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이' 이봉주가 그의 이름에서 '선수'라는 수식어를 떼어 놓은 지 약 5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이봉주 선수'가 익숙하다. 그만큼 오랜 시간 '선수'로 우리 곁에 머물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대전 전국체육대회를 끝으로 선수생활은 은퇴한 그는 이제 41살의 나이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국민 마라토너'에서 '국민'으로 돌아온 이봉주 선수를 만나 새로운 시작에 대해, 그리고 그가 떠남으로써 한국 마라톤 계에 남겨진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우선 최근 근황부터 듣고 싶다. 선수생활 은퇴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주로 휴식을 취하면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틈틈이 출판 작업하면서 운동만 하느라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많이 만나고 다닌다."

- 최근에 자서전을 편찬했는데, 운동만 하다 글 쓰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책 쓰는데 시간 할애 많이 했다. 많이 힘들더라. 다행히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서 잘 마무리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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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안 했으면 목장 운영 했을 것"

- 지난해 전국체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는데, 은퇴선언 당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뭐였나. 
"가족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 그리고 그동안 힘들게 운동해온 과정들 하나하나가 생각나더라. 막상 끝낸다고 하니 아쉬움도 남고…. 그 순간에는 아쉬움 반, 후련함 반이었던 것 같다."

- 은퇴 후 몇 개월이 지났다. 선수생활을 그만둬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좋은 점이라면 무엇보다 운동에 대한 부담감 없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좋다. 반면에 자유롭게 지내다 보니 생활 리듬이 깨지고 있다. 이제 밥을 먹거나 일어나는 시간조차 일정치 않다. 지금까지 인생의 반을 마라톤만 하면서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생활을 반복했는데, 그런 리듬이 끊기니까 약간 불안하기도 하다. 빨리 불규칙한 생활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 그나저나 이제 백수가 됐다. 이제 경제력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을 텐데.
"사실 아내와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현실적으로 백수가 됐으니까.(웃음) 하지만 1년 정도는 아내도 일단 지켜봐 주기로 했다. '경제력'에 대한 고민은 지금 구상중인 일들을 진행하면서 천천히 풀어 나갈 생각이다."

- 앞으로 스포츠 행정가를 꿈꾼다고 하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운동선수들에 대한 각종 지원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을 말한다. 내 스스로 운동을 하면서 고쳐져야 할 부분들을 많이 봤다. 현실적으로 고치기 힘든 부분들도 있었고, 당장이라도 수정이 가능할 것 같은 것들도 있었다. 이러한 부분들을 연구해서 고쳐보려 하는 것이다. 차근차근 준비는 하고 있는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사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주변에서 함께 해야 가능 한 일이라 생각한다."

- 이봉주 선수는 오랜 시간, 많은 거리를 달렸다. 마라톤 선수가 안 됐으면 무슨 일 하고 있을까.
"글쎄,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건 목장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해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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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는 평생 고마워 할 친구"

- '국민 마라토너'라는 별명처럼 마라톤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그렇다면 마라톤으로 인해 잃은 것은 무엇인가.
"음…. 마라톤 하면서 잃은 게 있다면 일단 시간적인 부분인 것 같다. 그동안 남들과 같이 이것저것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생활 자체가 운동 사이클에 맞춰있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런 사회생활에 대한 아쉬움? 어떻게 보면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이 부러웠다."

-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어떤 대회인가? 가장 좋았던 대회, 좋지 않았던 대회를 꼽아 달라.
"제일 좋았던 기억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것과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다. 안 좋았던 기억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다. 그때는 솔직히 정신적인 충격도 많이 받았다."

이봉주 선수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레이스 도중 다른 선수들과 부딪혀 넘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당시 이봉주 선수는 좋은 컨디션 덕분에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고 말했다.

- 이봉주 선수와 마라톤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황영조 선수가 아닐까 싶다.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황영조 선수와의 관계는 어떤가.
"솔직히 황영조 선수와의 관계는 좋다. 정말 친한 친구다. 언론에서 경쟁관계로 몰아갔을 뿐이지 좋은 친구사이다. 지금 아내 역시 황영조 선수 소개로 만났다. 나로서는 평생 고마워해야 할 친구다.(웃음)"

- 이봉주 선수가 은퇴함으로써 뒤를 이을 선수가 없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을 것 같은데.
"나도 그 부분이 많이 걱정된다. 제가 은퇴경기에서도 1등으로 들어올 정도로 뒤를 따라주는 후배들이 부족하다. 우선 후배들이 생각을 좀 달리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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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없이 좋은 대우만 바라면 안돼"

