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러분들이 모욕당하고, 해고당하고, 경제적 어려움과 추방 협박을 당하는 걸 보아 왔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 의료보험 쟁취를 위해, 직장에서 존중받기 위해 싸웁시다. 우린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거저 장미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단결할 때 장미는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을 휘두르는 회사에 맞설 만큼 강한 노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권리를 위해 일어 나십시오!" 

북미서비스노동자연맹 활동가인 샘이 열변을 토하는 이 장면은 1990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청소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스크린에 재현한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2000년작)>의 한 대목입니다. 영화에서 샘이 말한 이 '빵과 장미'는 지난 3월 8일로 103주년을 맞은 세계 여성의 날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제목 '빵'은 생존을 위한 밥이며, '장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릴 권리를 의미합니다. 1912년 매사추세츠 로렌스 파업투쟁에서 처음 등장한 '빵과 장미'는 또한 자신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존중 받기를 원하는 이민 여성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이 녹아든 상징적인 구호였습니다. 그리고 99년이 지난 2011년 3월 8일 고대와 연대, 이대 청소노동자와 경비 노동자들이 다시금 '빵과 장미'를 요구하며 연대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빵' 그리고 인간다운 존엄을 위한 '장미'

카메라가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여인들의 거친 숨소리를 뒤쫓습니다. 이윽고 LA에 도착한 마야(필라 파딜라)는 우여곡절 끝에 청소 일을 하는 언니 로사(엘피디아 카릴로)와 해후합니다. 언니가 일하는 빌딩의 감독관 페레즈는 불법이민자에 비정규직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첫 월급을 몽땅 바칠 것을 전제로 일자리를 주고, 마야는 청소용역업체 엔젤의 청소부가 됩니다. 

 샘이 엔젤 청소노동자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하다 경비원들에게 쫓기자 마야의 청소용구함에 몸을 숨기면서 둘은 만남은 시작된다.

샘이 엔젤 청소노동자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하다 경비원들에게 쫓기자 마야의 청소용구함에 몸을 숨기면서 둘은 만남은 시작된다. ⓒ 패랠랙스 픽처스


빌딩 경비원들에게 쫓기는 샘(애드리언 브로디)과 우연히 마주치며 새로운 인연이 시작됩니다. 그날 오후 샘이 로사의 집을 방문해 노조가입을 권유합니다. 임금인상은 물론 의료보험도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사는 회사에서 알면 해고 아니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뿐이라며 설전을 벌입니다. 남편이 당뇨병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몸뚱이 밖에 없다며, 마야에게도 상종하지 말라고 못을 박습니다.

그런 어느 날, 버스가 막혀 지각했다는 이유만으로 동료가 해고됩니다. 늙은 데다 안경 없인 앞도 못 보는 병신은 필요 없다는 사족이 붙습니다. 마야는 샘에게 연락하고, 그날 밤 지하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노동자가 단결하면 LA 도심도 멈출 수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식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꾀하며 단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미국 청소노동자들의 삶의 애환과 노동현장에 대한 보고서인 <빵과 장미>에서 특히 장미가 함축하는 메시지는 각별합니다. 노동절의 기원이 된 '헤이마켓 사건'으로 사형당한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가슴에 처음으로 장미를 달기 시작한 뒤로 장미는 노동자들의 꽃이자 진보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당의 엠블럼으로 장미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그 '장미'가 '빵'과 함께 직업의 안정적 보장과 함께 더 나은 삶의 질을 약속받기 위한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마야가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러나 장미도 원한다"고 했던 것처럼, 이 땅에서도 생존을 위한 밥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존엄을 위한 청소 할머니들의 연대의 함성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생애 처음 노동자를 자각하고 단결하며 맞서다

지난해에 청소 할머니에게 욕설을 퍼부은 패륜녀가 누리꾼들을 공분케 한 적이 있습니다. 청소노동자를 벌레처럼 천시하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낸 이 사건처럼 실상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마야는 같은 또래의 루벤과 엘리베이터 앞에 쪼그려 앉아 청소하는 법을 배웁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휙, 휙 지나가고 루벤은 마야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 옷의 비밀이 뭔지 알아? 우리를 안 보이게 만든다는 거야."

 샘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해 설명한 종이를 든 펠레즈가 노조에 가입하는 즉시 해고된 뒤 강제추방 당할 것이라며 협박하고 있다.

샘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해 설명한 종이를 든 펠레즈가 노조에 가입하는 즉시 해고된 뒤 강제추방 당할 것이라며 협박하고 있다. ⓒ 패랠랙스 픽처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던 이들에게 첫 위기가 닥칩니다. 페레즈가 모두를 불러모아놓고 노조에 가입하면 끝장이라며 겁박합니다. 누군가 샘과의 회합을 밀고한 것입니다. 이어 페레즈는 고참인 베르타와 따로 만나 누가 노조에 가입했는지 알려주면 의료보험 가입은 물론 임금인상에 주임으로 승진시켜 주겠다며 회유합니다. 하지만 베르타는 동료들을 배신하지 않고 결국 해고당합니다.

마야와 동료들은 청소노동자들의 연합집회에 참석하는 등 전열을 갖추며 반격을 준비하고 샘과 함께 난생 처음 피케팅에 유인물을 나눠주며 거리시위를 합니다. 또한 시종일관 면담을 거부하는 엔젤 사장에게 팩스를 4백통이나 보내 업무를 마비시켜 버리기도 합니다. 과거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일전을 불사할 의지도 다집니다.

