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간 계속된 추억 여행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때로는 "그땐 그랬지"라며 예전을 추억했고, 때로는 "그때 정말 그랬었나" 새삼 놀라기도 했다.

어떤 독자에게는 철없던 꼬마 시절의 기억, 다른 독자에게는 불타오르던 청춘의 기억, 또 다른 독자에게는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였지만, 그의 글에 함께 울고 웃은 건 모두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6년 5월 31일에 김은식 시민기자가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했던 '야구의 추억'이 2009년 1월 6일, 100회를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952일의 대장정이었다.

근성의 '데드볼왕' 김인식으로 시작해, 팬과 함께 달렸던 '만수 행님'까지, 한 시대를 거쳐 갔던 100명의 야구 선수들은 김은식 기자의 글을 통해 다시 부활했다.

'야구의 추억'이 가진 '공감'의 힘

 <야구의 추억> 100회 연재를 완결한 김은식 시민기자

<야구의 추억> 100회 연재를 완결한 김은식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안홍기


야구에 관련된 글은 수도 없이 많다. 왕년에 날렸던 선수들의 업적을 돌아보는 기사는 전혀 새롭지 않다. 각종 스포츠 신문들이 비시즌에 야구면을 채우기 위해 정기적으로 '추억의 선수'들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야구 기사의 홍수 속에서 '야구의 추억'은 어떻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야구는 모름지기 기록의 스포츠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그들이 남기는 숱한 드라마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야구의 추억> 1권 머리말에 있는 문구다. 이 말처럼 김은식 기자는 '야구의 추억'을 통해 기록보다는 기억, 성적보다는 사람에 집중했다.

김은식 기자는 야구 선수 경험이 전혀 없다. 현장에서 선수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던 취재기자도 아니다. 야구에 관련된 연재를 하는 그에게 그런 부분은 치명적이었다.

"당연히 기술적인 부분,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 선수들의 심리 등에 관해서는 스스로 답답했죠. 얘기를 들어도 단번에 확 느낌이 오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원래 선수들과 인간관계가 있던 것도 아니라서 사생활이나 은밀한 내막, 그런 건 접근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 핸디캡은 오히려 '야구의 추억'의 매력이 됐다. 김은식 기자는 어쩔 수 없이 (혹은 의도적으로) 팬의 시선으로 기사를 썼고, 그렇게 완성된 기사는 독자들에게 공감이라는 코드로 다가 왔다.

독자들이 몰랐던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뉴스의 역할은 못할지라도, 독자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독자들은 '야구의 추억'을 통해 히어로즈의 전 단장이자 야구 해설가 박노준이 아닌 뼈가 부러지면서까지 홈으로 돌진하던 '선린상고의 박노준'을 만났고, 한국시리즈 4회 우승에 빛나는 김재박 감독이 아닌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신기에 가까운 개구리 번트를 선보이던 '여우 김재박'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각자의 추억들과 함께 말이다. 

100명 중 가장 애착이 갔던 선수는?

무려 100명의 선수가 김은식 기자의 손을 거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됐다.

그 중에는 최동원·김성한·이만수·송진우·양준혁처럼 프로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선수들도 있고, 김영직·고 김상진·김인호·오봉옥처럼 열혈 야구팬이 아니면 조금은 낯선 이름들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김은식 기자 본인이 쓰면서 가장 애착이 갔던 선수는 누구일까? 명백한 우문이었다. 열 손가락 깨물면 어떤 손가락이 제일 아픈지 묻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김은식 기자에게서 현답이 돌아왔다.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죠. 박철순·박정태·임수혁 등은 그 선수를 아는 모든 사람과 공감을 나누는 즐거움이 있어서 애착이 갔고, 크게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은 '당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하면서 저의 내밀한 기억과 정서를 끄집어내는 재미가 있었죠."

 김은식 기자는 가장 애착이 가는 기사로 '염경엽편'을 꼽았다.

김은식 기자는 가장 애착이 가는 기사로 '염경엽편'을 꼽았다.ⓒ 현대 유니콘스 홈페이지


김 기자는 이어서 예상 밖의 이름을 언급했다.

통산 타율 1할대에 불과한 돌핀스의 내야수 염경엽이었다.

"돌핀스 시절 조웅천과 염경엽을 내가 직접 키우는 선수들을 보는 듯한 심정으로 응원했는데, 조웅천은 엄청난 선수로 성장한 반면 염경엽은 그냥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무리했죠. 개인적으로는 '염경엽 편'을 좋아합니다. 항상 '마이너' 쪽이 좀 더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야구의 추억'으로 단행본을 2권이나 내고, <오마이뉴스>에서 상(2007년 올해의뉴스게릴라 '연재 부문', 2008년 명예의숲 으뜸상)도 받았지만, 김은식 기자는 독자들과의 교감이야말로 '야구의 추억'을 연재하면서 느낀 최고의 보람이었다고 한다.

"임수혁 선수 써놓고 달리는 댓글 읽으면서 잠깐 눈물도 흘렸죠. '아, 이 사람들에게 야구가 그냥 야구가 아니구나. 좀 더 분발하고 열심히 써야 겠다'라는 생각도 들고…."

'야구의 추억'을 좋아한 것은 일반 독자뿐만이 아니었다. 이 기사의 주인공이었던 선수들에게도 아련한 향수로 다가온 모양이다.

"몇몇 선수들에게 직접 전화를 받았고, 동봉철·최창호·성준 선수 등은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그런 얘기는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해하죠. 자기 친구인 모 선수도 다뤄달라고 얘기하는 분도 있고…, 특히 성준 코치는 글 읽고 '왕년의 라이벌'이었던 김건우 선수를 만나서 얘기 많이 했다면서, 다 잊혀진 시절 얘기 기억해주고 떠올려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952일, 즐거운 '추억 여행'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야구의 추억'을 연재하면서 김은식 기자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야구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야구에 대한 관심도 깊어졌다. 새해부터는 사회인 야구에도 도전할 생각이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얼마 전부터 전업 작가가 됐다는 점이다(김은식 기자는 그동안 논술 강의와 글 쓰는 일을 병행했다). '작가 김은식'으로서의 새해 계획을 물었더니 "돈 되는 글은 무조건 쓴다"는 농담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김은식 기자는 새해부터 '전업 작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김은식 기자는 새해부터 '전업 작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오마이뉴스 안홍기


"봄에는 해태 타이거즈와 80·90년대 호남 사회사에 관한 책이 나올 것 같고, 또 상반기 중에 전기를 비롯한 청소년 책 한두 권 나올 것 같아요. 작가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업을 꾸준히 해보려고요."

김은식 기자는 마지막으로 '야구의 추억'이 100회까지 올 수 있기까지 큰 힘이 돼준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냥 뒀으면 서너 편 쓰다가 제풀에 지쳐 떨어졌을 기획이었는데, 이렇게 100편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독자들의 댓글과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고마움을 마음에 빚으로 안고 있다가, 글로 갚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김은식 기자는 지난 952일 동안 야구라는 종목 안에서 펼쳐진 수많은 드라마와 영웅들을 추억해 왔다. 이제는 독자들이 <야구의 추억>을 추억할 시간이 됐다.

덧붙이는 글 1월 6일 이메일로 인터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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