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휴일인 15일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저예산 독립영화 `워낭소리' 관람에 앞서 제작자인 이충렬(왼쪽에서 두 번째)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휴일인 15일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저예산 독립영화 `워낭소리' 관람에 앞서 제작자인 이충렬(왼쪽에서 두 번째)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조보희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대학로에서 <워낭소리>를 봤다. 지리산을 보면서 "개발이 덜 됐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내뱉는 감수성의 소유자인 이 대통령의 영화 선택치고는 의외다.

 

아시다시피 <워낭소리>는 제작비 1억 남짓의 저예산 독립다큐멘터리다. 이명박 대통령의 '코드'로 이 영화를 분석해 본다면, <워낭소리>는 만들어 봐야 수익은커녕 적자를 면치 못하는 제품을 그것도 '꾸준히' 생산하는 '마이너 인생'들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마이너 인생들은 관객이 많아야 1000명이 넘을까 말까한 '비효율적'인 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살아남아보겠다고 '적반하장'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또 영화에 출연하는 노부부의 삶도 비효율의 극치다. 농약을 쓰면 적은 노동으로 최대의 산출을 뽑아낼 수 있을 텐데 소에게 그깟 꼴을 먹이겠다며 힘든 노동에 비해 적은 수확을 감수한다. 그리고 소는 살이 쪄야 '근수'가 많이 나가 비싸게 팔릴 텐데 할아버지는 소를 살찌게 만드는 사료는 절대 먹이지 않는다. 이 또한 경쟁에서 낙오하기에 딱 알맞은 삶의 방식이다.

 

내 상상을 뛰어넘은 이 대통령의 '놀라운' 영화 해석

 

이 대통령이 <워낭소리>를 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영화에 공감이나 할 수 있었을까 걱정이 드는 한편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했을까 궁금했던 건 이런 지독한 '코드의 불일치'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 관람이 끝난 후 청와대가 공개한 내용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본 후 이 대통령은 주인공인 최원균 할아버지를 언급하면서 "자녀 9명을 농사지어 공부시키고 키운 게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는가"라며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 했던 것이 우리의 저력이 됐고 외국인도 이에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워낭소리> 안에서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찾아내는 예리한(?) 눈썰미를 과시한 것이다. 놀라운 <워낭소리>의 재해석이자 그야말로 '이명박스러운' 영화 해석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와 노부부의 느린 걸음'에 내재한 본질적 가치에 공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기대를 했던 내가 못마땅했던 건 그래서였다. 강에 시멘트를 바르고 인공 조명을 켜놓아야만 발전이라고 믿는 그에게는 처음부터 무리한 기대였다.

 

그리고 못마땅했던 게 또 있다. 지난 10년 동안 지속돼온 독립영화 지원 정책을 축소하거나 폐지한 이들이 이날 이벤트를 "대통령으로서는 첫 독립영화 관람"이라고 강조하면서 '독립영화의 지킴이'처럼 행세한 것이다.

 

오른손으로는 뺨 때리고 왼손으로는 약 주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부터 독립영화의 홍보마케팅을 지원하는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을 폐지했다. '독립영화'라는 표현 또한 '다양성 영화'로 바꿨다. 이제 모든 영화는 상업영화 아니면 비상업영화로 분류되게 생겼다. 게다가 예술영화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 운영 주체도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 독립영화계의 숙원이었던 독립영화복합 상영관 건립이 예산 삭감으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독립영화인들은 "현 정부의 독립영화 정책이 지속되는 한 제2의 <워낭소리> 탄생은 불가능하다"고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자기가 오른손으로 한 일을 부정하고는 "만화영화와 독립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전용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 학교 학생들도 이런 영화를 많이 보며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단다.

 

"역시 작품이 좋으면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강조한 이 대통령의 인식도 걱정이다. 성공 기준이 독립영화의 핵심인 다양성이 아니라 관객 수라고 한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멀티플렉스의 독과점으로 인해 일부 상업영화는 물론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의 경우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자본의 논리에 밀려 개봉관을 잡기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 좋으면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알아야 할 사실은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관객을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이 수두룩한 것이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충렬 감독이 이 대통령의 영화 관람에 동석한 것도 못마땅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 이날 이 감독은 '독재시절스러운' 예술인 대우에 굴욕을 당했다. 감독을 직접 대통령 옆에 앉혀 언론에 이미 다 보도된 내용들을 직접 브리핑하게 만든 '촌스러운' 영화 관람 방식도 문제지만 더 심한 건 따로 있다.

 

<워낭소리> 감독의 굴욕... 뭐하러 대통령 만났나

 

이날 현장을 보도한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워낭소리 제작) 3년 했던데 그렇게 돈이 적게 들었나, 노력이 많이 들어갔겠지"라고 질문하자 불쑥 유인촌 장관이 이 감독에게 "대통령께 어렵다고 말씀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이에 이 감독은 머쓱해 하며 "배가 많이 고픕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이라는 자는 어렵지만 자신의 영화를 만든다는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 영화인들을 구걸하게 만들고 말았다.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현실이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서 낯뜨겁다.

 

사석에서 밝힌 대로 이충렬 감독이 이날 행사에 동석해달라는 요청이 달갑지만은 않았다면 가지 않고 자존심을 지켰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을 때 임순례 감독은 현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 홍보는 물론 한국 영화를 위해 스크린쿼터를 지켜내달라는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동석할 만도 했지만 임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독립영화계의 현안 해결은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을 지킬 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2009.02.16 21:42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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