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치 않은 점심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3월 26일 유영구 KBO 총재를 비롯한 WBC 대표팀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해 준우승에 대해 치하하고 있다.

▲ 흔치 않은 점심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3월 26일 유영구 KBO 총재를 비롯한 WBC 대표팀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해 준우승에 대해 치하하고 있다. ⓒ 청와대


한국 야구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국은 지난 3월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으로 국제적인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국제야구연맹(IBAF)은 WBC가 끝나고 한국을 쿠바에 이어 세계 랭킹 2위로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26일 청와대 오찬에 유영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대표팀을 초청해 WBC에서 선전한 것을 치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열악한 조건에서 세계와 경쟁해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선수들의 애국심이 빛났다. 한국 선수단의 승리를 위한 집념이 경제 위기를 이겨 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야구를 하는 동안은 다 잊어버렸을 거다.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국민들에게 사랑받으면서 한국 야구가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이 '열악한 조건'을 꼭 집어 말했을 정도로 한국 야구는 기반이 약하다.

2009년 현재 명문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는 1948년 개장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해태타이거즈를 이어받은 KIA는 1965년 개장한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 수차례 개·보수를 했지만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고치는 데 한계가 있다. 새로운 야구장을 짓겠다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약속은 줄을 잇고 있지만 실제 이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한국 야구의 씁쓸한 현주소다.

야구인들은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를 황무지를 개척하는 심정으로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엔 선수들 스스로의 피땀 어린 노력과 선배 야구인들의 열정 그리고 많게는 수천억 원의 누적 적자를 감수하고 프로야구단을 운영한 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다.

28년을 거쳐 오면서 프로야구는 성인들의 놀이 문화가 부족한 한국에서 건전한 여가 선용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에는 525만6332명이 프로야구를 관전했고 지난 5월 28일엔 1996년 이후 13년 만에 최소 경기(182경기) 200만 관중을 돌파해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프로야구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80년대 초 군사독재 정권이 3S(스크린, 스포츠, 섹스)로 대표되는 우민화 정책을 펴면서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그래서인지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KBO 총재는 매번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역대 10명의 KBO 총재 가운데 정치권과 관련이 없는 인사는 12~14대 박용오 전 총재(1998~2005년)가 유일하다.

이상국 전 KBO 사무총장의 빛과 그림자
이상국 전 KBO 사무총장의 재선출설은 올해 초부터 돌았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9,10대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타이틀 스폰서 계약과 중계권 협상,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 창단 등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히어로즈의 운명이 불투명한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대체로 적절한 후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의 도덕성에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프로야구선수협회 출범을 앞장서서 방해한 데다 한 국회의원에게 영수증 없이 3000만 원을 건네 2006년 9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어서다. 한 야구인은 "능력은 인정하지만 8년이나 사무총장을 했던 사람을 다시 앉히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관행은 여전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이상국 KBO 사무총장 내정자(전 KBO 사무총장)에 대해 세 차례나 반대 의사를 나타낸 뒤 김대기 2차관을 유영구 총재에게 보내 승인 거부를 최종 통보했다. 이 내정자는 6월 5일 KBO를 통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유 총재 또한 문화부의 승인 거부로 자진 사퇴를 한 적이 있다. 유 총재는 지난해 12월 16일 프로야구 사장단에 의해 신상우 16대 총재에 이어 17대 KBO 총재로 추대됐다. 그러나 문화부가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12월 22일 자진 사퇴했다.

당시 여론이 악화되자 유인촌 문화부 장관과 신재민 문화부 2차관(현 1차관)은 "대한체육회장, KBO 총재 선출에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KBO 이사회는 2월 9일이 돼서야 유 총재를 새 총재로 다시 추천할 수 있었다.

문화부는 이 전 사무총장 승인 거부로 '간섭 불가'를 외친 지 불과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말을 뒤집었다. 민주당은 6월 6일 'KBO 사무총장 자리까지 챙긴 MB 정권'이라는 이름의 논평을 내고 "이명박 정권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프로 스포츠를 관치 스포츠로 유린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스포츠를 유린한다면 머지않아 각 프로 구단 코치진 선임은 물론 선발 투수 등 라인업까지 개입하겠다고 나설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빈 자리 5월 16일부터 KBO 사무총장은 공석으로 남아 있어 행정 공백이 우려된다. 야구계에는 중계권 협상, 선수 노조 설립, 8개 구단 유지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다.

▲ 빈 자리 5월 16일부터 KBO 사무총장은 공석으로 남아 있어 행정 공백이 우려된다. 야구계에는 중계권 협상, 선수 노조 설립, 8개 구단 유지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다. ⓒ 한국야구위원회


KBO는 조만간 이사회를 열고 공석 중인 사무총장 선임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당분간 행정 공백이 불가피하다. 하일성 전 사무총장의 임기는 5월 15일까지였다.

유 총재는 물론 이 전 사무총장의 선임에도 절차상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문화부에서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반대 의사를 나타내 KBO 정관 개정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KBO 정관 제10조 '임원의 선출'에 따르면 총재는 이사회의 재적 이사 4분의 3이상의 동의로 추천해 총회 재적 회원 4분의 3이상의 찬성으로 선출하고 사무총장은 이사회 심의와 총회의 제청이 있으면 선출이 가능하다. 총재와 사무총장 모두 감독청인 문화부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KBO는 국고 보조금을 받지 않고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회비로 운영하고 있다. 총재를 뽑는데  감독청의 승인을 받는 건 국내 프로스포츠 가운데 프로야구가 유일하다.

이 대통령은 WBC에서 선전한 대표팀 선수들에게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프로야구 수뇌부 인선을 좌지우지하는 등 이 대통령의 뜻과는 전혀 다른 행동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이상국 유영구 이명박 유인촌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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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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