미디어로 각광받던 라디오를 매개로 입헌군주제의 구심인 국왕의 권위를 각인시키려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셈입니다.

영화 <킹스 스피치>는 어린 시절의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는 요크공작이 말더듬증을 극복하고 국민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연설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스크린에 담았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소통의 미디어가 넘쳐남에도 '불통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한국사회에 질문을 던집니다.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일까'라고.

영화, 소통의 진정성에 대해 묻다

첫 대중연설을 처참하게 실패한 요크공작(콜린 퍼스)은 권위 있는 의사들로부터 전통적인 치료를 받지만 백약이 무효. 어린 두 딸이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하지만 이내 더듬기만 하고, 긴장을 풀라며 피운 담배만 수북이 쌓입니다. 그런 어느 날, 아내 엘리자베스(헬레나 본햄 카터)가 신분을 숨긴 채 식민지 출신 평민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의 사무실을 방문합니다.

 국왕인 아버지를 대신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라디오로 대국민연설을 하던 요크는 첫 말부터 더듬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국왕인 아버지를 대신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라디오로 대국민연설을 하던 요크는 첫 말부터 더듬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 (주)영화사 그랑프리


방문 치료를 원하는 로그에게 엘리자베스는 신분을 밝히지만 로그는 여기서 치료를 받고 싶으면 자기방식을 따라야 한다며 예외는 없다고 합니다. 치료실을 찾은 요크에게 로그는 "발성법을 고치기 위해서는 서로가 대등한 관계가 돼야 한다"며 애칭인 버티로 부르겠다고 선공합니다. 요크는 "우리가 동등한 사람이라면 난 지금 아내랑 집에서 쉬고 있을 것"이라며 응수합니다. 그렇게 티격태격 신경전을 펼치며 두 사람 간의 만남은 시작됩니다.

말더듬증의 근원을 찾던 로그는 까칠하게 튀는 요크에게 제안을 합니다. 턴테이블에 음악을 틀고 요크가 헤드폰을 쓴 채로 햄릿을 책처럼 읽는 걸 녹음하는 것입니다. 볼썽사나운 모습에 요크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서고, 로그는 녹음한 걸 기념으로 건네줍니다. 1934년 크리스마스 담화를 대독하다 다시 예의 말더듬을 되풀이하는 요크. 대책 없는 채로 로그가 준 판을 재생하다 놀랍니다. 전혀 더듬지 않고 술술 잘 읽어나가는 게 아닌가. 다음 날, 부랴부랴 로그를 찾아갑니다.

영화는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말더듬증을 치료하는 과정에 밀착하면서 신분을 뛰어넘는 두 사람의 우정에 주목합니다. 소통은 기교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여는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움직이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라는 것을 둘의 우정이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을 줄 아는 '소통의 진정성'을 대전제로 합니다.

진정한 소통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왕

역사적인 인물 중 말더듬이는 많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데모스테네스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와 찰스 다윈, 그리고 마릴린 먼로 등이 그들입니다. 전통적인 데모스테네스 치료법처럼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거듭하는 것에서부터 장애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영화는 요크와의 만남을 세밀하게 기록한 로그의 일기를 토대로 후자에 앵글을 맞춥니다.

 로그로부터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말더듬이 치료를 받던 요크가 아내와 함께 배에 힘을 잔뜩 주는 발성법을 익히고 있다.

로그로부터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말더듬이 치료를 받던 요크가 아내와 함께 배에 힘을 잔뜩 주는 발성법을 익히고 있다. ⓒ (주)영화사 그랑프리


로그는 요크가 겪은 트라우마의 뿌리를 찾는 데 주력합니다. 장자인 형만 떠받들고 찬밥신세였던 유년 시절, 안짱다리를 교정하느라 금속판을 대고 지내야 했던 소년기, 간질병을 숨기기 위해 쉬쉬하다 숨진 사랑했던 동생, 여기에 엄격한 아버지와 왕실의 중압감은 요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반면 요크는 권력의 상징인 왕위에 대한 야망을 감추고 있습니다. 왕위에 대한 욕망이 클수록 말을 더 더듬었던 것이고, 로그는 그러한 사실을 꿰뚫어 봅니다.

원인을 찾았으니 해법이 보이는 법. 그러나 영화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극적인 치료법 대신 부단한 소통이 그 자리에 들어섭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왕위 계승 문제를 상의하던 형 앞에서 말을 더듬다 놀림을 당한 요크가 실의에 빠지자 로그는 실컷 욕하라고 권합니다. 고귀한 왕자의 입에서 "제길", "씨발" "××" 등등이 줄줄 쏟아집니다. 낄낄거리고 웃던 로그는 술 한 잔을 권하고 요크는 고맙다고 합니다. 로그는 "친구끼리 이 정도가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하고, 요크는 "이런 게 친구로군"하며 화답합니다. 

