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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은 끝내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지만, 최태욱은 4년여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5년 8월 4일 A매치 북한전 이후 약 3년 9개월만에 대표팀에 합류한 것. 축구팬들 기억 속에서 멀어졌던 그가 다시 붉은색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한때 대표팀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을 때는 젊고 패기 넘치는 영건이었지만, 이제는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30세가 된다.

이번 대표팀 명단에는 '올드보이vs영건'의 합류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최태욱을 비롯해서 이동국, 최성국, 이천수, 조재진 같은 올드보이들의 대표팀 발탁이 주목되었는데, 결국에는 최태욱 한 명만 허정무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이는 최태욱이 그동안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최태욱 본인도 예전의 경기력을 되찾기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최강희 전북 감독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그의 축구 인생은 '반짝 선수'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최강희 감독은 프로야구로 치면 김인식 한화 감독과 유사한 '재활공장장' 이다. 김인식 감독은 그동안 슬럼프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중견급 선수들의 부활을 이끌었다. 그동안 잦은 부상으로 고전하던 문동환을 비롯해서 최영필, 추승우가 김인식 감독의 조련 속에 재기에 성공했다. 올해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강동우가 김 감독의 믿음에 보답한 것.

반면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을 비롯해서 김형범, 임유환, 정경호(현 강원) 등과 같은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했던 선수들의 부활을 도왔다. 성남에서 내리막길을 걸었던 김상식, 수원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지 못했던 루이스를 전북의 정규리그 1위 핵심 주역으로 키웠던 것도 최강희 감독의 몫이 크다. 이들에게 많은 믿음을 보이며 변함없는 출전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 큰 효과를 봤던 것이다. 그리고 최강희 감독의 재활 성과 중에서 가장 값어치가 빛나는 것은 다름아닌 최태욱의 슬럼프 탈출이다.

최태욱은 2005년 일본 J리그 시미즈로 이적한 이후부터 3년 동안 지독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동안 일본 진출을 원했던 터여서 '재팬 드림'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시미즈에서 감독 및 팀 닥터와의 불화로 마찰을 빚은 끝에 1년만에 K리그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길을 잘못 선택했다. 당초에는 울산 이적 예정이었으나 포항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파리아스 감독의 품에 안았다. 그런데 3-4-1-2를 쓰는 포항에는 자신의 경기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역할(윙 포워드)이 없었다. 그나마 안양(현 FC서울)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몇 차례 뛰었던 경력이 있지만 그 자리에는 '2007시즌 MVP' 따바레즈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더니 윙백으로 전환했지만 이렇다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끝내 벤치 신세를 지게 됐다. 만약 3-4-3의 울산이었다면 윙 포워드로서 많은 경기를 뛰었을지 모를 일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팀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이 슬럼프를 키우게 된 것이다.

결국 최태욱은 2007시즌 종료 후 전북으로 2-2 트레이드 됐다. 팀의 핵심선수로 두드러지게 자리잡지 못했던 선수들끼리의 트레이드(최태욱, 김성근-권집, 김정겸)라는 점을 상기하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멤버였던 그의 위상이 얼마만큼 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더욱이 전북으로 오면서 연봉까지 줄었다. 2004년 안양에서 인천으로 옮기던 당시, 자유계약(FA) 선수 역대 최고의 몸값이었던 이적료 11억원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슬럼프가 지독했다.

그러자 최태욱은 전북 입단 초기에도 의욕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팀에서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최강희 감독이 놓칠 리가 없었다. 최 감독은 지난해 2월 미디어데이에서 많은 기자들에게 이러한 쓴소리를 내뱉었다. "최태욱은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다. 공격만 할 줄 아는 미드필더는 반쪽짜리 선수다"라고 말한 데 이어, 어느 날 기자들 앞에서는 "최태욱은 정신력에 문제가 있다. 후배들이 배울 게 없다"고 거침없이 비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프타임때는 모든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최태욱을 호되게 질책했고 한 달 동안 2군에 보내기도 했다. 3년 동안 슬럼프로 고전하던 최태욱을 일깨우기 위한 충격 요법에 들어간 것이다.

최강희 감독은 최태욱을 '최목사'라고 부른다. 최태욱이 안양시절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명했기 때문에 부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라운드에서 얌전하게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양 시절 조광래 감독(현 경남 감독)을 아쉽게 했던 내성적인 성격이 최강희 감독에게도 답답하게 느꼈던 것이다.

최 감독은 최태욱의 부진 원인을 성격에 따른 소극적인 플레이로 진단하여 그라운드 안팎에서 제자에 대한 충격을 가했다. 그라운드에서만큼은 공격에 치중하기보다는 수비에 가담하여 부지런히 경기에 임하고, 거침없이 몸싸움을 즐기며 투쟁적으로 경기에 임하기를 원했던 것이 최 감독의 의도. 그러기 위해서는 따끔한 질책으로 강하게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최태욱은 최강희 감독의 마음을 알았는지, 지난해 추석 연휴에 최 감독에게 세 장의 편지를 작성하여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감독 스타일에 맞는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그 요지. 그러자 최강희 감독도 세 장의 편지로 답장을 보내며 격려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의 채찍은 여전했다. 지난해 10월 5일 제주전에서 최태욱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최태욱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40% 정도였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할 것을 주문했다. 제자가 편지 하나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바로 붙잡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최강희 감독의 부활신공은 지난해 6강 플레이오프 성남전에서 빛을 발했다. 최태욱은 팀이 0-1로 뒤지던 후반 30분 동점골을 넣으며 패배 위기에 놓였던 팀의 2-1 역전승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러더니 올 시즌 K리그 11경기에서는 5골 4도움의 기록을 올리며 전북의 정규리그 1위 진입을 이끌었다.

이전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공수 양면에서 활력소 역할을 도맡으면서 팀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제는 3년 9개월만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면서 그동안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슬럼프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최강희 감독의 집요했던 자극이 없었더라면 이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최태욱은 10년 전인 1999년 이천수(전남) 박용호(서울)와 더불어 '부평고 3총사'로 불리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불렸다. 당시 여론에서는 이천수보다는 최태욱의 실력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초중고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였던 반면에 이천수는 그저그런 선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천수가 최태욱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상대방을 반드시 꺾겠다는 근성이 투철했기에 가능했다. 고된 연습을 통해 다져지면서 자신의 가치를 빛냈던 것. 반면 최태욱은 몸싸움을 피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소극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했던 것이 자신의 축구 인생에 마이너스가 되고 말았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최태욱은 그라운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기 자신만의 근성을 지녔다. 예전의 경기력으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선수 본인이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런 최태욱의 마음을 호되게 깨웠던 최강희 감독의 지난날 노력은 결국 '최태욱 대표팀 발탁'이라는 값진 결과물로 이어졌다. 그것도 최태욱의 능력을 믿고 있었기에 얼마든지 채찍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태욱의 부활이 반가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전북의 정규리그 1위의 중추로 키웠던 최강희 감독의 지도력이 대단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so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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