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핸드볼 큰잔치 용인시청과 벽산건설의 경기의 한 장면.

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핸드볼 큰잔치 용인시청과 벽산건설의 경기의 한 장면. ⓒ 김귀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핸드볼 큰잔치 장면으로 시작한다. 결승전이지만 관중은 거의 없다. 가족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팀이 우승했다. 폭죽이 터지고 선수들은 환호한다.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은 없다. 영화에서 '핸드볼 큰잔치'는 '그들만의 잔치'였다.

이제 그런 모습은 당분간 보기 힘들겠다. 지난 8일 막이 오른 2009 SK 핸드볼 큰잔치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막전이 열린 8일에는 6000여 명의 관중이 경기가 열리는 잠실학생체육관을 찾았다. 체육관 최대수용인원이 7200명이니 자리를 거의 채운 셈이다. 역대 핸드볼 큰잔치 사상 최다 관중이었다.

9일은 평일임에도 1000여 명(대한핸드볼협회 추산)이 경기장을 찾았다. 선수와 감독의 목소리로만 가득 찼던 체육관엔 관중들의 환호와 응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핸드볼 큰잔치는 '실질적 무료입장(대한핸드볼협회에서 티켓 교환권을 출력해 입장권으로 교환)'이다. 핸드볼 인기에 '공짜'가 일조하긴 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비인기 종목'이던 핸드볼이 올해 유독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올림픽 멤버 벽산 건설] '우생순 영웅' 여기 다 있네

 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핸드볼 큰잔치 벽산건설과 용인시청의 경기에서 벽산건설 김온아가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핸드볼 큰잔치 벽산건설과 용인시청의 경기에서 벽산건설 김온아가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 김귀현


10일 경기장을 찾은 이윤아(18·여)씨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선수들에게 반해 핸드볼 팬이 됐다"고 말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2008 베이징 올림픽의 감동이 팬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 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동메달을 따내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단연 인기를 끌고 있는 팀은 여자부 벽산건설이다. 대표팀 감독이던 임영철(49) 감독을 비롯해 오영란(37)·문필희(27)·박정희(34)·김온아(21) 등 '베이징 영웅'들이 대거 포진돼 있기 때문이다.

벽산건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관중석 곳곳에서 "필희야 슛!"이란 말이 쏟아진다. 이 말은 지난 올림픽, 여자 핸드볼 독일전에서 임오경(38) MBC 해설위원이 문필희가 슛을 쏘지 않고 머뭇거리자 해설 중에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임오경 해설위원의 '전매특허'인 이 말을 이제 경기장에서 종종 들을 수 있다. 문필희 팬들의 목소리다. 물론 "필희 언니 슛!" 등으로 재가공된다. 문필희는 유독 여성 팬이 많다. 김진아(16·여)씨는 "문필희 선수를 아테네 올림픽 때부터 좋아했다"면서 "찬스에 강하고, 돌파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말했다.

 벽산건설 김온아가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있다.

벽산건설 김온아가 팬들에게 사인해주고 있다. ⓒ 김귀현


"필희야 슛!"은 물론 "온아야 슛!"도 들린다. 김온아는 올림픽 대표팀의 막내였다. 언니들 사이에서 제 몫을 다해줬던 선수다. 대표팀에선 막내였지만 소속팀에선 '주전 센터백'이란 중책을 맡고 있다. 8일 서울시청 전에서는 14점을 넣으며 맹활약했고, 10일 용인시청 전에서도 6골을 넣으며 분전했다. 김온아는 "올림픽 이후 관중과 팬이 정말 많아졌다"면서 "팬들에게 비타민제나 케이크 같은 선물과 편지를 많이 받는다"며 갑자기 높아진 인기에 어리둥절한 눈치다.

11일 현재 벽산건설은 2연승을 달리고 있다. 강력한 우승후보다.

[윤경신 복귀] 13년 만에 돌아온 '월드 스타'

 윤경신(두산)이 1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10일 경희대와 경기에서 슛을 쏘고 있다.

윤경신(두산)이 1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10일 경희대와 경기에서 슛을 쏘고 있다. ⓒ 김귀현


'전설'이 돌아왔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득점왕 8회, 리그 통산 최다골(2751골)의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월드 스타' 윤경신(36)이 13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실업팀 두산(남자부)에 복귀한 윤경신은 8일 인천도시개발공사 전에서 6득점, 10일 경희대 전에서 7득점으로 화려한 복귀 신고를 했다.

10일 경기장을 찾은 전영수(47·남)씨는 "윤경신이 데뷔할 때부터 팬이었다"며 "한국에서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렌다"고 말했다.

윤경신은 2002년 세계핸드볼연맹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올림픽(2004 아테네)과 아시안게임(1990 베이징~2002 부산)에서 수차례 득점왕에 올랐다. 선수로서 이룰 건 웬만큼 다 이룬 윤경신이지만 한 가지 못해본 게 있다.

윤경신은 "한국에서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는데 꼭 해보고 싶다"며 "올해 목표는 두산의 전승 우승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이다. 하지만 아직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몇 년간은 이 응원소리가 핸드볼장을 가득 메울 전망이다.

"경신 삼촌 파이팅!"

[임오경 감독 데뷔] 눈물의 해설자, 카리스마 감독으로 변신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이 10일 대구시청과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이 10일 대구시청과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김귀현


8일 핸드볼 큰잔치 여자부 개막전은 매우 흥미로웠다. '사제 대결', 스승 임영철(벽산건설)과 제자 임오경(서울시청)의 감독 맞대결이었다.

<우생순>의 실제 모델(김정은이 연기)이었던 임오경의 감독 데뷔전이라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임오경 감독은 14년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 복귀했다. 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서울시청은 지난해 7월 창단된 신생팀이다.

신생팀 서울시청과 올림픽 대표가 즐비한 벽산건설의 대결이라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예상 외 상황이 벌어졌다. 전반 중반까지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동점과 역전을 거듭하던 경기는 김온아를 중심으로 빠른 플레이를 펼친 벽산건설 쪽으로 기울어졌다. 결국 35-30으로 스승 임영철 감독이 승리했다.

임오경 감독의 서울시청은 10일 대구시청과 경기에서도 분전했지만 29-32로 아깝게 패했다. 잦은 볼 처리 미스와 속공 찬스를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비록 2연패 했지만 '임오경 효과'는 대단했다. 8일 경기에선 FC 서울의 서포터스가 단체 응원을 이끌었다. 임 감독은 직접 서포터스 회장을 찾아가 응원을 부탁했다고 한다. 10일에는 평일임에도 임오경 팬클럽을 중심으로 한 '아줌마 부대'가 서울시청을 응원했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울먹이는 목소리로 온 국민을 울렸던 눈물 많은 해설자 임오경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감독 자리에 앉은 그는 그 어떤 감독보다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감독으로서 팀을 지휘하는 임오경 감독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2009 핸드볼 큰잔치의 큰 재미 중 하나다.

올림픽 스타들이 즐비하고 월드 스타까지 복귀했다. 더욱 매력적인 건 이 모든 것들이 '공짜'라는 사실이다. 핸드볼과 함께 하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지금부터다.

 트라이앵글로 서울시청을 응원하는 임오경 감독의 팬클럽.

트라이앵글로 서울시청을 응원하는 임오경 감독의 팬클럽. ⓒ 김귀현


덧붙이는 글 - 2009 핸드볼 큰잔치 일정

2.8~2.13 : 잠실학생체육관
2.16~2.19 : 부천실내체육관
2.21~2.24 : 대구시민체육관
2.27~3.1 : 성남실내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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