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박경근 감독이 <청계천 메들리>란 영화로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하였다. 미술과 영화를 동시에 병행하고 있는 감독인 만큼 상당히 독특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박 감독은 서울 출생으로 UCLA 학부 졸업 후 칼아츠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으며, 아트와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다큐멘터리 경쟁에 출품된 <청계천 메들리>는 실험영화의 성격이 명확한 작품이다(리뷰 미디어 아티스트가 본 청계천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실험적인 요소에 대한 의문점을 풀기 위해, 지난 12일 박경근 감독을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처음부터 실험영화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감독

▲ 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감독 ⓒ 무비조이(MOVIEJOY.COM)


- 부산국제영화제에 작품이 초정되어 상영되었습니다. 첫 방문이신지요? 작품이 상영되고 관객들에게 평가받는 기분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첫 방문입니다. 작품이 상영되어서 기분이 너무 좋고요. 흥분되고 그렇습니다. 제 영화를 평가 받고 싶었는데 이렇게 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혼자나 지인분들이랑 함께 보는 것과 관객들이 보시고 제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저 같은 경우에는 부산 출신이라서 청계천 의미에 대해서 조금 생소합니다. 저 같이 청계천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왜 이곳을 영화의 주 배경으로 삼았는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청계천이 서울 중심에 있는 하천 같은 것인데요.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곳에서 우리사회 근현대사를 겪어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요. 특히 서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해가던 아주 중요한 공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오래된 소설에도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면서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만큼 서민들과 친숙한 장소이고 오랜 된 장소입니다."

- 다큐멘터리영화이기보다는 실험적인 영화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실험영화라고 내리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다보니까 실험 영화가 되었고요. 이런 형식으로 풀어야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험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청계천은 아직 '죽어버릴' 공간 아니다

청계천 메들리 스틸컷

▲ 청계천 메들리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 영화에 내레이션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부분들이 감독님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영화 틀을 짜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들어간 것인지 궁금합니다.
"반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 가족사를 보면 할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제철공장을 하시다가 해방 후 한국으로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제가 픽션적인 부분을 넣어서 함께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 분명 영화는 '쇠'에 대한 이야기 같습니다. 어떻게 '쇠'를 영화 전체 주제로 잡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청계천을 다니다보면 제일 많이 보는 것이 '쇠'이구요. '쇠'에 대해서는 저도 청계천에서 배운 것인데요. 우리가 흔히 보는 이런 철제 테이블, 극장이나 다른 곳에서 많이 보이는 철제 기둥, 그리고 여러 가지 나사 부품 등을 다 '쇠'로 만든다는 것이죠. 저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인데, 실제 이런 것들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경우가 있죠. 분명 우리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우리가 평소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쇠'란 것이 우리의 무의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마지막 장면에 청계천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는데요. 내레이션에서 청계천이 실제 죽어가는 장소 같은 뉘앙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기계공 아저씨가 청계천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는 것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것은 보는 사람들이 결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말입니다. 실제 정책적으로는 대안이 없는 상태이고, 대안이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가든5인데요. 현실적으로 그런 정책들이 큰 효과가 없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제 영화에 나왔던 주물 하시던 분은 그곳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가든5에 넣을 수가 없습니다. 주물 자체를 다룰 수 있는 시설을 해놓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에게는 전혀 현실적인 대안이 안 되는 것이죠.

서울시에서는 이곳으로 옮겨가는 조건으로 뭔가를 해주겠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탁상행정이죠. 아마도 시에서 볼 때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겠지 그런 생각인 것 같아요. 하지만 청계천에서 실제 살아가는 분들은 갑자기 자기 삶을 끝낼 수는 없잖아요.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되는데, 어떤 분들은 가든5 가시는 분도 있고, 또 다른 분들은 아예 다른 근방 도시로 이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남아 있는 분들도 있고요.

만약 청계천을 보존해야겠다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서 충분히 살릴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죽어버릴 공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끝에 희망을 담아주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절망적이지 않게 희망 있게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청계천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지금 절실히 필요한 상태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시는 분들은 마음에 심적인 여유가 없는 상태입니다."

관객들이 "이게 뭐야" 할 수 있지만...