무거운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서도 영화는 마야와 샘 그리고 루벤의 삼각 로맨스를 보태 유쾌하고 경쾌한 이야기 자락도 펼쳐 놓습니다. 이는 한결같은 시선으로 영화를 직조해 내는 켄 로치 다운 품격과 따듯한 솜씨를 엿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특히 부족한 대학 입학 등록금 준비를 위해 더 이상 함께 싸울 수 없다는 루벤에게 왜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마야가 진솔하게 말하는 대목은 감독이 <빵과 장미>를 통해 띄우는 메시지를 요약해 줍니다.

그 와중에 변수가 돌출합니다. 마야의 형부가 뒤풀이에서 병이 악화되어 쓰러지고, 샘은 연맹 상부로부터 경고를 받습니다. 연맹 상부는 샘에게 '무리한 싸움으로 장래에 제동을 걸지 말라'는 주문을 합니다. 이 장면은 미국 노동운동 상층부의 개량주의를 함축합니다. 샘과 조합원들에게는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전술이 요구됩니다.

샘은 빌딩의 최대 세입자인 연예인 변호사 사무실이 다른 법률사무소와 합병 축하파티를 하는 자리를 기습해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공론화하자고 제안합니다. LA의 저명인사와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참석하는 자리에서 청소노동자들의 '빵과 장미'를 뉴스메이커로 만드는 것만큼 신나면서 효과적인 전술은 없기 때문입니다. 샘의 예측대로 이들의 실력행사는 뉴스거리가 되고 회사는 해고와 구속 등 강경방침을 선언합니다. 유령 취급받던 청소노동자들이 일거에 LA의 이슈를 선점하며, 인간의 모습으로 얼굴을 내민 것입니다. 

마야에게 동료들이 있듯 청소 할머니에겐 우리가 있네

사측의 재 반격으로 마야 등 6명이 주동자로 찍혀 해고됩니다. 누가 밀고한 것일까? 당뇨로 쓰러진 남편의 수술비를 위해 언니 로사가 사측과 거래를 한 것입니다.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 온 마야는 언니를 배신자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마야의 일자리를 위해 페레즈와 잠자리를 하고, 10대에 미국으로 온 뒤 몸을 파는 창녀로 돈을 벌어 멕시코의 가족과 병든 남편과 아이들을 먹여 살렸다는 언니의 충격적인 고백은 마야에게 청천벽력입니다.

 엔젤 조합원들과 연맹 소속 청소노동자와 시민단체 등이 가세한 가운데 대열 후미에서 '우리는 빵과 함께 장미도 원한다'는 펼침막을 들고 가두시위를 하고 있다.

엔젤 조합원들과 연맹 소속 청소노동자와 시민단체 등이 가세한 가운데 대열 후미에서 '우리는 빵과 함께 장미도 원한다'는 펼침막을 들고 가두시위를 하고 있다. ⓒ 패랠랙스 픽처스


로사가 통곡하며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멸시와 천대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지난 8일부터 연대파업의 기치를 내건 이 땅의 어머니들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오래도록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난 모두가 미워! 평생을 참고 살았어. 내 속에 다 담아 두고 말이야. 남편이랑 두 아이가 있지만 난 더러운 창녀야. 내 딸이 아빠가 누구냐고 묻는데, 뭐라고 하지? 기억도 안 나는데. 난 누가 애 아빠인지 몰라. 딸아, 넌 사창가에서 태어났다고 말할까? 그래 네 말이 맞아, 난 더러운 배신자야. 가족들한테도, 딸한테도…."

'우리는 빵과 함께 장미도 원한다'는 펼침막을 들고 북미서비스노동자연맹 소속 청소조합원들과 대학생 등이 가세한 시위대는  LA 도심을 가로 질러 엔젤 빌딩 로비는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합니다. 경찰이 투입되고 강제해산과 함께 유치장에 수감되지만 밖에서 연맹이 사측과 협상을 벌여 전원 복직과 함께 의료보험 가입 등을 쟁취하면서 싸움은 승리합니다. 다만, 마야는 절도죄로 조사를 받고 강제추방 당합니다. 영화의 이 반전은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간고한 족쇄에 묶여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그려냅니다.

마야가 불법이민자로 강제추방 당한 미국사회 못지않게 한국사회도 '이주노조 잔혹사'에 한 획을 긋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18년 간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을 위해 일해 온 네팔 출신 문화활동가 미누가 2009년 강제 추방당하는 등 마야와 같은 이주노조 활동가들은 지속적으로 쫓겨났습니다. 최근에는 한 술 더 떠 합법적으로 등록한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마저 강제 추방시키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줄곧 영화예술로 승화시켜 온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는 1988년 미국 덴버에서 시작된 '청소부에게 정의'를 돌려주자는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99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듯이 청소노동자들의 처지 또한 별반 달라진 게 없는 현실 속에서 '빵과 장미'를 향한 이들의 투쟁에 감독은 영화로 그 정당성을 부여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맞설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런 마당에 청소 할머니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에 진리와 정의를 추구한다는 대학생들이 눈을 감고, 지성을 대표한다는 교수들이 귀를 막고,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배 불리는 대학들이 막아선다면 그것은 상아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낱 장사치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서 대학은 지성의 전당 운운할 자격은 없습니다.

대신 청소 할머니들에겐 사람이 있습니다. 해고로 대학등록을 포기한 루벤을 위해 마야가 주유소를 털어 가까스로 입학시킨 '동지애'가 있듯이, 길 건너서 홀로 지켜보다 버스에 실려 추방당하는 동생을 뒤쫓아 가며 눈으로 화해하는 '로사'가 있듯이, 그리고 "우린 너와 함께 할 거야"라며 환하게 웃는 '동료'들이 있듯이, 연대파업 중인 청소 할머니들의 곁엔 언제나 '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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