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양신·종범신 등 야구 신들로 넘치는 한국 프로야구 

우리 프로야구가 베이징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둔 이후 야구열기가 거의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시즌 마지막까지 각 팀 간에 치열한 순위다툼이 벌어지면서 프로야구 사상 2년 연속 500만 관중을 달성했다.

프로야구가 올 한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과정에서 각 경기장에는 새로운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야구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이나 선수들에게 신(神)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는 것. 

김성근 감독  2006년 취임한 SK 김성근 감독은 탁월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SK와이번즈의 한국시리즈 2연패(2007~2008)를 이끌어 '야구의 신(야신)'으로 불리고 있다.

▲ 김성근 감독 2006년 취임한 SK 김성근 감독은 탁월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SK와이번즈의 한국시리즈 2연패(2007~2008)를 이끌어 '야구의 신(야신)'으로 불리고 있다.ⓒ SK와이번즈 구단 홈페이지


먼저 신이라는 호칭이 생긴 것은 김성근 감독(SK)이다. 김 감독의 별명은 '야구의 신', 줄여서 야신(野神)이라고 한다. 2002년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LG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과 맞붙었던 삼성 김응룡 감독이 "야구의 신과 싸운 것 같았다"고 말한 이후 김 감독에게 붙여진 것이다.

마해영의 9회 말 끝내기 홈런으로 삼성이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는 명승부 중의 명승부로 꼽혔고 김성근 감독의 진가가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LG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음에도 퇴출되었던 김성근 감독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SK와이번스 감독을 맞으면서 2007년~2008년 연속으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과시하며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면서 김응룡 감독이 부른 야신이라는 호칭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김성근 감독이 야신으로 불리면서 선수들에게도 신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기 시작했다. 양신(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종범신(이종범, 기아 타이거즈), 대신(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페타신(로베르토 페타지니, LG 트윈스) 등이 대부분 야구팬들이 인정하는 신들이고 일부에서는 기계신(정근우, SK 와이번즈), 시계신(클락, 히어로즈), 꽃신(이범호, 한화 이글즈)을 추가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일부에서는 광적 또는 과잉행동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이를 애교로 여기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양준혁 홈런, 안타 등 타격 전 부문에서 한국프로야구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삼성의 양준혁 선수. 삼성팬들은 그를 '양신'으로 부르고 있다.

▲ 양준혁홈런, 안타 등 타격 전 부문에서 한국프로야구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삼성의 양준혁 선수. 삼성팬들은 그를 '양신'으로 부르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구단 홈페이지

양준혁 선수가 '양신'으로 불리는 것은 93년 데뷔 이후 프로야구 타격부문 주요 통산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홈런 350개, 2284안타, 1369타점, 1289득점, 4사구 1347개 등이 그것이다(8월말 현재).

본인이 아쉽게 생각하는 10년 연속 3할이라든가 지난해 홈런 8개를 기록해 16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현존 국내 최고의 타자로 인정받고 있다. 양준혁 선수가 계속 그라운드에 있는 한 한국 프로야구의 통산 타격기록은 계속 경신될 것이 분명하다.

이종범 선수 역시 기아 팬들에게 거의 신처럼 추앙을 받고 있다. 아예 관중석에는 '이종범이라고 쓰고 신이라고 읽는다'라는 팻말이 등장할 정도다. 팬들은 이종범 선수가 안타를 치든 못 치든 개의치 않는다. 번트를 대고 병살타를 쳐도 그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열광하고 기쁘게 생각한다.

해태시절 9번 우승을 달성했던 때의 영광과 추억을 간직한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종범 선수가 일본에 진출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있었더라면 홈런을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양준혁 선수와 자웅을 겨루었을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1994년 이종범은 타율 3할9푼3리, 안타 196개, 홈런 19개, 도루 84개를 기록한 바 있다. 기아가 올 하반기에 승률 8할로 페넌트레이스 1위를 달리면서 팬들은 이종범 선수가 한국시리즈를 우승하고 은퇴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종범 선수 기아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종범 선수는 기아팬들에게 '종범신'으로 불리고 있다.

