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7인 영화속 찰슨 브론슨

▲ 황야의 7인 영화속 찰슨 브론슨 ⓒ United Artists


1951년 <유어 인 더 네이비 나우>로 데뷔한 찰스 브론슨은 잘생긴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개성적인 외모를 가진 연기파 배우였다. 데뷔 후 몇 년간 무명으로 머물던 그는 1953년 <하우스 오브 왁스>를 통해 관객들의 눈에 띄게 된다. 이 작품은 2005년 제우메 콜렛-세르라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으로 스타가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가능성 있는 배우로 인정받았지만 이후로도 오랫동안 주연이 아닌 단역이나 조연으로 활동했다.

찰스 브론슨은 처음 시작이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후 오랫동안 연기활동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배우로 남았다. 그가 맡았던 여러 역할들은 그가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진정 대기만성형의 배우였다. 만약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도 전에 할리우드에서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에게 무명의 세월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혹독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찰스 브론슨하면 생각나는 것이 그의 매력적인 콧수염이다. 이 콧수염은 1968년 작품 <아듀 라미>에서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콧수염은 그의 강한 인상과 더불어 남성미 넘치는 찰스 브론슨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그가 처음 주목 받게 된 건 1953년작 <하우스 오브 왁스>(한국에서는 밀랍의 집으로 알려짐)에서 맡은 농아 역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이후 오랫동안 단역과 주조연을 오가며 할리우드 스타가 되지 못했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연기 잘하는 개성파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나름 위치를 잡고 있었지만 그 위치는 할리우드 스타와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이런 그에게 최초로 대중이 관심을 보인 작품은 1960년에 나온 <황야의 7인>이었다. 이 작품 때문에 그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에게 첫 명성을 안겨다준 작품은 프랑스 최고의 미남배우 알랭 들롱과 함께 한 <아듀 라미>(1968년)였다. 1953년 <하우스 오브 왁스>로 이름이 알려진 후 15년 뒤였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였다.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찰스 브론슨은 자신의 모국이 아닌 프랑스 영화를 통해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전 유럽에서 빅히트하며 그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그는 <아듀 라미>를 통해 멋진 콧수염과 개성 넘치는 얼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남성미를 한껏 과시한다. 미남배우 알랭 들롱과 비교되는 그만의 매력은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 찰스 브론슨 하면 콧수염이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되었다.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자신이 어떤 배우인지 알린 것이다.

찰스 브론슨의 매력이 폭발한 영화 <아듀 라미>

아듀 라미 영화 속 찰스 브론슨과 알랭 들롱

▲ 아듀 라미 영화 속 찰스 브론슨과 알랭 들롱 ⓒ 아듀 라미


이 작품은 처음으로 찰스 브론슨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폭발한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 개성 강한 배우로만 인식되던 그가 처음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 영화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그가 더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을 대표하는 미남배우 알랭 들롱과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를 스타로 만들어주는데 가장 기여한 사람은 알랭 들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 영화는 작품성 위주의 영화가 아니다. 전적으로 볼거리 위주로 만들어진 상업영화다. 따라서 두 사람이 보여주는 매력이 영화 전반을 이끌어간다. 배우들에게 집중해서 보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다만 작품 위주로 이 영화를 평가한다면 찰스 브론슨에게 큰 인기를 가져다준 영화지만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매력이 완전히 상반되는 두 배우가 앙상블을 이루어가면서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더 큰 재미를 준다.

<아듀 라미>가 어떤 영화든 중요한 것은 찰스 브론슨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준 영화라는 것이다. 이 작품이 유럽에서 빅히트를 한 이후 그는 할리우드보다 유럽에서 더 왕성한 활동을 한다. 1968년부터 시작된 그의 유럽활동은 할리우드에서 그에게 최고의 명성을 안겨다준 <데스 위시>가 나오는 1974년까지 이어진다. 결국 <아듀 라미>에서 보여준 그의 매력이 할리우드를 정복하는데 6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이다.

