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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저녁 9시 부산 해운대 노보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은 부산국제회고전의 주인공 김지미씨를 위한 행사였다. 김지미씨가 출연했던 작품들과 영화계 인사들의 찬사가 영상으로 소개됐고, 회고전 기념 책자에 프랑스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디렉터스 체어'까지 증정 받았다.

17세에 영화배우로 데뷔해 올해 71세를 맞는 왕년의 톱스타는 "오늘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날 같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고, 회고전을 마련해 준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장미희, 강수연, 문소리, 예지원 등 배우들이 참석해 선배 배우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고,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세계 굴지의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 영화의 역사의 상징인 여배우에 대해 회고전을 마련하고 그를 기리는 행사를 여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라고 보여진다. 더구나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면 영화제로서 의당 떠맡아야 할 임무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은 올해 회고전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영화제를 앞두고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신구세대 영화인이 대립과 보혁 갈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화합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김지미 회고전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신구세대 화합 취지 반하는 김지미씨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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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취지와는 달리 이날 행사에는 원로 영화계 인사들이 많이 참석한 반면 젊은 영화인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행사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까지 엿보였다. 이는 최근 김지미씨가 보수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배우 문성근, 명계남씨 등을 거론하며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지미씨는 영화제를 앞두고 지난 9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명계남·문성근씨 등을 직접 언급하며 "(당시 영화계 현안을) 영화인협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을 다른 단체를 만들어 데모만 해 영화계 물을 흐렸고, 구세대들을 다 물러가라고 했다"면서 "이런 식이면 공산당과 뭐가 다른가"라고 발언했다.

또, 지난 7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성근, 명계남씨를 지칭하며 "배우가 정치색을 띠면 안 된다. 오로지 좋은 연기자가 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나는 50여년 배우 생활을 하며 이렇게 박수를 받지만, 그때 설쳤던 '아이'들은 생명이 끝났지 않았느냐"면서 "걔네들이 아직 활동하는가"라고 발언했다.

이 같은 발언에 젊은 영화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영화제 측이 의도했던 회고전의 취지와는 반대되게 영화계 신구세대와 보혁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득권 놓고 싶지 않은 원로 영화인들의 억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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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회의에 관여했던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당시 대종상 심사 과정의 문제도 있었고 구세대 영화인들의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영화인협회'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인회의'가 만들어졌던 것이고 영화인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이었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다 영화계 흐름에 밀려났던 인사들이 이제 와서 당시 자신들의 옳았다는 식으로 억지 주장을 말하는 것 같다"고 김지미씨의 발언을 일축했다.

또 "당시 영화계 개혁을 주도했던 사람이 문성근, 명계남 밖에 없었냐"면서 "젊은 영화인들을 우습게 보는 가벼운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한 독립영화계 인사는 "김지미 선생은 신문도 안 보는 모양이다. 두 분 다 작품 활동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문성근씨가 최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에 다녀온 것과 명계남씨가 연극 <어느 독재자의 고백>에 출연하고 있음을 지칭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 <어느 독재자의 고백>의 연극 공연을 기획한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tak0518)에 올린 글을 통해 김지미씨의 시선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김지미씨가 명계남, 문성근 등에게 "걔들이 아직도 활동하는가? 설치던 아이들은 끝나지 않았는가? 난 배우가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는군요. 저는 그녀를 권력의 기생, 본투비 딴따라라고 비난하겠습니다."

정치권 인사 개막식 앞자리 차지, 주객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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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해 '좌파 공세'를 겪은 후 올해 지나치게 우편향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독립영화를 탄압하는 영진위 정책에 반대하며 독립영화 지원을 늘리는 등 영화제로서 기본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으나, 지난해 말도 안 되는 좌파 공세를 겪은 이후 중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9일 한국영화 회고의 밤 참석자들 중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색깔론 공격에 선봉장 역할을 했던 정진우 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낭비성 많은 영화제"라며 부산을 비판했던 김갑의 충무로 영화제 부조직위원장 등 충무로 원로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과 진동섭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이 영화배우나 감독 등 영화 관계자만이 걸어야 하는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한 것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이 개막식 때 영화계 인사들을 뒷전으로 제치고 맨 앞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해서도 주객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개막 당일 레드카펫이 아닌 일반 출입구로 입장했으나 개막식 다음날인 8일 기자간담회에서 "여권에서도 부산영화제를 좌파 영화제로 보지 않는다"고 언급한 부분 등도 논란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그럼 언제 부산영화제가 좌파 영화제였냐?"는 영화인들의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앞서의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부산영화제는 지금까지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은 상식적인 영화제였을 뿐인데, 지난해 부산영화제를 색깔론으로 보려는 시선이 생긴 이후 스스로 위축되는 듯한 분위기가 엿보인다"면서 "국제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제대로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치적인 현실에 적당한 타협을 하려는 것에 대한 외부에서 갖는 우려 시선으로, 영화제 측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 P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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