▲ 이종범 선수기아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종범 선수는 기아팬들에게 '종범신'으로 불리고 있다.ⓒ 기아 타이거즈 구단 홈페이지


지난해 롯데를 8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한 이대호 선수는 192cm의 키에 체중이 100kg이 넘는 거구로 '대신'이라는 별명이 어울린다. 이대호 선수는 지난 해 베이징올림픽에서 미국, 일본 등 강호들과의 대결에서 연일 결정적인 홈런을 기록하면서 금메달 획득에 기여해 국내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페타지니 선수는 야구강국인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올 초 4할 대 이상의 타격과 호쾌한 홈런을 기록하며 LG를 1달여 동안 선두권에 진입시키자 LG 팬들은 그에게 '페타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두 번이나 홈런왕에 올랐고 2001년에는 센트럴리그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고질라'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마쓰이 히데키(현 뉴욕 양키즈)와 자웅을 겨뤘던 그는 일본에서 6년간 뛰며 통산 3할1푼6리에 홈런 223개를 기록한 바 있다.

미국엔 신화 없고 기독교문화 영향으로 '야구의 신' 없어

이처럼 한국 프로야구에서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 야구를 전해주고 프로야구 역사가 100년이나 앞선 미국에서는 신으로 추앙받는 선수가 없다는 점이다.

현역 최고 선수 중에 하나인 앨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나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즈) 같은 선수는 데뷔 이후 슬럼프 없이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그들을 신으로 부르지 않는다. 역대 미국 프로야구를 빛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이 영, 베이브 루즈, 타이 콥, 월터 존슨,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테드 윌리엄즈, 윌리 메이즈, 행크 아론을 비롯해 근래에 은퇴한 놀란 라이언, 칼 립켄 주니어 등도 전설(레전드)라고 불릴 뿐 신으로 추앙받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역사가 일천한 한국 프로야구에 야구의 신들이 즐비한데 야구의 원조인 미국에는 야구의 신이 없는 것은 왜 그럴까. 그것은 미국의 문화,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미국은 우리와 같이 건국신화가 없다. 미국은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과 치열한 전쟁 끝에 1776년 독립을 쟁취했다.

이 때 활약한 인물들이 조지 워싱턴, 조지 애덤스, 토마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같이 역사적으로 생생하게 기록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릴 뿐 신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미국은 역사만 존재할 뿐 신화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도 전설(레전드)로 불릴 뿐이다.

게다가 기독교 전통으로 세워진 국가여서 사람을 신으로 부르는 것은 금기시 되어왔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 17세기 중반 미국에 도착해 미국사회 주류가 된 청교도들(Puritan)은 신의 절대적 권위와 은총을 강조하는 사람들로 엄격한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우상숭배를 배격하는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인간은 철저하게 신의 섭리 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청교도들에게 인간을 신처럼 숭배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지옥에 떨어질 큰 죄악으로 간주한다. 청교도의 영향은 미국사회 깊숙이 뿌리내렸고 결과적으로 아무리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도 신화가 아닌 전설 속의 인물로 남아 있다.

만약 미국에서 어떤 프로야구 선수가 팬들에게 신으로 불리기 시작하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미국남부에서는 흑인들이 당했던 것과 비슷한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비해 5천년 역사를 가진 한국에는 다양한 건국신화가 존재하고 기독교전통이 일천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신이라는 호칭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단군신화(고조선), 박혁거세 신화(신라), 석탈해(신라), 해모수 신화(북부여), 금와신화(동부여), 김수로왕 신화(가락국) 같은 여러 건국 신화가 사실 이상의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면서 일상 속에 신인(神人)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 이외에 제주도(삼신신앙) 등 각 지방별로도 다양한 신화들이 산재해 지역역사와 문화를 기름지게 하고 있다.

