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토요일 호주 멜번, Etihad 스타디움에서 A 리그 그랜드 파이널 경기가 열렸다. 시드니FC 와 멜번 FC의 격돌은 여러 방면에서 경쟁도시로, 마주치게 되는 시드니와 멜번 대표 팀이 붙게 되어 경기 시작 전부터 이미 관심이 쏠린 상황. 오후 5시부터 시작된 오프닝 행사에 이어 7시, 본게임이 시작될 무렵에는 스타디움이 거의 꽉 찬 상태였다.

시드니 빅토리, 멜번 빅토리. 스타디움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킥 오프 전 이미 열기가 가득했다. 리그 본 경기는 시드니 FC 팀이 아시안 리그 진출권을 확보하며 우승을 가져갔지만 최강 6개 팀이 겨루는 그랜드 파이널은 양 팀 모두, 중요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드니 FC로서는 이 경기 마저 우승으로 연결해 최초로 통합 우승의 기록을 세우고 싶은 야망을 숨길 수 없었고, 멜번 FC로서는 파죽지세로 초반 가장 최강팀으로 달리다가 시드니 FC에 최종 우승을 내줬던 뼈아픈 기억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멜번 축구 팬들은 홈경기로 그랜드 파이널 우승팀을 결정짓는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이미 오래 전부터 티켓을 예매해 놓은 팬들이 많았다.

전반 45분은 약간 루즈하게 경기가 진행되었으나 후반 시드니 FC가 황금같은 한 골을 먼저 성공 시키며 그 열기가 점차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미디어 석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멜번 빅토리 서포터들이 왼편에는 시드니 빅토리 팀을 응원하기 위해 날라온 팬들이 팀 색깔의 옷을 입고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1:1. 과연 호주 최강 프로 팀들답게 팽팽한 접전을 벌인 경기는 연장전 30분 역시 서로 득점 없이 끝나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멜번 FC의 베테랑 선수인 Kevil Muscat 선수가 실축을 하면서 스타디움을 메운 4만5500여 관중의 함성은 스타디움 바깥까지 울려 퍼져나갔다.

하지만 시드니 FC의 Shannon Cole의 킥을 막아내며 승부차기는 다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팽팽함으로 맞섰는데, 시드니 FC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한국인 변성환 선수가 깨끗한 슛을 성공시키며 시드니 FC의 우승이 확정되었다.

울산대학교 팀을 거쳐 울산 현대, 제주 유나이티드 등에서 활약하며 K리그를 누볐던 변성환 선수는 지난해, 시드니 FC에 2년 계약으로 스카우트되어 지난 9개월 동안 매 경기에 모습을 보이며 활약해 왔다.

아주 침착하고 정확하게 밑으로 깔아 슛을 성공시킨 변성환 선수는 소속 팀의 우승을 확정짓는 방점을 찍자마자 웃옷을 벗어 흔들며 동료들을 향해 달려갔고, 클로즈업을 위해 따라 뛰는 중계 카메라를 향해 블로우 키스를 날리는 팬서비스까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호주의 유수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Korean defender Sung-Hwan Byun stepped up to deliver the perfect penalty to make the score 4-2 and that was it"(한국 수비수 변성환 선수가 퍼펙트한 페널티 슛을 성공시키며 4-2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그걸로 끝이었다)라고 극찬을 하며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사진을 크게 실어 보도했다.

ⓒ 나경운, 멜번저널

경기 다음날, 멜번의 명소 페더레이션 스퀘어에서 만난 변성환 선수는 "솔직히 어제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개런티 조율에 실패해 갑자기 공중에 붕 떠버린 암울한 상황에서 시드니 FC의 러브콜을 받고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밖으로 내세운 '또 다른 도전'이라는 것과는 달리 마음이 상당히 복잡했던 게 사실이라고 변성환 선수는 회상한다.

영어 한 마디 못하고, 문화도 전혀 다른 곳에서 개인 스포츠도 아닌 열 한 명이 마음을 맞춰야 하는 축구 선수로 과연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마음을 다지며 시드니 FC 속에 자신을 조금씩 녹여가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하며 매 게임 출전을 하는 것으로 성실함과 체력을 보여 주는 것에 주력을 했다.

그리고 9개월. 그는 이날 그랜드 파이널 경기에서 가장 많이 화면에 잡힌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언론이 극찬하며 주목하는 선수로 자신의 모습을 각인 시키면서 첫 시즌을 끝냈다.

"축구 그 자체는 어디에 가도 똑같죠. 하지만 외적인 것은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감독과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테이블에 다리를 올려 놓고 비스듬히 눕다 시피 앉은 채 꼬박꼬박 자기 의견을 내놓는 선수들을 보면서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충격을 받기도 했지요. 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어린 선수가 스스럼 없이 농을 건네는 것도 마찬가지로 충격이었어요. 왜 있잖아요. 우린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사람인데. 하하하."

변 선수는 처음 '문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을 더듬으며 웃었다. 하지만 전혀 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감독의 지시를 가장 빨리 알아채는 선수가 되었고, 더불어 한국인들이 가진 선후배의 예의범절도 조금씩 알려주며 동료들이 좋아하고, 감독이 주목하는 선수로 차근차근 자신을 다시 만들어 온 그는 결국 이날, '영웅'으로 우뚝 섰다.

실지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지나치던 축구 팬들이 그를 알아보고 일부러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축하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나름대로 만족하게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하던 한국에서 '갈 곳이 없어져' 떠날 때는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도 않는 곳에서 축구 선수로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인처럼 다시 나를 알려야 한다는 부담도 컸지요."

하지만 그는 지난 9개월을 아주 값진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었다.

"상하 수직관계가 아닌 자유로움 속에서 감독 코치 선수 할 것 없이 진정한 동료가 되어 가지만 운동장에 들어섰을 때는 정말 순식간에 위계가 잡히는 건 제게 아주 인상 깊은 부분입니다. 훗날, 제가 꿈꾸는 대로 후배들을 지도하는 위치가 주어진다면, 이 경험이 아주 소중하게 작용할 것 같아요. 양쪽 문화의 좋은 점을 접목시킬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거죠."

네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는 변성환 선수는 "경기 전날 아들 녀석이 전화를 하면서 아빠 금메달 따면 내가 유치원에서 받은 메달이랑 바꿔줄게 하더라구요. 약속을 지키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라는 말로 그의 벅찬 소감을 마무리했다.

통합우승이라는 명예를 팀에게 안겨주는 종지부 킥을 멋지게 성공시킨 변성환 선수는 각종 우승 환영 파티에 참석하고, 정식으로 호주 시즌이 끝나는 3월 말 한국에 나가 휴가를 보낸 후 5월에 다시 팀에 합류하게 된다.

"분명 올해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 드릴 겁니다. 저 하나의 작은 노력이 이곳 호주에서 열심히 생활하시는 한인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면, 함께 자랑스러워 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선수로서 큰 영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정 더 나은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거예요."

그를 믿는다. 그가 이곳 호주 한인들에게 또 다른 하나의 힘을 줄 것을 믿는다.  아자! 그가 어느 지역 팀에 소속해 있든, 한국인 선수이기에 가슴 속으로부터의 응원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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