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수(엄정화)같은 작가에게 작품의 독창성이란 '영혼'과도 같은 것이다. 영화에서 백희수는 표절 시비 때문에 엄청난 강박에 시달린다.

백희수(엄정화)같은 작가에게 작품의 독창성이란 '영혼'과도 같은 것이다. 영화에서 백희수는 표절 시비 때문에 엄청난 강박에 시달린다. ⓒ 에코필름


15일 개봉한 영화 <베스트셀러>는 여러 인기작을 쓴 중견 작가 백희수(엄정화 분)의 소설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혼란과 의혹을 그리고 있다. 백희수는 재기를 꿈꾸며 한적한 시골의 별장으로 칩거하는데 도무지 글줄이 나오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백희수는 결국 딸이 들었다는 괴이한 이야기로 새 소설을 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 또한 10년 전에 발표된 책과 내용이 비슷해 다시 표절 의혹을 받는다. 결국 백희수는 표절의 오명을 벗기 위해 별장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 추리극의 형식을 빌려 '표절'이란 주제를 말한다.

영화에서 백희수의 남편이자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 박영준 역을 맡은 류승룡은 12일 열린 시사회에서 "정말 대한민국에서 나오기 힘든 영화가 나왔다"고 말했다.

사실 표절이란 주제를 정면으로 택해 풀어나간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표절'은 심각하면서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창작의 고통은 산통과 비견된다고 한다. 모진 고통 끝에 작품을 낳는 창작자들에게 표절이란 자기 자식을 도둑맞는 일과 다름없다.

<베스트셀러>에서 2008년 <혀> 표절 논란을 보다

지난 2008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 사건이 있었다. 신인작가 주이란씨가 중견작가인 조경란씨의 새 작품이 자기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주이란의 주장에 따르면, 2007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단편소설 <혀>를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조경란이 표절하여 장편소설 <혀>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 문학동네와 조경란 측은 심사에 참여하긴 했지만 작품을 읽은 적 없고 이미 10년 전부터 구상한 소설이라며 주이란의 주장을 일축했다. 영화 <베스트셀러>의 내용은 대번에 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주이란은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저는 영혼을 도둑맞았습니다'라는 기고문을 실어 문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표절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조경란이 2007년 장편소설 <혀>를 발표하자 주이란은 2008년 똑같이 <혀>라는 제목으로 단편소설집을 출판했다.

그녀의 남편이 직접 출판사 '글의꿈'을 차리고 글을 모아 출판한 책이었다. 주이란은 책 말미 '작가의 말'에서 "조경란 소설가의 <혀>는 내 작품 <혀>와 주제, 소재, 결말이 비슷"하며 "사건의 구성과 전개 과정, 등장인물의 성격, 배경, 문체와 뉘앙스, 일부 문장까지도 모방의 흔적이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파문은 크지 않았다. 기성 문단과 주류 언론은 입을 닫았다. 주이란은 저작권위원회에 분쟁조정신청을 제기했지만 중재기간 3개월 동안 조경란이 미국 체류 등의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고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결국 <혀>의 표절 시비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조경란은 2008년 <풍선을 샀어>로 <조선일보>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막강한 문단권력에게 겁 없이 도전한 주이란이 아마 그 성채에 입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수한 뒷말과 상처만 남기고 사라지는 표절 논란

 왼쪽이 2007년 출판된 조경란의 장편소설 <혀>. 오른쪽이 2008년 출판된 주이란의 단편소설집 <혀>이다. 주이란은 조경란이 자기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왼쪽이 2007년 출판된 조경란의 장편소설 <혀>. 오른쪽이 2008년 출판된 주이란의 단편소설집 <혀>이다. 주이란은 조경란이 자기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 문학동네/글의꿈


사실 표절이냐 아니냐를 가리기는 어렵다. 문장을 아예 베껴 쓰지 않은 다음에야 작가의 성질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표현들을 솎아내 콕 집어 표절이라고 증명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거기다 대단한 보수성으로 유명한 기성 문단 또한 표절이란 말 자체를 꺼내기 어렵게 한다. 주이란과 조경란의 경우도 표절을 입증할 방법은 요원하다. 두 작가의 <혀>를 비교해 읽어보면 사랑하고, 거짓말하고, 맛을 보는 혀의 성질과 역할, 혀의 구강성교, 혀를 요리하는 결말이 비슷하다. 하지만 표절이라 주장하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영화에서 박영준은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인 표절이 더 많다"고 했다. 인간의 기억이란 간사한 것이라 옛날에 읽은 책의 내용이 무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정말로 표절인 줄 모르고 표절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단의 역사를 되짚어도 표절을 인정하는 작가는 없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창작을 직업으로 삼는 이에게 표절이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작가에게 있어 작품의 독창성이란 자존심 이상의, 마치 '영혼'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영화 <베스트셀러>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백희수는 자기 작품의 독창성을 증명하려는 강박에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다. 정신과 의사는 백희수의 행동을 '공상허언증'이라 진단하며, 그것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진실마저 창작하려는 증상이라 한다. 나중에는 표절했는지 아닌지 본인도 헷갈릴 지경에 이른다. 독창성의 강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표절은 작가들이 목숨을 거는 문제임에도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고 법적 기준도 명확하지 않아 대부분 무수한 뒷말과 당사자들의 상처만 남기고 끝난다. 영화도 해답을 조심스레 미루고 있다.

백희수는 영화의 결말에서 "판단은 여러분들께 맡기겠다"고 한다. 작품이란 결국 독자가 읽는 것이기에 독창성의 판단도 독자의 것이라는 대답이다. 어쩌면 가장 현명한 해답일지 모른다. 이 영화, 공포영화 장르의 관습을 지나치게 충실히 따르고 음향효과의 과잉과 남발은 졸음을 부르지만, 가장 민감한 주제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용기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