신화 속 인물 중 김수로왕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최대 성씨인 김해 김씨의 조상으로 오늘날까지 씨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신화가 현실로 이어지는 한국에서 스타에 열광하는 팬들이 자신들의 우상에게 신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도 천황의 가계가 유래했다는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로 상징되는 건국신화가 있고 정령신앙이 살아 있기 때문에 인간을 신으로 숭상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일본 전국에 산재한 신사에는 신화적 존재뿐만 아니라 실존한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신으로 모셔져 있다. 인간신 사상이 자연스럽다보니 일본에서는 마츠시타 고노스케같은 기업인은 경영의 신으로 불리고 있고 프로야구에서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나가시마 시게오를 야구의 신으로 부르고 있다. 

이나오 가즈히사 이나오 가즈히사(가운데)는 투수로서 일본 프로야구에서 탁월한 성적을 남겨 '신령님, 부처님, 이나오임'으로 불리기도 했다.

▲ 이나오 가즈히사이나오 가즈히사(가운데)는 투수로서 일본 프로야구에서 탁월한 성적을 남겨 '신령님, 부처님, 이나오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나오 가즈히사 홈페이지


투수로 명성을 떨친 이나오 가즈히사의 경우는 프로 데뷔 후 8년 연속 20승, 한해 41승을 달성했던 철완으로 일본 프로야구 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전설을 넘어 신화적 인물로 남아 있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사상 가장 명승부로 알려진 1958년 재팬시리즈 전체 7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해 최강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소속팀 니시데쓰(현 세이부 라이언즈)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나오는 초반 팀이 3연패로 몰린 후 4차전부터 4경기에 연속 등판, 혼자 4승을 올리는 기적을 일으켰고 3승1패로 몰린 5차전에서는 연장 10회 말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날려 시리즈 대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이때는 지명타자제가 없었다). 이날 이나오의 대활약에 감격한 한 팬은 이나오가 구장을 나서자 바닥에 엎드려 절하면서 "신령님 부처님 이나오님(神樣, 佛樣, 稻尾樣)"이라는 감동의 절규를 함으로써 이나오를 신화 속 인물로 남게 했다.

한국야구, 연륜 쌓일수록 많은 신 탄생할 것

신화는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이야기다.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누구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을 만큼 초월적 경이를 지녔다는 뜻이다. 신화는 어떤 증거물을 근거로 사실처럼 이야기되는 '전설'이나, 민초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전해지는 '민담'과 구별된다. 전설이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사실을 설명하려는 말 그대로 '설'이라면  민담은 사실이나 근거에 관계 없이 재미삼아 지어내서 듣는 그야말로 허구적인 옛날이야기이다.

전설(레전드)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고, 민담은 처음부터 지어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드는 것이므로 사실 여부를 따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신화는 절대적 권위와 초월적 경이를 지닌 것으로 민담처럼 예사로 들어 넘길 수 없으며 전설처럼 사실 여부를 따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초월적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 신화는 서사를 통해 국가나 공동체의 신성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 프로야구가 신성성을 부여받은 것은 지난 베이징 올림픽과 WBC에서 그동안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겼던 미국과 일본, 쿠바, 베네수엘라 등 야구강국들을 물리치고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의 야구팬들은 손쉽게(?) 자신들의 우상을 신의 위치로 끌어 올리고 그들의 신들이 펼쳤던 경기와 기록들을 신화 속 이야기로 만드는 데 능숙해졌다.

또한 현대사회가 신을 더 이상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하기보다는 상업화된 물신적 존재로 격하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신은 거대담론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미시세계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는 연륜이 쌓이고 선수들의 기록이 늘어갈수록 더 많은 야구의 신들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황금시대가 도래하는 것인데 그때 만들어질 한국판 명예의 전당은 판테온(만신전)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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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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