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노 이발관 요시노 스타일의 생산지인 요시노 이발관

▲ 요시노 이발관 요시노 스타일의 생산지인 요시노 이발관


어느 시골 마을, 모든 소년의 머리 모양이 하나같이 시커먼 바가지 엎어놓은 듯하다. 바야흐로 뱅 스타일의 대유행인가 싶겠지만, 웬걸 전통의 충실한 계승이다. 덕분에 귀엽긴 하지만 당최 개성이 없어 그놈이 그놈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이상한 마을의 사내아이들은 으레 유일한 이발관인 '요시노 이발관'에 머리를 내맡긴다. 머리 모양도 생산지의 이름을 따 '요시노 스타일'. 이 완전독점 이발관의 가위를 쥔 스타일리스트 요시노 아줌마(모타이 마사코)는 한술 더 뜬다. 학교 당국에 협력해 두발 검사를 할 정도로 전통 수호에 열성적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감히 모두가 순종하는 이 율법을 거부하는 당찬 소년이 등장한다. 도쿄 물 좀 먹었다는 전학생이 잔뜩 힘줘 올린 염색 머리를 고수하려드는 것이다. 급기야 사태를 관망하던 요시노 아줌마의 아들과 그의 친구들까지 분연히 '두발 자유'를 부르짖고 조용했던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요시노 이발관>은 일차적으로 요시노 스타일만큼이나 귀여운 성장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의 귀여움은 기본적으로 소년들의 머리 모양으로 뱅 스타일을 차용한 덕분이다. 뱅 스타일이 어디 웬만해서 소화할 수 있는 것이던가. 아닌 게 아니라, 극소수의 선택된 미소년이 아니고서야 조건반사로 추억의 '호섭이'부터 소환시키기 십상인 머리 모양. 범아들에겐 귀엽기는 쉬울지언정 멋있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니 당사자인 아이들에겐 더욱 심각하고 제삼자인 관객에겐 마냥 귀여울 수밖에 없다. 가령 소년들의 머리가 모히칸 스타일이라든가 깍두기 스타일이었다면 아무래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런가 하면 시나브로 사춘기를 맞은 소년들의 모습은 성장영화 특유의 재미를 이끌어 낸다. 이성에게서 2차 성징의 흔적을 찾는 데 골몰하고 다시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아등바등하지만, 알다시피 저마다 얼굴형과 취향이 제각각임에도 아이들의 머리 모양은 정작 요시노 스타일로 통일돼야 한다.

요시노 이발관 '바가지 머리'를 한 소년들

▲ 요시노 이발관 '바가지 머리'를 한 소년들

사실 어른들이 소년들에게 이 머리 모양을 강요하는 건, '뒷산의 괴물이 사내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전설을 막고자 생긴 전통 때문이다. 물론 21세기에 그런 전설은 이미 어른들에게도 믿거나 말거나. 그저 어른이건 아이건 대대로 그래 왔으니 지금도 지켜야 한다는 '수구'일 뿐이다.

그러나 전통을 당연하게 여기던 소년들이 전학생에게 감화되는 순간, 빈약한 논리의 벽은 비로소 개혁의 당위 앞에 뿌리째 흔들리고 마는 것이다. 그 후 아이들이 존중받지 못했던 개성을 좇아 벌이는 소동극은 사춘기의 에피소드와 맞물려 제법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굳이 가상의 마을을 만들어 낸 뒤 여러 설정을 덧씌운 건 개성 있는 인권영화로서의 의미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두발 규제는 산신이라는 절대적 토속신앙에 기인하고 이를 단속하는 건 마을의 교육기관인 학교 측과 이해관계인인 요시노 아줌마며 심지어는 마을 방송을 통해 전통을 선전하는 사람도 요시노 아줌마다.

특히 마을로 울려 퍼지는 그의 방송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 밖의 어느 나라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과 싱크로율 100%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영화는 여러모로 하 수상한 시절과 묘하게 맞닿아 공교로운 시기성을 만들어 낸다. 마이클 무어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논픽션을 좋아하지만 현실은 점점 픽션처럼 돼가고 있"는 셈이다.

<요시노 이발관>은 <카모메 식당>으로 유명한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장편 데뷔작이다. 지금까지 총 세 편의 영화밖에 만들지 않은 그가 <안경>까지 최근 두 편의 영화로 뚜렷한 마니아층을 형성하자 뒤늦은 개봉이 이뤄진 것이다.

앞서 개봉한 두 편의 영화가 독특한 캐릭터들을 통해 '슬로우 라이프'라는 메시지를 싱그럽게 설파하고 그들의 관계에서 인간미를 강조해 잔잔한 감동을 줬다면, 이 영화는 사춘기 시절을 추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권과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상기시킨다. 물론 이 영화에서의 머리 모양과 집단 종교의식은 각각 <안경>에서의 안경과 집단 체조를 연상시킬뿐더러, 특정 공간에서 나름의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의 일관된 스타일이다.

녹록지 않은 어른의 삶을 상징하는 그 외의 요시노 가족이 이야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성장영화로 보든 인권영화로 보든 '잘 자란 나무의 옛 떡잎'답다.  과연 소년들은 두발 자유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공권력이 개입돼 집시법 위반으로 48시간 구금될 것인가.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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