그는 데뷔 후 17년이란 긴 시간 동안 개성 강한 배우로만 머무른 후 유럽에서 이름이 알려졌지만, 할리우드에서 그의 위치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아듀 라미>가 유럽에서 히트했을 때 그의 나이는 무려 47세였다. 적지 않은 나이에 유럽에서 6년을 더 머문 후, 할리우드에서 데뷔한 지 23년이 되던 해 그는 <데스 위시>를 통해 그렇게 염원하던 할리우드마저 정복하게 된다. 그의 나이 53세가 되어서야 명실상부한 할리우드 스타로 발돋움한 것이다.

할리우드를 정복한 영화 <데스 위시>

데스 위시 영화 속 찰슨 브론슨

▲ 데스 위시 영화 속 찰슨 브론슨 ⓒ Paramount


1974년 제작된 <데스 위시>(한국에서는 추방객으로 개봉)는 이후 1994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총 5편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유럽에서 뒤늦은 나이에 인기를 얻은 찰스 브론슨이 할리우드에서도 그 인기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그에게 있어 처음으로 단독 주연배우로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다. 그의 나이 53세에 이룬 쾌거였다. 이쯤 되면 대기만성 배우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데스 위시>는 내용이 상당히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찰스 브론슨이 가진 매력이 물씬 풍긴다. 이 작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주연으로 출연한 <더티 해리>시리즈와 쌍벽을 이루는 열혈남아 마초 시리즈기도 하다. 1970년대 당시 두 배우 모두 남성미 물씬 풍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연기자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잔혹한 범죄 앞에 아내와 딸을 잃고 스스로 그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특히 범죄율이 상당히 높았던 뉴욕 뒷골목과 지하철에서 범죄자들을 처리하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었다. 남성미 가득한 찰스 브론슨이 보여준 연기는 극중 인물에 잘 부합했다.

<데스 위시>는 당시 북미에서만 2200만불 흥행수입을 거두며 찰스 브론슨에게 흥행배우란 타이틀을 달아준다. 이후 2편과 3편 역시 1600만불 이상의 수입을 거두며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특히 이 작품은 1편만 파라마운트에서 제작 배급하고 2편과 3편은 필름웨이즈, 캐논 필름즈 같은 소규모 제작사에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찰스 브론스 이미지에 힘입어 흥행을 거두었다.

<데스 위시>는 찰스 브론슨 이미지가 없었다면 성공하기 힘든 작품이란 이야기도 될 것이다. 하지만 4편과 5편은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우려먹기란 소리가 나왔다.

1972년 <데스 위시>로 시작된 그의 할리우드 활동은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다. <데스 위시> 당시 그의 나이가 53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후 오랫동안 계속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찰스 브론스 왜 특별하게 기억되는 배우일까?

그는 오랜 연기생활에도 불구하고 수상 경력이 없는 배우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이름 있는 영화 시상식에서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다. 배우가 보여준 뛰어난 연기에 대한 보상이자, 좋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의 자질을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인 척도인, 이름 있는 영화 시상식에서 어떤 수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배우로서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일류 배우가 아닌 이류 혹은 삼류 배우란 생각 역시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배우로서의 길을 생각한다면 이런 판단은 섣부르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오랜 시간 무명 아닌 무명의 세월을 보냈다. 잠시 조연이나 주연으로 주목 받은 적은 있지만 진정한 할리우드 스타가 되진 못했다. 사실 이쯤 되면 더 이상 배우로서 버티기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가 처음 스타로서 관객들에게 인정받은 <아듀 라미>에 출연했을 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그를 진정한 스타로 만들어준 <데드 위시>에 출연했을 때 그의 나이는 50세가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 점은 그의 사생활과 관계없이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는 배우로서 미남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인기를 얻을 때 젊지도 않았다. 그처럼 47세에 인기를 얻어 60세까지 그 인기를 유지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젊은 시기를 개성 있는 조연으로 보낸 후 결국에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할리우드 스타가 되었다. 인간승리라 할만하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는 특별한 스타로 기억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리한 점을 자신의 장기로 승화시켜 결국엔 관객들에게 인정받았던 배우 찰스 브론스. 앞으로도 그와 같이 뛰어난 개성으로 똘똘 뭉친 배우를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대단한 배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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