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

인터내셔널 ⓒ 콜롬비아픽쳐스

 

26일 국내 개봉한 <인터내셔널>은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열린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주로 정치·사회적 이슈를 키워드로 다루는 작품성 높은 영화들이 다루어지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의 키워드는 "금융위기로 그 모습을 전면에 드러낸 '세계경제(자본주의)의 위기와 문제점'"이었다. <인터내셔널>이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이유는 바로 그 키워드를 시의 적절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터내셔널>에 대해 제상민 기자(리뷰 보기)는 "평범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평하면서도 "관객들 '취향'에 따라 너무나 평가가 확실히 나뉘기 때문에 리뷰하기 어려운 영화"라 하였다. 분명 관객들 취향과 오락성을 중심에 놓고 영화를 평한다면 극단으로 나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느 영화나 다 그런 것이 아닐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독립영화 <워낭소리> 역시 호러물을 즐기는 관객에겐 그저 그런 영화일 수도 있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바로 해당 작품들이 던져주려고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워낭소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훈훈한 메시지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매우 필요하고 시의 적절한 것이겠지만, <인터내셔널>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매우 암울하지만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현시대의 '시스템'에 대한 고민들을 부각시켜주고 있다고 본다.

 

'내 돈 내고 영화 보는데, 머리 아프게 무슨 숨겨진 메시지까지 고민해야 하냐?'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극중에서 IBBC를 끈질기게 추적하며 파고드는 인터폴 형사인 샐린저(클라이브 오웬 분)를 돕는 엘레아노 검사(나오미 왓츠 분)에게 그의 상사가 "세상 모두가 진실을 원하지는 않아. 앞뒤 봐가며 들쑤셔야 할 거 아냐?"라며 무기력한 몹쓸 질책을 하는 것처럼,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자세 역시 저 상사처럼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비겁한' 건 아닐지. 편하게 영화를 보려는 것도 좋지만,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무엇인가를 말해주려고 한다.

 

무기력하고 비겁한 우리에게 이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 더더욱 우리를 암울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이 이러한 암울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각성시키고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지는 사람 목숨, 용산참사가 생각나

 

극중에서 IBBC는 자신들을 가로막는 존재는 무엇이든 파괴하는 탐욕의 대형은행으로 나타난다. 자신들의 만행을 뒤쫓는 샐린저(클라이브 오웬)의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동료들, 심지어 IBBC 자신들의 멤버, 고용한 킬러마저도 '이용'한다. 이들은 전세계 자본의 흐름을 자신들이 통제하고 지배력을 확대시키기 위해서 세계 각지의 전쟁과 분쟁에 개입하고, 이를 위해서 사람들의 목숨은 적군과 아군의 구별 없이 이용한다.

 

이는 지난 달 우리에게 있었던 용산참사가 보여주는 사실들과 똑같은 것 아닐까? 자본과 권력의 탐욕과 야욕으로 인해서 죄 없는 철거민들은 물론이거니와 말단 경찰요원까지 아까운 목숨들이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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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 콜롬비아픽쳐스

 

국가든 사람이든 빚의 노예로... 금융자본의 본질, 자본주의의 현실

 

IBBC는 군사무기 거래를 통해서 정부, 군수회사, 군사집단들과 연결되어 있고 전세계 분쟁과 테러 등에 관계되어 있다. 왜 은행이 군사무기를 취급하는 걸까? 이들은 단순한 당장의 이윤이 목적이 아니라 지배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전쟁으로 생기는 빚, 즉 채무를 통해서 국가든 사람이든 빚의 노예로 만들어 자신들의 통제와 지배 아래 두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이들 은행이 운용하는 돈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예탁한 돈이다. 본질적으로 사기업인 그 은행을 운영하고 지배하는 것은 1인 혹은 소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집중된 돈을 마음대로 이용해서 모든 국가들과 사람들을 '채무'의 덫에 빠지게 하여 더더욱 자본 권력의 시스템 속으로 옭아맨다.

 

그런데 이것만이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몰랐던 사실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은행이 무슨 일을 하는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은행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이자를 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돈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주식, 예금과 펀드 등 사익추구에만 열중하며 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돈을 통해 이자를 받으며 고객(자신)은 왕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저 노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은행에 예금을 하고 있던, 빚을 지고 있던, 이 거대한 자본주의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위치는 과연 어디일까?

 

대의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신념이라는 정체불명의 껍데기를 벗어야

 

극중에서 IBBC의 핵심멤버인 웩슬러(아민 뮬러-스탈)는 샐린저에게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며, 결국 추구하던 이상은 사라지고 현실과 타협하는 괴물만 남게 된다"고 한다. 샐린저는 그런 그에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이(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IBBC를 무너뜨릴 자신을 도울 것을 요구한다. 웩슬러는 그런 샐린저에게 "IBBC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대의'를 위해 '신념'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샐린저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 즉 경찰이라는 껍데기를 그대로 쓴 채로는, 이미 자본(권력)에 의해 통제와 지배를 당하고 있는 제도․법․절차라는 틀 속에서 전전긍긍하다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결국 현실이라는 구속을 버리고 법을 초월해(어기면서) IBBC를 무너뜨리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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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 콜롬비아픽처스

 

세상 모두가 개입되어 있는 이 더러운 게임을 끝낼 수 있을까? 샐린저는 "신뢰가 아닌 돈으로 묶여 있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빌어먹을 정의는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또한 게임을 끝내기 위해서는 '만들어지고 강요된 신념이라는 정체불명의 껍데기'는 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잘못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잘못된 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타협한다. 타협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고, 타협하지 않는다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정상성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불변의 것도 아니다. 그 사회의 절대적 다수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것이 곧 정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절대 다수가 이 잘못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이상을 버리지 않고 그 이상을 현실로 새우려 한다면?

 

영화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며 막을 내린다. 한 사람(샐린저)만이 신념을 버린다고 해서, 그리고 IBBC의 핵심멤버 중 한 명이 죽는다고 해서 게임이 끝날 수 있을까? 타협하는 괴물들이 득실 되는 이 더러운 현실을 바뀌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정의와 신념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찰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통제할 수 없는 음모를 통제하기 위해 싸움의 룰을 바꿔야 한다면, 룰은 누가 바꿔야 하고 그 싸움은 누가해야 할까?'

2009.02.27 15:27 ⓒ 2009 OhmyNews
인터내셔널 자본주의 금융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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