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랙스완>은 '무서운 영화'입니다. 그 '무서움'은 공포나 놀라움이 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들어 있는 '악마성'이 언젠가는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합니다. 아니, 그 악마성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에 기인한다는 게 더 맞는 말 같습니다.

백조와 흑조. 극과 극의 캐릭터를 한 명의 발레리나가 연기해야 합니다. 지고지순한, 맑은 영혼을 가진 백조는 어느 순간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흑조로 변하죠. 그리고 흑조의 날갯짓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백조는 스스로 몸을 던집니다.

<블랙스완>은 영화 속 <백조의 호수>와 그 맥을 같이합니다. 흑조의 날갯짓이 펼쳐지는 세상에서 백조는 결국 그렇게 자신의 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백조 연기를 펼치는 니나(나탈리 포트만)

백조 연기를 펼치는 니나(나탈리 포트만) ⓒ 폭스 서치라이트


발레리나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백조 역할에 정말 어울리는 발레리나입니다. 열정도 있고 실력도 있는 발레리나지만 흑조 역을 하기에는 뭔가 모자라 보입니다. 도발적이지도 않고 치명적인 매력을 표현하기에도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감독인 토마스(뱅상 카셀)은 과감하게 니나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흑조로 변하기 위한 니나의 몸부림이 시작되죠.

백조의 몸부림과 발레리나의 발

호수에 떠 있는 백조를 보면 참 아름다워 보이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물속에서 계속 다리를 움직이는 백조의 모습이죠. 그냥 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물밑에서는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발레도 비슷합니다. 춤을 추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보면 정말 아름답고 매혹적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춤을 보여주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전에 본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발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춤을 보여주는 발레리나의 발은 뭉툭합니다. 상처투성이입니다.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아름다운 춤동작이 나오는 거죠. 니나의 발도 그렇습니다.

영화는 발레의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추악한 무대 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토마스는 니나에게 흑조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능을 깨우라고 하지요. 그리고는 니나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칩니다. 처음엔 거부하던 니나도 흑조가 되려는 마음으로 기꺼이 감독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자신의 숨겨졌던 성적 본능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와 나탈리 포트만, 두 괴물을 만나다

 나탈리 포트만은 강박에 시달리는 발레리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강박에 시달리는 발레리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 폭스 서치라이트


발레단의 동료인 릴리(밀라 쿠니스)는 흑조의 캐릭터와 잘 어울립니다. 니나보다 실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관능과 유혹을 나타내는 데는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줍니다. 니나는 릴리에게 자신의 배역을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기용하면서 토마스에게 버림받은 선배 발레리나 베스(위노나 라이더)의 흉측한 모습을 본 니나는 자신 또한 똑같이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죠.

그렇게 니나는 흑조로 변해갑니다. 그러나 그의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지고 심지어 자신의 곁에 있는 엄마마저 자기를 위협한다고 생각합니다. 니나는 백조에서 흑조로, 아니 괴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는 끔찍한 모습으로 자신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블랙스완>에서 우리는 두 명의 괴물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강박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대런 아로노프스키와 그가 만든 괴물을 소름 끼치도록 제대로 표현한 나탈리 포트만입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주인공의 심리를 제대로 표현한, 직접 발레를 하면서 변해가는 니나의 모습을 200% 보여준 나탈리 포트만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로노프스키의 연출력과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이 <블랙스완>의 최대 장점입니다.

흑조가 되어야만 하는 니나의 비극

"사람 되긴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에 나온 명대사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보다는 괴물이 나오기를 원하고 사람들에게 괴물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백조의 우아함보다는 흑조의 관능과 유혹을 더 중시한 토마스의 연출처럼 말이죠.

 흑조로 완벽하게 변한 니나

흑조로 완벽하게 변한 니나 ⓒ 폭스 서치라이트


그 속에서 니나는 자신의 실력을 과시해야 함은 물론 자신의 단점까지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대체할 사람이 없도록, 베스처럼 내쳐지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한 흑조로 변해야지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누군가를 죽이려고 할 정도로 니나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공연은 끝나고 관객들의 함성이 터져 나오지만 니나는 더 이상 과거의 우아한 백조가 아닙니다. 흑조의 삶에 지배당한 괴물의 모습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흑조가 되기를, 아니 흑조가 되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성공을 위해선 유혹에 굴복해야 하고 그 유혹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그것을 노린 돈 많은 남자들의 놀음을 견디다 못한 한 연기자는 끝내 스스로 세상을 등지면서까지 추악함을 알리려 했지만 그것은 결국 권력과 결탁한 이들의 수수방관 속에 또다시 묻혀가고 있습니다.

흑조의 본색을 드러낸 이들이 떠오른다

학교에서부터 이어지는 끝없는 경쟁. 그 경쟁은 결국 남을 짓밟아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논리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이에게는 낙오자의 딱지를 미리 씌웁니다. 무엇을 위한 경쟁일까요? 그 경쟁 속에서 또 다른 니나가 탄생합니다.

 니나의 비극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질 지도 모릅니다

니나의 비극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질 지도 모릅니다 ⓒ 폭스 서치라이트


그리고 우리가 접하는 소식들 중에는 백조에서 흑조로 변해가는, 아니 백조인 척하면서 결국 흑조의 본색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한 후배들을 지켜준다고 하면서 결국 권력의 유혹에 굴복해 지켜주겠다던 후배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시청자들에게 백조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결국 권력의 유혹 속에 흑조의 본색을 드러낸 전직 방송사 사장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두 번이나 큰절을 하고 후배들을 비난하면서까지 '여당인'이라고 내세우는 것도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괜한 생각도 해 봅니다.

<블랙스완>은 무섭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악마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득세하는 사회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흑조의 날갯짓을 보이기 위해 결국 스스로 흑조의 삶을 택하고 마는 니나의 비극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시 보일 지도 모릅니다.

'아름답고 무서운' 영화가 지금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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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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