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엔식량농업기구가 "한국의 구제역이 최근 50년 동안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며 경고했습니다. 소·돼지가 340만 마리 넘게 도살된데다 눈가림식 매몰로 인한 토양과 지하수 오염 등 환경재앙이 초래할 손실이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구제역으로 인해 뒷전에 밀려난 조류인플루엔자로 300만 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 등이 매몰 처분된 최악의 피해까지 감안하면 가히 단군 이래 사상 최대의 재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반도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구제역은 바이러스와 함께 가축을 좁은 공간에서 밀집 사육해 면역력을 떨어트린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이 같은 구제역 사태에 대해 <잡식동물의 딜레마>와 <행복한 밥상>으로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이클 폴란 교수가 참여한 다큐멘터리 <푸드 주식회사>(2008년작)는 세계식품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에 주목할 것을 요구합니다.

작금의 구제역 사태가 인간의 과도한 육식과 맞물린 '검은 장막'의 커넥션에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일용하는 음식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영화는 4분 가까이 내레이션 오프닝에 할애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며,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그 '먹을거리 사슬의 진실'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수면위로 공개합니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육가공공장으로 실려 가는 소의 모습은 다국적기업이 지배하는 현대 음식산업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육가공공장으로 실려 가는 소의 모습은 다국적기업이 지배하는 현대 음식산업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리버로드 엔터테인먼트


먹을거리 사슬의 근원을 추적하기 위한 여정은 10개의 챕터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 챕터 '모든 음식을 패스트푸드'에서 시작해 식량위기를 다루는 열 번째 챕터 '시스템의 충격'에 이르면 식량안보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섭니다. 곡물자급률이 26.7%에 불과하고 채소 등 경지면적은 갈수록 줄어드는 마당에 구제역 등으로 인해 축산업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폴란 교수는 "우리가 먹는 음식은 세상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세상의 몸을 먹은 뒤 다시 그 세상의 일부가 된다는 뜻입니다. 섭생을 매개로 인간과 자연이 순환하고 결국 자연으로 복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밀집된 지역에서 옥수수 사료를 먹으며 대량으로 생산되다 구제역으로 도살되는 소, 돼지들의 단발마의 비명과 발버둥은 아비규환의 지옥도 그 자체입니다.

<푸드 주식회사>는 구제역의 한 복판에서 시름시름 앓는 한국사회에 묻습니다. 우리가 먹는 고기가 정말 고기인지 사료인지, 먹을거리의 진실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구제역과 광우병 등이 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지, 씨앗에서부터 슈퍼마켓까지 전체 먹을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되는지 그리고 우리의 섭생이 자연으로의 복원인지 지옥도를 향한 발걸음인지 등에 심상치 않은 화두를 던집니다.

다국적기업과 정치권력의 커넥션이 음식산업을 지배한다

영화는 1970년대에 다섯 개의 소고기 회사들이 시장의 25%를 지배한 반면 오늘날엔 네 개 회사가 시장의 80%를 지배한다고 설명합니다. 돼지고기나 닭도 예외가 아닙니다. 설사 패스트푸드는 먹지 않더라도 이 시스템에 의해서 제조된 고기는 누구든지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석양의 지는 해 신세가 된 맥도날드를 대신해 세계적 식품회사인 타이슨사를 주목합니다.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와 전 법무부장관 존 애쉬크로프트 등 정치권력은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기업과 커넥션을 맺고 세계식품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와 전 법무부장관 존 애쉬크로프트 등 정치권력은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기업과 커넥션을 맺고 세계식품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 리버로드 엔터테인먼트


타이슨사는 닭 생산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알에서 부화해 도살될 때까지 1950년에는 70일이 걸렸으나, 2008년에는 48일이면 족합니다. 거기다 크기는 두 배로 커졌습니다. 순 살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닭의 가슴이 크게 '새로 설계'된 것입니다. 닭들은 햇빛이 완벽하게 차단된 밀집 공간에서 몇 발짝도 걷지 못한 채로 제 무게를 감당 못해 병들거나 주저앉아도 타이슨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거해 갑니다.

티이슨사와 같은 다국적기업이 음식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대량생산과 함께 값싼 고기의 대량공급이 전제돼야 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옥수수입니다. 미 대륙 전체의 30%에서 재배되는 옥수수는 세계를 정복한 식물로 꼽힙니다. 그 선봉에 선 다국적기업이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불리는 몬산토입니다. 몬산토는 유전자조작(GM)에 특허권을 적용해 씨앗에서부터 슈퍼마켓까지 통제하며 타이슨사의 파트너로 세계식품산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몬산토와 타이슨사 등은 로비를 통해 미 정부가 옥수수 농장에 보조금을 지원하도록 한 뒤, 생산비용 이하의 저렴한 값으로 옥수수를 사들입니다. 이렇게 사들인 옥수는 풀을 먹도록 진화한 소를 빨리 살찌우도록 사료로 사용되고 고기 가격을 떨어뜨립니다. 우리가 실컷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순환곡선입니다. 그와 함께 옥수수는 웬만해서는 부패하지 않게 재조합되어 슈퍼마켓에서 파는 먹을거리의 90%에 첨가되면서 세계의 먹을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문제의식은 다국적기업들과 미 정부사이에 회전문이 있다는 '검은 장막'에 이르러 정점을 찍습니다.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와 전 통상대표부 대표 미키 켄터를 위시해 미 연방 대법관은 몬산토에게 특허권을 준 변호사 출신이고, 상원의원들은 스미스필드 이사며, 몬산토 이사 출신이 식품의약품안전청(FDA) 부청장을 역임하는 등 이들 권력과 다국적기업의 커넥션이 음식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를 차단하고 있다고 논증합니다.

