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과속스캔들>에 대한 편견

영화 <과속스캔들>의 포스터 제목만 흠이라면 흠이었던

▲ 영화 <과속스캔들>의 포스터 제목만 흠이라면 흠이었던 ⓒ ㈜토일렛픽쳐스

지난 주말, 몇 주일을 벼르고 벼르던 영화 <과속스캔들>을 그제야 봤다. 현재 관객 수 600만을 넘겨 기근에 허덕이던 한국영화계를 구원하고 있다는 바로 그 영화.

영화를 늦게 보게 된 것은 연말부터 빠듯했던 일정도 일정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고백하듯이 위 영화가 개봉될 때만 하더라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촌스러운 제목에 싼 티 나 보이는 포스터. 게다가 주연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 그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차태현이라 하니 또 뻔한 내용에, 억지 설정이겠거니.

처음 영화 포스터를 힐끗 보고 드는 의문은 왜 한국영화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코미디 영화에 돈을 투자하는지였다. 소위 선수라면 시나리오만 대충 보더라도 그 영화 성패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터인데, 왜 사람들은 거듭 투자에 실패하는 것일까? 결국 잘못된 선택과 집중이 결합되어 현재 한국영화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내 예측은 보기 좋게 실패하였다. 서서히 입소문을 타던 영화가 이제는 어느새 기존 영화 기록을 갈아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를 보고 온 주위 사람들은 하나 같이 기대하지 않았는데 재미있었다며 그 '의외성'을 강조하였으며, 이제는 스타가 되어버린 아역배우 왕석현의 연기도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사람들이 이리도 열광하는 걸까? 의외로 재미있었기 때문에 입소문이 나는 걸까? 아님 영화 속에 또 뭔가가 있는 것일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직접 내 눈으로 영화를 보는 수밖에.

영화의 현실성

헝클어진 인생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

▲ 헝클어진 인생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 ⓒ ㈜토일렛픽쳐스


영화는 재미있었다. 혹자의 평대로 영화 <과속스캔들>은 유치한 제목만 빼면 근래 보기 드문 수작임에 분명했다. 기대를 하고 봤던 나도 이렇게 호의적인데, 기대를 않고 봤던 많은 관객들은 영화의 예상 밖 분투에 얼마나 놀라고 흡족해 했을까? 아마도 영화는 꽤 많은 이들이 한국 코미디 영화를 다시 보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 흥행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 있듯이 뻔 한 소재와 주제를 구성지게 연출한 감독의 능력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극중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음악 등이 잘 버무려졌기 때문이다. 아니면 대중들이 감동을 느끼며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기다리게 만든 이 어렵고 힘든 시대 탓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 <과속스캔들>의 경우, 그 흥행요소를 또 하나 지적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현실과 관객들이 현재 살아가는 2009년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 간의 거리다. 웃음을 목적으로 하는 코미디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우리 실생활과 영화 내용이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데 위 영화는 그 파격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관객들을 일면 설득시킨 것이다.

주인공 남현수가 중3 때 옆집 누나를 임신시키고, 편모슬하에서 자란 그 딸이 고1 때 아이를 낳아 미혼모가 되어 아버지를 찾아온다는 영화의 주요 설정. 어찌 보면 그것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난리였을, 패륜에 가까운 전제다. 애가 애를 낳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시껍하던 우리 사회.

왜 많은 이들은 이런 영화의 설정을 그냥 작품에 필요한 배경이려니 하고 넘어갔을까? 그냥 영화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주연들 연기가 출중했기 때문에 묻힌 것일까?

떳떳한 미혼모 이제 미혼모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 떳떳한 미혼모 이제 미혼모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 ㈜토일렛픽쳐스


애늙은이 황기동 점점 옅어져가는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

▲ 애늙은이 황기동 점점 옅어져가는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 ⓒ ㈜토일렛픽쳐스


그것은 결국 영화 속 사건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느 정도 있을 법한 이야기임을 의미한다. 중3 남학생이 옆집 누나와 첫 경험을 하고, 여고 1학년생이 아이를 낳아도 이제 우리 사회는 무덤덤하다. 그것은 이미 우리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며 이제는 호들갑을 떨 만큼 낯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의 성관계도 공공연히 거론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 아니던가.

따라서 관객은 영화 설정에 관대하다 못해 감정이입까지 한다. 철없던 중3 시절에 맺었던 한 번의 성관계가 자기도 모르는 임신으로 이어졌다는 논리적 비약은 이제 영화적 상상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미혼모로서 악바리 같이 생활을 영위하는 황정남의 모습은 자기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극사실이 되었다. 요컨대 이전 같았으면 억지스러운 설정이 이제는 그럴 듯한 소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왕석현군의 연기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극 중에서 황기동은 혀를 내두를 만큼 애늙은이요, 영악한 어린이인데 그것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에서 그런 꼬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근대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거나 낮아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영화 속 판타지

그러나 영화가 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실성은 코미디 영화가 웃길 수 있는 전제가 되지만, 위 영화가 가슴 훈훈한 가족영화로서 해피엔딩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극악한 현실을 넘어서는 판타지의 속성을 일면 지니기 때문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애비 없이 자란 황정남의 아버지가 실은 현재 라디오 DJ를 하는 과거 아이돌 스타이고, 억척스럽게 홀로 아이를 키워온 황정남이 참담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아버지 피를 이어받았을 음악에 대한 소질 및 꿈과 열정 때문이고, 황정남이 그녀의 꿈에 좀 더 쉽게 다가 설 수 있었던 것은 특수한 직업을 가진 그녀의 아버지 덕분이고.

결국 영화는 사회와 개인 간 갈등의 고비에서 판타지적 속성을 드러낸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그 현실성은 그 현상만을 언급할 뿐, 더 이상의 대안이나 해결점은 제시하지 못한다. 편모슬하에서 차별받는 아이가 어떻게 꿋꿋하게 자라야 하는지, 어린 나이에 미혼모라는 굴레를 뒤집어쓴 여성이 어떻게 이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황정남의 꿈 그녀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음악

▲ 황정남의 꿈 그녀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음악 ⓒ ㈜토일렛픽쳐스


과연 황정남이 연예인 아버지를 통해서 말고 다른 방법으로 척박한 현실을 개척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수많은 이들이 소위 '인생 한 방'의 목적으로 연예계 문을 두드리는 이 시대, 황정남의 꿈을 꼭 음악으로 다루어야 했을까? 영화는 미혼모라는 그녀의 사회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악에 대한 꿈을 너무 쉽게 다루었고 또한 쉽게 이루어내었다.

물론 내가 코미디 영화 한 편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코미디는 코미디일 뿐, 그 안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려는 나의 욕망은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하는 이의 과욕일 뿐이다. 그러나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해외 입양시킬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 잔인한 사회에서 그나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담담히 미혼모를 이야기하는 이 영화가 조금 아쉬운 것을 어찌하겠는가.

어쨌든 영화는 아직까지 순항 중이다. 못 보신 분들은 서둘러 극장에 가시길 바란다. 안 그래도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이 시대, 영화 한 편으로 잠시나마 위안을 받으시길.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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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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