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논에 모를 심는다. 삐뚤빼뚤 심겨진 할아버지 모 옆으로 기계가 심고 있는 가지런한 이웃집 모가 보인다. 할아버지가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백번 쯤 반복하면 겨우 한 줄 정도 자리 잡는 모. 소는 풀밭에 앉아 할아버지가 일하는 걸 지켜보고 있다. 큰 눈을 꿈적이며 한 없이 바라본다. 할아버지도 허리를 펴다 소를 한 번 바라본다. 엄마가 눈앞에 있는 걸 보고 안심하는 아이처럼 서로를 그렇게 번갈아 본다. 존재감만으로 안심이다.

 

워낭소리의 한 장면 소와 할아버지 사이에 말없이 흐르는 마음

▲ 워낭소리의 한 장면 소와 할아버지 사이에 말없이 흐르는 마음 ⓒ 워낭소리

 

몸으로 쓴 노동일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소를 밑천 삼아 자식 아홉을 공부시켰다. 명절에나 찾아오는 자식들은 이제는 다 늙어빠져 쓸모없어진 소, 할아버지를 계속 일하게 만드는 소를 그만 내다 팔라고 이죽거리지만 할아버지는 1년 농사를 탈탈 털어 자식들에게 줄 쌀 한 가마씩을 만든다. 그러면 소는 쌀가마가 실린 달구지를 끌고 우체국으로 향한다.

 

간디는 인간은 책을 보는 시간을 좀 줄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육체노동에 바쳐야 한다고 했다. 인간이 머리로 노동하면 할수록 육체가 지닌 노동성은 퇴화하거나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몸을 부릴 때만이 주어지는 대가를 폄하하며 그러다보니 흙을 부정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어쩌면 또 다른 간디다. 할아버지는 사람은 숨이 붙어있는 동안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살아왔다. 매일 아침 눈뜨면 들에 나가 몸을 부려 종일 일했고 해가 지면 소달구지를 타고 퇴근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동 일기를 쓰신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아버지는 성(誠)실한 사람인데, ‘이룰 성’의 부수를 이루는 ‘말씀(言)을 몸으로 이루며(成)’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할아버지 옆에서 40년을 살아오며 함께 일한 소는 자신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켰다며 사는 동안 할아버지를 원망했을까.     

 

나레이터의 힘

 

할아버지 밭을 제하고 사방천지 죄다 농약을 친다. 그깟 소 꼴 먹인다고 농약 안치고 자신을 이리 고생시키는 영감탱이가 야속한 할머니. 내가 먹는 밥 때문에 약을 안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소를 위해 한 평생 지켜온 이 지독한 환경주의자가 할머니는 서운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서운한 것은 소와 할아버지 둘 사이를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 둘 사이에 흐르는 눈 꼴 신 애틋함에 내뱉는 하소연. “에이고, 저 소만 없으면. 저 소 땜에 나만 고생하고.”

영화는 소 한 번 비추고, 비 오는 처마 한 번 비추고, 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번 비추고 그러다 무심하게 계절이 오고가는 하늘을 한 번 비춘다. 한 없이 느린 영화. 그러나 놀랍게도 이 느린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이는 하소연장이 할머니다. 할아버지와 소에게만 이 영화를 맡겨두었다면 애통터져 영화를 어찌 보았을까. 할아버지는 소처럼 말이 없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플 때도 “아이, 아파~”하는 외마디가 전부다. 그런 영화에 할머니는 소와 할아버지의 다정함에 눈을 흘기기도 하고, 서방 잘못만나 평생 이 고생이라는 변주를 쉬지 않고 읊어댄다. 그 변주가 어떨 땐 판소리의 추임새 같기도 하고, 어떨 땐 꼭 래퍼(?)의 랩 같기도 하다. 할머니는 늘 구시렁구시렁 거려도 영감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것이라고 혼자 말을 중얼대고, 그럴듯한 영정사진 한 장 없는 할아버지를 위해 “웃어”라고 큰 소리 치며 당신과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찍기도 한다.

 

소리가 전하는 그리움

 

 폴 인 러브(fall in love). 한 번 쯤 절절하게 ‘사랑 안으로 떨어져’본 사람은 안다. 헤어지고 난 다음에 남는 연인(이었던)의 소리와 체취를. 거리를 지나다 스친 낯선 사람에게서 헤어졌던 이의 향기를 맡을 땐 되돌아가 붙잡고 얘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저기요~ 그 향수 쓰지 마세요.” 

 

 소는 가고 워낭만 남았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남은 워낭은 소를 잊기 위해 상자 안에 곱게 담아두어야 하는 옛 물건이 아니다. 흔들기만 하면 가버린 소를 다시 불러내주는 영물인 거다. 나무에 힘없이 기대어 워낭을 흔드는 할아버지의 마른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 눈물 안에 ‘자신을 팔러’ 우시장에 가야만 하는 사정을 짐작하던 생전의 소가 보인다면 내 눈이 지나치게 좋은 걸까? 

2009.01.19 13:26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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