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한화 김태완은 몸집이 커 정확도만 높이면 얼마든지 큰 타구를 날릴 수 있다.

▲ 기다림 한화 김태완은 몸집이 커 정확도만 높이면 얼마든지 큰 타구를 날릴 수 있다. ⓒ 한화 이글스


한화 이글스 김태완(25)은 최근 4번 타자로 나서고 있다. 원래 4번의 주인이던 김태균(27)이 뇌진탕 후유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균은 4월 26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포수 최승환과 충돌한 뒤 그라운드에 머리를 부딪쳐 좀처럼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5월 29일 김태균을 1군에서 제외하고 30일 대전 두산전부터 김태완을 4번으로 기용했다. 프로 4년째, 풀타임 주전으론 2년째인 경험이 부족한 선수에게 잠시 4번 타자의 중책을 맡긴 것이다.

김태완은 팀의 4번 타자가 될 만한 능력이 있다. 6월 8일 현재 50경기에 출전해 179타수 57안타 3할1푼8리의 타율에 14홈런 3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39의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다. 팀 내에선 가장 많은 홈런과 안타를 때리고 있고 타점은 이범호(28)에게 6개 뒤진 2위다. 선배인 이범호도 김태완의 타격 능력을 인정한다.

"(김)태완이요? 배울 점이 많은 후배죠. 스윙도 좋고, 무엇보다 공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타석에서 적극성을 정말 높이 삽니다. 타석에서 머리도 잘 쓰는 것 같아요."

외야 수비

김태완은 1루와 3루 수비를 볼 수 있는 내야수다. 한화는 2002년 신인 2차 지명에서 중앙고 졸업 예정이던 내야수 김태완을 8순위(전체 60순위)로 지명했다. 그러나 김태완의 선택은 한화 입단이 아닌 성균관대 진학이었다. 체육 교사의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졸 선수에 대한 지명권이 2년간 유지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고교 선수의 지명권은 대학을 마칠 때까지 유효했다. 대학을 졸업한 김태완은 생각을 바꿔 2006년 한화에 입단했다.

이때도 김태완은 1루수를 주로 보고 때에 따라 3루수로도 나서는 내야수였다. 한국야구위원회에서 매년 발행하는 프로야구 가이드북은 2006년부터 꾸준히 김태완을 내야수로 구분했다. 하지만 최근 김태완은 외야의 한 자리인 우익수로 출전할 때가 많아졌다. 올 시즌 50경기에 나온 김태완은 지명타자로 17경기를 뛰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24경기에 우익수로 출전했다. 지난해에는 87경기를 지명타자로 뛰었고 우익수 출전은 3경기밖에 되지 않았다.

1루수와 3루수가 유독 강한 한화에서 김태완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외야수 전향이었을 것이다. 한화 1루수 김태균과 3루수 이범호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거포 내야수다. 지난 3월에 열렸던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김태균과 이범호는 투수 봉중근, 외야수 김현수와 함께 기자단 투표로 대회조직위 선정 '올 토너먼트 팀' 선수가 됐다. 올 시즌이 끝나고 프리에이전트가 되는 두 선수는 국내 구단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다.

만만치 않은 선배들이 있어 김태완의 프로 적응은 쉽지 않았다. 가끔 기회가 오긴 했지만 '이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1군에서 뛸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줬다. 김태완은 "(김)태균이 형을 넘어서야 살 수 있다는 생각보다 뭔가 보여 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더욱 힘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김태완에게는 외야 전향이 차라리 잘 된 일일 수도 있다. 김태완은 이제 25살의 젊은 선수다. 아직 지명타자나 1루수로 뛰기에는 젊은 나이다. 프로에서는 3루수로 거의 뛰어보지 않아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다. 아마추어 시절 3루수 경험이 있는 이범호도 다소 거친 수비를 보완하기 위해 몇 년간 숱한 펑고를 받으며 구슬땀을 흘렸다.

김태완은 "벌써부터 수비 위치가 없으면 나중에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할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1루수의 타격 부담도 적지는 않지만 오직 타격 하나로만 승부하는 지명타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명타자는 타격 내용이 나쁘면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나이가 먹고 공격 기록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 지명타자는 은퇴 1순위에 놓인다. 1루수는 지명타자로 가기 위한 전 단계다.

외야 전향은 프로에 입단한 뒤 꾸준히 준비했다. 성균관대 시절까지 외야에서 수비를 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적응이 쉽진 않았다. 1군에 첫발을 내디딘 2007년부터 외야수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해 우익수 출전은 단 한번이었지만 조금씩 기회가 늘었다. 한화의 외야는 다른 팀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수비력만 뒷받침이 된다면 차지해 볼 만한 위치였다.

김태완은 외야수로 뛰는 자신이 좋았다. 1루수와 3루수도 매력이 있지만 외야수 출전은 수비 부담이 비교적 적고 지명타자 출전에 비해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데 수월했기 때문이다.