-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 마라톤을 이끌어 갈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마라톤이 힘든 운동이다 보니 다들 기피하려고만 한다. 그러다 보니 선수층이 얇아질 수밖에 없다. 마라톤도 열심히 하면 좋은 대우 받을 수 있는 운동인데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기피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현역 지도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이 힘들어 한다. 운동에 대한 관심 자체가 인기 종목에만 집중되다 보니 마라톤에 대한 관심도 예전만 못하고, 특히 선수들이 의욕 없이 그저 쉽게 운동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실력에 관계없이 수준 높은 대우만 받으려고 하니까 마라톤이 발전하기 힘든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마라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수들이 마라톤에 집중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린 선수들을 장기적으로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잘 만들어야 한다."

- 우리나라의 선수 육성 여건은 어느 정도인가. 한때 마라톤 강국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마라톤 강국이라 불리던 시절에도) 사실 따지고 보면 몇몇 선수에 의해 끌려 온 경향이 있다. 두터운 선수층을 갖고 있지 못했고 선수 간 실력 차가 컸다. 무엇보다 지금은 마라톤에 대한, 육상계에 대한 지원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항상 큰 대회 있을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인다. 마라톤은 그야말로 꾸준히 관심을 갖고 노력해서 키워가야 하는 운동인데 그런 게 많이 부족하다."

- 마라톤 선수층은 얇을지 몰라도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은 많다. 이러한 마라톤 인기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봉주 선수가 보는 마라톤 인기는 어떤가.
"사실이다. 엘리트 선수층이 얇은 대신 일반 동호인들은 많다. 사는 게 조금 여유로워지다보니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마라톤을 즐기는 인구가 많아진 것 같다. 일반인들의 마라톤에 대한 관심은 다른 나라 못지않게 높은 것 같다. 어떤 대회는 몇 만 명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다만 그런 관심이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나로서는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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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러브콜 있다"

- 혹시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나.
"가끔 마라톤 대회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체력에 맞지 않게, 무리하게 욕심을 내다보니 발생하는 사고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욕심을 내다보면 부상도 당하고 심한 경우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 욕심내지 말고 자기 체력에 맞게 즐겁게 달렸으면 좋겠다."

- 은퇴는 했지만 달리기를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마라톤을 즐길 것인가.
"가족들과 함께 즐기면서 달리고 싶다. 가끔 스포츠센터에서 아내가 러닝머신 할 때 옆에서 페이스 맞춰서 같이 달리곤 하는데 아내가 좋아하더라. 그리고 요즘 큰 아이의 경우 5km 정도는 걷고 달리면서 완주한다. 그렇게 몇 번 아이와 같이 뛰어본 적 있는데 많이 좋아하더라. 그래서 앞으로 5km나 10km 대회는 가족들과 많이 참가할 생각이다."

- 가족들과 함께 달리다가 본능적으로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 아닌가.
"솔직히 본능적으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뛰다보면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날 것 같다. 내 앞에서 누군가가 달리고 있다면 당연히 추월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웃음)"

- 그나저나 요즘 선거철이라 정치권에서 이봉주 선수에 대한 러브콜이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 있다. 아직 정치권에서 내게 직접적으로 접촉해 오진 않았지만 지인들을 통해 도와달라는 이야기는 많이 하더라. 그런데 나는 그냥 중심을 잡고 살고 싶다. 정치 활동 보다는 그냥 운동선수로서 제 길을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정치활동이 이봉주 선수가 꿈꾸는 스포츠 행정가에 도움 많이 될 수 있을 텐데.
"물론 그럴 수 있겠지만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대신 의도적으로 정치와 거리를 두기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스포츠 행정을 하면 정치와 연관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정치를) 계속 배제하기만 하면 일을 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 41살의 나이 동안 이봉주를 달리게 한 마라톤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마라톤은 도전인 것 같다. 기록에 대한 도전, 금메달에 대한 도전, 내 삶에 대한 도전….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도전 목표가 존재했기에 지금껏 끊임없이 노력하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쌓이고 쌓여 41번의 완주를 가능케 했던 것 같다."

- 끝으로 마라톤을 사랑하는, 이봉주 선수를 사랑하는 국민들과 후배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마라톤은 생활스포츠로서는 최고의 운동이다. 운동화, 운동복 하나만 있으면 사람, 장소 구애받지 않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계속해서 많은 관심 가져 달라.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부디 우리 후배 선수들이 좀 더 열심히 해서 한국 마라톤이 다시 한 번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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