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2역 경찰청 내야수 조영훈은 팀에 왼손 투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마운드에 오르곤 한다.

▲ 1인 2역 경찰청 내야수 조영훈은 팀에 왼손 투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마운드에 오르곤 한다. ⓒ 이호영

경찰청 야구단과 SK 와이번스와의 프로야구 2군 경기가 열린 5월 2일 벽제구장에서 내야수 조영훈(27·경찰청)이 마운드에 올랐다. 아마추어야구에서는 야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에서 야수가 등판하는 건 2군 경기라고 해도 드문 일이다.

삼성 라이온즈 출신의 조영훈은 프로에 데뷔한 뒤 처음으로 지난해 마운드에 오른 적이 있다. 4⅔이닝을 던진 그는 3개의 홈런을 포함해 5개의 안타를 맞고 4실점했다. 한 차례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7.71의 성적을 남긴 그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왼손 타자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원 포인트 구원 투수로 자주 출전하고 있다. 조영훈은 5월 3일 현재 5경기에서 2⅔이닝을 던져 무안타 1볼넷 1삼진으로 1실점해 평균자책점 3.38로 마운드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2군 북부리그에서 가장 많은 9개의 홈런을 때린 팀의 4번 타자라는 점이다.

유승안 경찰청 감독은 "팀에 왼손 투수가 없다. 그래서 (조)영훈이를 어쩔 수 없이 기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산 베어스 출신의 경찰청 주전 포수 양의지는 "영훈이 형이 구속은 시속 130km대에 머무르고 있지만 제구력이 좋다.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모두 투수들 못지않다"고 칭찬했다. 조영훈은 "팀 사정상 희생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수의 투수 훈련은 선수의 장래를 위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투수 훈련을 하다 보면  야수들이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무리하게 쓰다 부상할 염려가 있다. 타격과 수비 훈련에 쏟아야 할 시간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선수가 부족한 경찰청에선 어쩔 수 없다. 25명의 선수로 시즌을 치르다 보니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포수 양의지가 3루수를 보기도 하고 투수들이 대주자로 나서기도 한다. 선수단 전원이 한 경기에 모두 나온 적도 있다. 정영기 경찰청 수비 코치는 "내야수가 특히 부족하다. 그래서 일부 외야수들에게 내야수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파이브 경찰청 선수들이 5월 2일 벽제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군 경기에서 8-7로 이긴 뒤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하이파이브 경찰청 선수들이 5월 2일 벽제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군 경기에서 8-7로 이긴 뒤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이호영


경찰청은 지난 시즌 84경기에서 24승8무52패(승률 0.316)로 2군 북부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코칭스태프가 교체되고 선수단이 새로 꾸려지는 등 경황이 없는 가운데 시즌을 치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경찰청은 5월 3일 현재 11승1무6패(승률 0.611)로 14승2무3패(승률 0.737)의 선두 두산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경찰청은 4월 중순까지 1위를 달리다 최근 기세가 좋은 두산에게 선두 자리를 내줬다. 경쟁 팀인 상무에게는 1승2패했지만 승차에서 2경기 앞서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적이 오른 이유는 피나는 훈련을 통해 패배 의식을 떨쳐 버렸기 때문이다. 경찰청 선수단 1,2기를 모두 지켜본 노명준 매니저는 "코칭스태프가 바뀌면서 선수들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선수단과의 첫 만남에서 유감독은 "이기면 야구 선수로 지면 군인으로 대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목표 의식이 부족한 선수들에게는 눈물이 쏙 나도록 야단을 치기도 했다.

"처음엔 다치지 않고 전역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는 선수들이 있었다. 야구를 하면서 군 복무를 하는 선택받은 선수들의 마음가짐으로는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에게 누구를 위해 야구를 하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적당한 긴장을 해 오히려 다치지 않고 기량도 늘게 된다."

경찰청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요즘 유감독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 5월 중순 쯤이면 고비가 올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유감독은 "이제 곧 여름이 된다.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면 현재 성적을 유지하기 어렵다. 많이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을 무리하게 기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털어놨다.

주로 낮에 벌어지는 2군 경기는 선수들에게 상당한 체력 부담을 준다. 더그아웃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힘들다는 게 2군 선수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감독의 고민 유승안 경찰청 감독은 10명 정도의 선수를 더 받아 35명 규모의 선수단을 꾸리고 싶어 한다.

▲ 감독의 고민 유승안 경찰청 감독은 10명 정도의 선수를 더 받아 35명 규모의 선수단을 꾸리고 싶어 한다. ⓒ 이호영


지난해 11월 부임한 유감독은 선수단 규모를 늘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전·의경 폐지 계획으로 선수를 더 받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청 야구단을 당분간 유지하는 데는 의견을 모았다. 유감독은 앞으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더 많은 선수가 경찰청에서 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경찰청과 상무를 뺀 나머지 8개 구단의 2군 선수단은 40명 이상으로 구성돼 선수 운용에 여유가 있다. 유감독은 선수단 규모로 37~8명이 적정선이지만 35명만 돼도 우승에 도전해 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25명의 선수가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열흘 정도 대회에 나선다면 물론 적은 수가 아니다. 문제는 한 시즌 89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야구는 잔 근육을 쓰는 운동이라 피로가 계속 쌓인다. 이 때문에 부상 선수가 나올 수 있고 선수 운용에 제약을 받게 된다."

25명의 선수로 시즌을 치르기 어려웠던 건 앞선 1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용철 전 경찰청 감독도 선수단 확대를 위해 노력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유감독의 업무 추진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감독은 경찰청 감독 부임과 동시에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건의해 홈구장인 벽제구장을 개조했다. 2005년부터 KBO 운영위원을 맡지 않았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6000만 원 정도 들어간 구장 개조 비용은 전액 KBO에서 부담했다.

넓어진 벽제구장 경찰청의 홈구장인 벽제구장은 유승안 감독의 건의로 지난 2월 좌우 펜스를  6m,가운데 펜스를 1m 뒤로 밀어 내는 개조 공사를 했다.

▲ 넓어진 벽제구장 경찰청의 홈구장인 벽제구장은 유승안 감독의 건의로 지난 2월 좌우 펜스를 6m,가운데 펜스를 1m 뒤로 밀어 내는 개조 공사를 했다. ⓒ 이호영


벽제구장은 지난해까지 좌우 펜스가 91m, 가운데가 110m로 경찰청의 팀 평균자책점은 7.68이나 됐다. 현재는 좌우 펜스가 97m, 가운데가 111m다. 왼쪽 펜스에는 4m 높이의 그물망이, 오른쪽 펜스에는 6m 높이의 그물망이 있어 홈런이 크게 줄었다. 경찰청의 팀 평균자책점은 3.73으로 낮아졌다.

지난해 2군 북부리그는 팀당 84경기씩을 치렀다. 올해는 89경기다. 2군 리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경기 수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2군 지도자들이 경기 수를 늘려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수가 부족한 경찰청 야구단에게는 결코 좋은 얘기가 아니다.

유감독은 "올해 당장 우승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선수가 더 들어와 여유 있게 선수단을 운용해 다치는 선수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상무도 30명이 넘는 선수단을 유지하는데 경찰청도 비슷한 수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한 경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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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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