코너 외야수는 수비 부담이 덜해 주로 기동력이나 장타력을 갖춘 선수들이 나서게 된다. 장타력을 갖춘 김태완에게 어울리는 자리다. 김태완은 "어느 위치건 수비를 하고 싶다. 외야수면 더욱 좋다. 수비는 계속 훈련하면 늘게 돼 있다. 지금은 경험이 부족해 실수가 나오지만 꾸준히 출전을 하면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발전

고교 시절 김태완은 그리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중학 시절 갑자기 커 버린 몸에 적응하지 못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야구 지도자들은 성장판이 열려 계속 클 수 있는 선수들을 무리하게 기용하지 않는다.

김태완이 그런 선수였다. 중학 시절엔 야구 선수 치곤 작은 170cm의 키에 불과했지만 고교 3학년 때 190cm까지 자랐다. 그전까지 쳐 보지 못했던 홈런을 고교 3학년 때 처음 맛봤다.

그라운드를 돌다 한화 김태완이 5월 24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 봉중근을 상대로 4회초 노 아웃에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1점 홈런을 때린 뒤 2루 베이스를 지나고 있다.

▲ 그라운드를 돌다 한화 김태완이 5월 24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 봉중근을 상대로 4회초 노 아웃에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1점 홈런을 때린 뒤 2루 베이스를 지나고 있다. ⓒ 한화 이글스

김정무 한화 운영팀장은 과거 스카우트팀장을 지냈다. 한화는 올해부터 스카우트팀이 운영팀으로 통합됐다. 김팀장은 지명을 앞뒀던 2005년의 김태완을 두고 "1루수라는 점이 걸렸지만 체격 조건이 좋았다. 타격 능력만 갖추면 대성할 자질이 있는 재목으로 봤다"고 기억했다.

당시 한화는 2006년 신인 2차 지명에서 김태완을 8라운드에 지명한 뒤에도 10라운드에 공주고 내야수 송광민, 12라운드에 청주기계공고 외야수 연경흠을 지명했다. 김태완과 같이 송광민은 동국대, 연경흠은 인하대에 진학했지만 나중에 다들 한화에 입단했다. 김팀장은 "지금은 세 명 모두 한화의 주전 선수로 뛰고 있다. 상당히 성공한 지명이 아니겠느냐"고 자평했다.

김태완에게 대학 시절은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연수 성균관대 감독은 김태완을 1학년 때부터 4번 타자로 발탁해 거포로 키웠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큰 몸집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김태완은 "이 감독의 도움으로 장타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풀스윙을 하면서 타구에 힘을 싣는 법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3학년 때는 대만 타이난에서 열린 제2회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야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달아본 태극 마크였다.

2차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된 선수가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이라는 건 뻔하다. 최저 연봉인 2000만 원과 큰 차이가 없는 금액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김태완과 같이 대학에서 주가를 높이고 온 선수는 다르다. 한화는 1억1000만 원의 계약금을 주고 대학 졸업을 앞둔 김태완과 계약했다.

최근 야수에게 거액의 계약금을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무리 뛰어난 기량의 타자도 당장 1군에서 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2차 지명을 받은 대졸 야수 가운데 계약금을 1억 원 이상 받은 선수는 아무도 없다. 한화가 김태완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뜻이다.

시행착오

프로 입단과 함께 김태완의 야구 인생은 밝아보였다. 그러나 힘든 시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한화 코칭스태프는 김태완을 1루수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1루에는 이미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김태균이 버티고 있었다. 김 감독은 "태완이가 타격 재능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비 위치 때문에 제대로 기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능성을 보고 기회는 계속 주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프로의 벽은 높았다. 대학 시절 강타자였던 김태완은 프로에서는 숱한 신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프로 첫해인 2006년은 1군에서 4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주로 2군에서 경험을 쌓았다. 2군 남부리그에서 70경기에 출전해 2할6푼5리의 타율과 10홈런 36타점 OPS 0.872를 기록했다.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실망하기에도 일렀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무너질 뻔 했다는 게 김태완의 말이다.

"2군에서는 매일 낮 경기를 하는 것도 힘들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더 크다. 1군에 언제 올라갈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흔들릴 뻔한 김태완을 잡아준 건 김 감독과 장종훈 2군 타격 코치였다. 둘은 "급할수록 돌아가라"며 김태완을 격려했다. 김 감독은 김태완을 한화의 차기 전력으로 꼽고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거포였던 장 코치는 김태완의 장래성을 알아 보고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거리감을 좁혔다.

