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어머니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스케이트 선수가 되길 권유했던 선생님부터 그녀가 성장하기까지 가르치고 영향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은 역시 그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성격유형으로 보자면 외향판단형(ESTJ)으로 보이는 어머니는 내향판단형(INTJ)인 연아선수와 많은 갈등이 있었을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연아선수의 적은 어머니였던 것 같습니다. 지향하는 바는 같으나 풀어가는 방식에서 내향판단형은 권위적인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외향판단형들은 보통 그렇듯이 일단 목적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지요. 그러니 아마도 두 모녀의 관계는 '적과의 동침' 쯤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피겨의 불모지 같은 한국 땅에서 소중한 딸을 선수로 키우기로 결심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딸을 멋진 피겨선수로 성공시키고 싶은 어머니와 이에 지고 싶지 않은 딸은 서로 불만스럽고 불편하지만 또한 그러한 각자의 성향이 아니면 아무런 결과도 이루어 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성향 조합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외향판단형은 이나라를 일으킨 위대한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성향이거든요.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불가능은 없다'를 외치는 유일한 유형이지요. 기적을 만들어내고 성취를 이루어 내지만 그 과정 속에서 또한 그만큼 많은 상처를 주위 사람들에게 주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다보니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유를 질적 최상의 퀄리티로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를 보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관련한 일이라면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게 되지요.

 

대한민국에서 스케이터로서 연아를 세계무대에 알리는 데까지 가장 큰 공로를 한 것은 어머니이지만 그를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로 만든 데에는 오서와 안무가 윌슨, 두 코치의 영향력이 지대했습니다. 이들과의 만남은 연아선수로써의 일생일대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녀는 '행복한 스케이터'가 아니었다

 

인터뷰에서 오서코치는 연아선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행복한 스케이터'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연아선수를 연습에 지치고 매일 눈물을 그치지 않는 행복하지 않은 선수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스케이터' 이것은 오서코치와 윌슨코치 두 사람이 모두 연아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그리고 연아선수에게 꼭 안겨주고 싶은 결과물이었습니다.

 

연아선수의 전 한국코치가 윌슨코치에게 연아선수의 성공비결을 물었을 때 그가 대답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행복한 스케이터' 만들기.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윌슨코치 또한 그녀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처방은 2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그녀를 웃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온갖 광대짓으로 2주 동안 연아선수의 마음과 정서가 풀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 끝에 수줍음이 많던 그녀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행복한 스케이터' 과연 이런 꿈을 가진 어린 피겨선수들이 얼마나 될까요? '금메달 스케이터',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를 꿈꾸는 선수들은 많겠지만 '행복한 스케이터'를 꿈꾸는 선수들이 얼마나 될까 의문스럽습니다. 

 

이미 연아선수에 앞서 세계무대에서 성공과 좌절을 맛본 오셔코치로서는 그녀가 무엇보다 자신의 도전과 노력에 행복해 할 수 있는 '행복한 스케이터'가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오셔 코치는 인터뷰 중에 연아선수의 어머니에 관해 언급하며 그녀를 똑똑한 수완가라고 지칭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채워주려 했던 어머니의 열정과 노력이 연아선수의 성공에 큰 받침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열정이 지나쳐 때로는 오셔코치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연아선수가 더 많이 훈련하기를 원하고 오셔 코치는 그것이 반드시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음, 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스타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두 코치는 '행복한 스케이터' 만들기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연아선수의 마지막 프리연기는 정말 그의 영혼이 떠나가고 몸과 우주가 하나 되어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불꽃을 튀게 만든 환상적인 연기였습니다. 말 그대로 '행복' 그 자체인 우주와의 하나됨을 본인 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모든 사람에게 느끼게 해 주었으니까요. 사람들은 자신을 떠나 우주와 하나가 될 때 이유도 알 수 없는 눈물을 터트리게 됩니다. 우리는 그날 연아선수와 우리 자신에게서 그런 일체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그녀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 선수는 스케이터들 중에 가장 불행해 보여 마음이 아팠지만 말입니다.

 

한 사람이 꿈을 이루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영향이 필요합니다. 연아선수의 성취가 있기까지 그녀를 발굴해 낸 선생님, 그녀를 불모지 한국 땅에서 세계적 선수로 키워낸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에게 '행복한 스케이터'라는 궁극적인 가치를 가르쳐주고 키워낸 오셔와 윌슨 코치, 그리고 그밖에도 직간접적으로 그녀에게 영향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염원이 모든 이에게 하늘에서 팝콘이 쏟아져 내리듯 판타지같은 결과와 감동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우리는 다시 4년 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행복한 스케이터', '행복한 스키어', '행복한 썰매 타는 사람들'이 등장할까요. 이번 동계올림픽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던 대회였던 것 같습니다.

2010.03.03 14:09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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