- 영화에 대한 평가가 관객들에 따라서 상당히 다를 것 같습니다. 감독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로 관객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지만 다 좋아하시지는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조금 다른 시도로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기 때문에, 같은 것들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려고 했던 것에 집중하셔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첫 오프닝 장면은 너무 관념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프닝 부분은 꿈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꿈 이야기는 진짜 제 이야기예요. 꿈에 대한 이미지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표현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추상적인 부분으로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제가 꿈에서 나왔던 이미지와 물론 똑같지 않지만 비슷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 감독과의 대화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너무 흥분되었습니다. 질문들이 너무 좋은 것들이 많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은 질문이 나와서 특히 더 좋았습니다. 실험영화가 어렵거나 난해하다고 생각해서 '이게 뭐야?' 이럴 수 있잖아요. 오히려 관객들이 더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 한국에서 첫 작품으로 실험영화를 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개봉하기 힘들다는 강박관념에 쫓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저는 그 부분에 큰 욕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 자신을 영화감독이라고 아직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 자체를 감독으로서 만든 것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색을 담아서 만들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감독이라면 카메라부터 시작해서 다른 세세한 요소들을 신경 써야 하잖아요. 전 혼자서 다 했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과 거의 다르게 한 것 같습니다. 음악 부분만 다른 분이 도와주셨고요."

- 영화에서 음악이 상당히 인상에 남습니다.
"음악을 만들어 준분이 제 친구고요. 제가 그 친구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의뢰를 해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1년 넘게 봐서 음악이 지겨워졌는데요. 편집했을 때는 음악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쇠'는 어쩌면 남자에 관한 이야기

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감독

▲ 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감독 ⓒ 무비조이(MOVIEJOY.COM)


- 두 번째 영화도 구상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두 번째 작품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가지고 비디오아트로 전시를 했어요. 보니까 좀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전 미술 쪽하고 영화 쪽하고 같이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다음 작품도 '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쇠'란 것이 아주 중요한 물질이란 생각이 들고요. 제철소나 조선소 이런 곳에 가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 두 번째 작품도 '쇠'로 하실 것이란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감독님에게 '쇠'란 것이 어떤 이미지입니까?
"이게 어떻게 보면 남자의 이야기 같아요. 영화에도 보시면 거의 남자 분들만 나오시잖아요. 생각해보면 남성주의로 지우친 것 같은데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정말 남성분들만 일을 하고 계셨고요. 개인적으로 아저씨 이미지 하면 배나오고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이미지가 많잖아요. 저도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아저씨란 이야기를 듣고 있고요. 그래서 한 가지 생각든 것이 도대체 아저씨란 이미지가 어떻게 나왔나 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생각할 때는 남자의 겉모습이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속은 여리지만 다른 사람에게 여린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단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안하면 다른 사람에게 눌리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그러잖아요. 이런 것들이 '쇠'의 이미지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국립박물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면서 동이나 금, 은으로 만든 것은 오랫동안 보존이 되어요. 하지만 '쇠'로 만든 것은 오래가지 않아요. 처음 만들 때는 강하지만 '쇠'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녹이 슬고 부서지는 것이죠.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가 없어요. 이런 '쇠'의 속성이 60~70년대 겪으면서 떠오른 강한 남성상의 이미지와 겹쳐진단 생각이 들었어요."

- 미술도 함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술을 하다가 영화 쪽으로 관심을 두신건지 아니면 영화를 하시다가 미술 쪽으로 관심을 두신 건지 궁금합니다.
"전 디자인 일을 하다가 영화로 오게 되었어요. 미술 공부를 하다가 영화 쪽으로 함께 온 것이죠. 영화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봐왔고요. 어떨 때보면 영화 하시는 분들은 다른 세상하고 소통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미술 하시는 분들은 영화 하시는 분들을 또 이해못하시고요. 제 인생이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이번 영화도 미술과 영화 모두 양쪽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 영화에서 흐름이 끊어지는 듯한 분위기 역시 미술과 영화 양쪽이 양립하기에 발생한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일반영화하고 제 작품이 다른 것이 있다면 기승전결이 없다는 것입니다. 뭔가 기대를 하고 봤는데 '이거 뭐야?'하면서 맥이 빠질 수도 있단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한 이야기 구조는 순환방식이었습니다. 이게 할머니께서 저한테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가족사 이야기 등등 오래된 여러 가지를요. 그런데 이런 것은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 전달 방식이잖아요.

이런 구전들이 한번 반복될 때마다 새로운 디테일이 생기고 그러더라고요. 지루하게 생각했는데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전 그런 식으로 영화를 생각했습니다. 제가 판단할 때는 영화에 시간 개념이 좀 흩어져 있다고 생각 합니다. 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 질문으로 감독님 영화를 어떤 방향에서 읽어내야 감독님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제 영화는 치유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 작품 제작에 들어갔는데요. 그 과정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가면서 하는 방향에서 만들어갔습니다. 제가 의도하는 방향은 이랬고요. 그런데 관객 분들이 제 영화를 다른 방향으로 많이 읽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최종적으로 바라는 제 영화의 모습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박경근 무비조이 MOVIE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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