이런 둘에게도 시련은 닥칩니다. 대관식 사전연습을 위해 찾은 웨스터민스터대성당에서 요크는 말합니다. 뒷조사에 따르면 로그는 배운 것도 학위도 없는 무자격자라는 것. 더욱이 2차 대전을 앞두고 무자격자에게 자신의 보좌를 맡긴 것에 대해 신하들이 사기죄로 런던탑에 가두라고 했다는 것. 대주교는 자격을 갖춘 의사가 있으니 로그를 내치라며, 이것은 충고라고 겁박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요크는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요크의 말처럼 '난생처음 알게 된 평민'과 함께 왈츠에, 제자리 뜀뛰기에, 바닥을 이리저리 나뒹구는 치료에, 쌍시옷까지 공유하면서 진정한 소통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단단히 연결된 소통의 고리는 이윽고 당시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행보로 이어집니다. 난색을 표하는 대주교에게 요크는 "로그에게 왕족석에 자리를 마련"하라고 하니까요.

대관식이 성공리에 끝나고 영국 정부는 독일과의 개전을 선포합니다. 조지 6세는 담화문 발표를 앞두고 로그를 부릅니다. 왕이 된 후 드디어 첫 라디오 대국민연설 즉, '킹스 스피치'를 하는 날. 녹색의 커튼으로 아늑하게 꾸며진 독실에 라디오 마이크가 놓여 있습니다. 연설 40초를 남겨두고 왕은 로그에 고맙다고 인사하고, 로그는 작위는 어떠냐고 농담하며 분위기를 풀어줍니다. 연설 20초 전, 마이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로그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연설하라고 합니다. 밖에서 대신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젖고. 이윽고 왕의 입에서 연설이 시작됩니다.  

대화와 소통이 없는 불통의 시대에 감동은 없다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 두 사람의 대화를 들려줍니다. "수고했소, 나의 친구." "감사합니다, 국왕폐하." 그리고 로그에게는 기사 작위가 수여됐으며, 2차 대전 중 조지 6세의 모든 연설에 그가 참석했고, 둘은 평생 친구로 지냈다는 자막이 올라갑니다.

 국왕으로 즉위하고 첫 대국민연설을 하는 요크가 평생의 친구 로그를 바라보며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결과는…?

국왕으로 즉위하고 첫 대국민연설을 하는 요크가 평생의 친구 로그를 바라보며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결과는…? ⓒ (주)영화사 그랑프리


영화는 시종일관 밋밋하고 싱겁습니다. 극적인 장치가 없음에도 나지막한 감동의 울림이 오래도록 머무는 것은 실화만이 누리는 혜택 때문은 아닙니다. 마치 로그를 만나 소통을 나누고 친구가 되듯이, 관객들과도 '신분을 뛰어넘어' 소통을 하고 친구가 되는 신뢰의 힘이 영화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영화는 입헌군주제 영국에서의 요크와 로그간의 소통을 거울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톺아보게 합니다. 특히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말더듬증을 극복하기 위한 요크의 압박과 고뇌가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장면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로그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장애를 이기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진정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라디오는 정치인에게 매력적인 도구입니다. 신화로 남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을 벤치마킹한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에 인터넷까지 얹어 최근에 61번째 대국민연설을 했습니다. 반면에 취임 후 기자회견은 딱 두 차례뿐이었습니다. 기자회견이라는 최소한의 쌍방향 소통 대신 일방통행식 전달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방송좌담회조차 청와대가 기획하고 진행방식 등을 결정한 뒤 방송사에 통보하면 끝입니다. 지난달에는 취임 3주년을 맞아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하면서 질문 4개만 달랑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식의 소통은 영화에서 요크가 로그를 통해 국민과 대화하며 소통의 첫걸음을 뗀 시대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지는 않겠다는 것은 국민을 홍보나 조작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오만함에 다름 아닙니다. 요크는 최소한 국민을 무시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저잣거리에서 이명박 정권을 '불통 정권'이라고 부르는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으며, 당연히 국민을 감동시키는 정치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프랑스의 그랑드샤르트뢰즈 수도원 수도사들의 일상을 담았던 영화 <위대한 침묵>이 이태 전에 개봉했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물과 자연의 소리 외에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 그런데도 관객과 내밀하게 소통을 주고받습니다. 수도승의 내면의 인고와 침묵이 오히려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현실은 국민 스스로 정보와 네트워크를 창조하고 공유하는 참여와 소통의 시대로 도도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국민들의 소통 요구를 외면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상대편을 만나는 '공론정치'를 한사코 배제한다면 그것은 <위대한 침묵>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거부한 <위대한 조작>으로 후대의 사가들이 기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대통령에게 이 영화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킹스 스피치 소통 불통 정권 라디오 연설 위대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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