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의 시골 마을에 사는 일곱 살 코흘리개 소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초등학교에 자전거로 통학하다가 우연히 사이클 선수를 알게 되고 그 자신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혼신의 땀과 눈물을 흘린다.

 

10여년전 출간됐지만 여전히 국내 최고의 자전거 전문만화로 사랑을 받는 <내 파란 세이버>(박흥용 글.그림)의 줄거리이다. 만화 같은 이야기는 오늘 현실에서도 재현된다.

 

산골의 자전거 소년, 산악자전거와 만나다

 

 산악자전거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목천고 사이클부 김지훈 군.

산악자전거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목천고 사이클부 김지훈 군. ⓒ 윤평호

목천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김지훈군(18). 가야산(1430m)이 지척이고 참외로 유명한 경상북도 상주군이 고향이다. 초등학교 시절 집과 학교를 오가는 시내버스가 없었다. 2㎞가 넘는 산길을 걷기에는 힘이 부쳤다. 6년 내내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다.

 

그처럼 자전거로 통학하는 일이 동네에서는 평범한 일. 유난히 자전거를 잘 타는 형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한명이 사이클 선수가 되어 몇해 전 목천고에 진학했다. 지훈군도 선배를 쫓아 할머니와 아버지, 누나가 살고 있는 상주 시골 집을 떠나 중학교 3학년때 목천중학교로 전학했다.

 

목천중에서는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함께 훈련하는 고등학교 선배들의 기량을 보며 부러운 마음만 컸다. 목천고로 진학해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 지난해. 지훈군에게는 시련이자 기회의 시간이었다.

 

작년 여수에서 개최된 전국체전 출전을 위해 충남도가 선발한 고등부 사이클 선수 명단에 지훈군의 이름은 없었다. 목천고 사이클부 선수 대부분이 도 대표로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영예를 안았지만 지훈군은 기량에서 떠 밀려 함께 달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목천고 사이클부 감독인 고덕주(31) 교사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산악자전거 종목은 신설된 지 얼마되지 않아 충남에 고등학생 선수가 없었습니다. 지훈이가 산악자전거로 종목을 바꾸면 전국체전에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가능성은 있었지만 모험이기도 했다. 그때까지 지훈군이 산악자전거 종목을 훈련한 경험은 전무. 경기에 참여한 적도 없었다. 트랙과 도로만 달렸던 지훈군이 산악자전거 종목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전국체전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지훈군은 산악자전거로 종목을 바꿨다.

 

모험은 대성공이었다.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지훈군은 2008 전국체전 산악자전거 종목에서 고등부 은메달을 획득했다. 짧은 훈련시간과 난생 처음 산악자전거 경기에 참가한 사실을 떠 올리면 금메달 못지 않은 은메달이었다.

 

B급 자전거로도 성적은 A급

 

 김지훈(가운데) 선수와 고덕주(오른쪽) 감독, 한현조 코치.

김지훈(가운데) 선수와 고덕주(오른쪽) 감독, 한현조 코치. ⓒ 윤평호

성공은 한번에 그치지 않았다. 올해에만 지난 4월 이순신장군배 전국산악자전거대회와 7월 금산에서 열린 대통령배 전국산악자전거대회에서 고등부 금메달을 수상했다. 작년 전국체전 은메달 획득 이후에는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도 달고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에 합류했다. 어떻게 가능했던 성공이었을까.

 

고덕주 감독은 지훈근의 담력과 체력을 '1등 공신'이라고 말했다.

 

"산악자전거에서는 겁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탈길이나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못 이기거나 사고 걱정 때문에 자꾸 브레이크를 잡다보면 순위가 밀리게 되죠. 지훈이는 내리막길에서도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그대로 쏘아 달립니다. 보는 사람들이 다 가슴이 철렁할 정도이죠. 담력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지훈군이 내리막길에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얼마나 과감히 내 달리는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7월 금산 대회에서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한 지훈군이 흙투성이가 된 자전거를 대회장 옆 개천에서 씻고 자신도 세면을 한 뒤 다시 대회장으로 돌아왔을 즈음에야 다른 선수들은 당도했다.

 

지난해 종목을 바꿔서 겨우 전국체전에 나갔던 지훈군. 올해는 전국체전에서 체력 안배에 신경을 써야할만큼 중요한 몸이 됐다. 산악자전거 종목에서 금메달 행진을 이어가면서 트랙과 도로 종목에서도 성적이 좋아지는 동반효과가 나타난 탓. 올해 체전에서는 산악자전거 뿐만 아니라 트랙 종목에도 출전한다.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방학중에는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에 소집돼 합숙하는 바람에 지훈군이 상주 집에 다녀오는 것은 한해에 서너번. 수박농사를 짓고 있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이따금 합숙소로 보내오는 수박 택배에서 고향의 향기를 느낄 뿐이다.

 

지훈군은 가을이 다가올수록 설렌다. 하루 1백40㎞의 주행과 다섯시간의 맹훈련으로 흘린 구슬땀이 금메달로 실현될 것이란 믿음과 자전거의 업그레이드 소식 때문이다. 종목 변경 뒤 금메달 행진이 계속되자 학교에서는 지훈군의 자전거를 2학기때 700~800만원의 A급 자전거로 교체를 약속했다. 현재는 고무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B급 자전거를 사용하고 있다. 그나마 2대 중 1대는 망가져 올해는 줄곧 1대만 사용하고 있다.

 

앞날의 진로를 묻자 지훈군은 "골프의 양용은 선수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제자의 당찬 포부가 대견하다는 표정의 고덕주 감독은 "훌륭한 선수는 여러 사람의 격려와 후원 속에 만들어진다"며 지역사회의 관심을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40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8.31 14:19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40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목천고사이클부 김지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