2007년 김태완은 외야 전향을 준비한다. 지명타자도 좋지만 김태균, 이범호가 지키고 있는 내야진에서 꾸준히 경기에 나서려면 외야수로 뛰는 게 낫다는 코칭스태프의 판단 때문이었다. 김태완은 "외야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서 외야수로 뛰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1군에서 뛸 기회가 조금 늘었다. 2군에서는 28경기에 출전했지만 1군에서는 대타, 대주자, 대수비를 포함해 61경기에 나섰다. 김태완은 2007년 조금씩 여유를 갖고 자신감도 되찾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 김태완을 주전으로 낙점했다. 그러나 그의 수비 위치는 없었다. 김 감독은 김태완을 지명타자로 기용했다. 전년도 지명타자로 22홈런을 때린 외야수 제이콥 크루스가 팀을 떠났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 지명타자 구실을 톡톡히 했던 이도형의 기량 저하가 두드러져서였다.

2005년 22홈런 72타점, 2006년 19홈런 63타점으로 선전했던 이도형은 2007년 크루스에게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6홈런 26타점의 다소 미흡한 성적을 냈다. 조금씩 가능성을 보이는 김태완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때마침 2군에서 함께 땀을 흘리던 장종훈 코치도 1군으로 올라왔다. 장 코치는 김태완과 꾸준히 대화를 하면서 타격 자세의 문제점을 고쳐 나갔다. 가장 큰 문제는 스윙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었다.

당시 장 코치는 "태완이는 변화구에 오히려 강점이 있었다. 알고 보니 스윙이 커서 배트가 조금 늦게 나오는 게 문제였다. 직구와 몸쪽 공을 맞히는 타이밍이 약간 늦었다"고 진단했다. 해법은 스윙을 줄이는 거였다. 190cm, 98kg의 거구이다 보니 살짝만 맞아도 큰 타구가 나왔다. 장 코치는 "경기 전 프리배팅 때 홈런을 가장 많이 날리는 선수는 김태균이 아니라 김태완"이라고 귀띔했다.

해맑은 미소 한화 김태완은 올해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자신을 괴롭히던 왼쪽 허벅지 부상을 털어 냈기 때문이다.

▲ 해맑은 미소 한화 김태완은 올해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자신을 괴롭히던 왼쪽 허벅지 부상을 털어 냈기 때문이다. ⓒ 한화 이글스


지난해 김태완은 잠재력을 꽃피웠다. 주로 6번 타자로 나온 그는 124경기에 23홈런 73타점의 중심 타자다운 성적을 냈다. 타율은 2할6푼6리로 다소 낮았지만 OPS가 1.039의 김태균에 이어 팀내 2위인 0.850으로 높았다. 김태완의 OPS는 규정 타석을 채운 8개 구단 타자 가운데 10위였다.

이 성적은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 부상을 딛고 나와 더욱 의미가 깊다. 김태완은 시즌 내내 왼쪽 허벅지 통증과 싸우면서도 2경기밖에 결장하지 않고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비록 목표인 전 경기 출전은 이루지 못했지만 1군에서 주전으로 한 시즌을 뛰면서 값진 경험을 했다. 김태완은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마무리 훈련, 비활동 기간을 거쳐 올해 2월 하와이 전지훈련까지 왼쪽 허벅지 재활에 매달렸다.

"한번 다쳐 보니 몸 관리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급하지 않고 계속 재활에 매달렸다. 일단 또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배팅 훈련은 뒤늦게 시작했다."

몸만들기에 전력을 다한 김태완은 올 시즌을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준비했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왼쪽 허벅지 통증에서 자유로워진 게 가장 큰 수확이다. 프로 4년째가 되면서 조금씩 여유도 생겼다. 김태완은 "지난해와 가장 달라진 게 타석에서 여유일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김태완은 팀의 중심 타자로 손색이 없다. 지난해 김태완의 OPS가 열 손가락에 들었다면 올해는 다섯 손가락에 든다. 올 시즌 김태완의 OPS는 1.039로 8개 구단 타자 가운데 5위다. 그만큼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다. 동기인 유격수 송광민은 "입단은 같이 했지만 지금은 태완이가 훨씬 앞서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유격수라서 수비에 더 중점을 두고 훈련하고 있지만 태완이를 보며 타격에서도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고 말했다.

올해 한화는 강석천 코치가 1군 타격 코치를 맡게 됐다. 강 코치는 김태완을 두고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타자라고 했다.

"태완이가 뛰어난 타자인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해 타율이 2할대 중반이었는데 충분히 3할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태완이는 30홈런을 노리면서 2할8푼대의 타율을 기록하거나 25홈런을 때리면서 3할 타율을 남길 수 있는 타자다. 앞으로 더 발전할 거다."

김태완도 지금에 만족할 생각은 없다. 주전 외야수로 태극 마크를 달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태완은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목표는 정상이 아니겠느냐. 태균이 형과 같은 한국을 대표할 타자가 되는 게 마지막 목표다. 최고의 타자가 되고 싶다. 그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태완이 김태균에 버금가는 최고의 타자가 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감독실에 앉아 있던 김 감독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긍정의 표시였다.

덧붙이는 글 기록 제공=스탯티즈(www.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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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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