농부와 노동자를 수탈해 만들어지는 고기

다국적기업의 음식산업 지배는 농부와 노동자들의 생활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영화는 농부들이 다국적기업의 '계약농'으로 어떻게 전락하는지를 또 다른 세계적 식품회사 퍼듀사를 밀착 취재해 그 실상을 파헤칩니다. 퍼듀사는 양계장 한 채를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 30만 달러를 대출해 준 뒤 추가 투자를 요구합니다. 거절하면 계약해지와 함께 위약금이 뒤따릅니다. 농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그 결과 늘어나는 것은 빚입니다. "양계장 2개로 1년에 1만8천 달러를 버는데 비해 빚은 50만 달러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농부는 증언합니다.

 스미스필드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이 미국 내 반이민 여론에 따라 체포되어 국외로 추방되고 있다. 하지만 스미스필드사는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다.

스미스필드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이 미국 내 반이민 여론에 따라 체포되어 국외로 추방되고 있다. 하지만 스미스필드사는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다. ⓒ 리버로드 엔터테인먼트


몬산토에 비하면 퍼듀사는 양반입니다. 몬산토는 농부들이 추수 때 옥수수 씨앗 등을 저장할 수 없도록 전직 경찰출신 등으로 구성된 사설 팀을 운영하는데, 씨앗 세척을 하다 기소된 농부의 전 생애를 샅샅이 뒤진 뒤 끝내 파산시키는 소송과정은 공포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마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전 세계 컴퓨터 뒤에서 정보 자산을 독차지한 것처럼 몬산토는 농부들의 목을 조이며 먹을거리의 지적 자산을 독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다국적기업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상상 이상입니다. 세계 최대의 도살장인 스미스필드사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미국의 옥수수가 멕시코 시장을 붕괴시키자 길거리로 내 몰린 농부들과 불법이민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합니다. 시간당 2천 마리의 돼지를 처리하는 공장에서 이들은 피와 똥오줌이 범벅이 된 내장과 살을 처리하다 손톱이 모두 빠져버립니다.

영화는 네 번째 챕터 '1달러 메뉴'에서 다국적기업의 대량생산 시스템에 의해 2000년 이후 출생한 미국인중 1/3과 가난한 유색인종의 1/2이 비만으로 인한 각종 성인병에 노출된다고 적시합니다. 소득 수준이 낮은 가난한 계층일수록 비싼 과일이나 채소 대신 값싼 패스트푸드를 먹고 당뇨병 등을 앓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햄버거를 먹고 0157 대장균에 중독되어 미국 각지에서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자 암모니아로 멸균 세척한 고기를 신기술이라며 시장에 내 놓기에 이릅니다.

결국 우리가 슈퍼마켓 등에서 편리하게 사 먹는 '암모니아 고기'는 빚더미에 짓눌린 농부들과 저임금과 직업병과 해고가 일상화된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한다

구제역 재앙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월 한 달 동안 미국산 소고기는 50%나 수입이 급증했고, 돼지고기 수입도 사상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반면 청와대는 설이 지나서야 구제역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등 갈팡질팡 방역에 늑장대응으로 일관했고, 아직 공식적인 사과조차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여당이 미국산 고기의 수입을 위해 의도적으로 구제역을 방치했다는 커넥션 혐의가 저잣거리에 떠돌만합니다.

만약 참여정부 시절에 이 정도 규모의 재앙이 터졌다면 조중동은 목청껏 '탄핵'을 부르짖고도 남았을 터. 하지만 조중동과 KBS는 이상하리만치 너그럽기만 합니다. 참다못한 민주당이 '범국민 신문고 운동'을 제안하며 '구제역 민심'을 응집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영화는 담배와의 전쟁으로 막강한 담배산업의 지배력에 균열을 낸 것처럼 먹을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다국적기업과 커넥션 세력에게 저항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무엇이고, 어디서 오며, 우리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무지몽매한 상태로 있도록 의도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검은 장막'에 맞서서 소비자 주권을 되찾으라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그 시작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전제해야 합니다. 일전에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우리가 세운 업적 너무 자랑하지 말자"고 했던 그 업적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에서부터 책임자 문책 등 구제역 재앙에 대한 '민심의 심판'을 내려야 합니다. 영화는 엔딩 크레딧을 올리며 우리들에게 한 마디 남깁니다.

"당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푸드 주식회사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마이클 폴란 몬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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