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야말로 세계 공용어'라는 말처럼 2008년에도 전 세계가 스포츠에 웃고 울었다. 경제위기 한파에 모두 잔뜩 움츠려 있지만 스포츠는 오늘도 놀라운 감동과 이야기를 쏟아내며 우리를 위로해주고 있다.

특히 올림픽이 열린 올해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스포츠 영웅들이 나타나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었고, 여기에는 '한국은 좁다'고 외치며 세계무대로 나선 스포츠계의 한류스타들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번에는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해외스포츠로 눈을 돌려보았다. 독자들도 이 중에서 각자 가장 인상 깊었던 키워드를 하나 골라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중화 스포츠 공화국] 중국, 100년 만에 이룬 꿈

 2008 베이징올림픽 폐막식이 열리고 있는 올림픽주경기장(왼쪽)과 수영경기장 워터큐브(오른쪽)

2008 베이징올림픽 폐막식이 열리고 있는 올림픽주경기장(왼쪽)과 수영경기장 워터큐브(오른쪽)ⓒ 베이징올림픽조직위


2008년 스포츠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은 나라를 물어본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주저 없이 중국을 꼽을 것이다.    

그동안의 오랜 잠에서 깨어나 경제, 외교 등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거인'이 된 중국에게 베이징올림픽은 전 세계에 자신들의 강력한 힘을 과시하기에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고의 무대였다.

'100년 동안 꿈꿔왔다'던 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성공한 중국은 9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올림픽주경기장으로 13억 대국의 위용을 과시하더니 화려한 빛을 뿜어내는 수영경기장' 워터큐브'로 첨단기술도 자랑했다.

그러나 중국이 가장 자랑스러워한 것은 종합순위표 맨 꼭대기에 있는 자신들의 이름이었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무려 51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미국을 물리치고 사상 첫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스포츠를 통해 국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중국이 올림픽 개최의 꿈에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동안 꾸준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실이었다.

['넘사벽']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영웅들

 우사인 볼트

우사인 볼트ⓒ 베이징올림픽조직위

베이징올림픽이 중국만의 무대는 아니었다. 우사인 볼트는 땅에서, 마이클 펠프스는 물에서, 옐레나 이신바예바는 하늘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이들에게는 금메달이 아닌 자기 자신이 도전의 대상이었다.
자메이카의 볼트는 베이징올림픽 남자 육상 100m, 200, 400m 계주 등 3개 부문에서 모두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특히 100m 경기에서 결승선을 통과하기도 전에 속도를 늦추고 환호하면서도 세계신기록을 세운 그에게 3개의 금메달은 '덤'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무려 7개의 세계신기록과 함께 8개의 수영 금메달을 목에 건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는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역시 수영의 마크 스피츠가 보유하고 있던 7관왕을 넘어서며 올림픽 단일대회 최다관왕이라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린 시절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이라는 심리적 장애까지 극복했다는 이야기까지 알려지면서 펠프스는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는 미디어에 최고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러시아의 '미녀새' 이신바예바는 베이징올림픽에서 무려 5m05를 날아오르며 또 다시 자신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고 2004 아테네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장미란

장미란ⓒ 베이징올림픽조직위

이처럼 다른 평범한 선수들에게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과 같은 최고의 스포츠스타가 해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 역도의 장미란은 '맡겨놓은 금메달 찾으러 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보란 듯이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고, 여자 양궁대표팀은 중국 관중들의 방해 응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올림픽 6연패라는 대기록을 남기고 돌아왔다.

올림픽 무대는 아니었지만 남자 마라톤의 '지존'이라 불리는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는 지난 9월 열린 독일 베를린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3분 59초를 기록하면서 그동안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2시간 3분대 진입에 성공했다.

[심판들의 수난] 판정 잘못하다 폭행당할라?

이처럼 스포츠 영웅들은 부와 명예를 거머쥐며 행복을 만끽한 반면에 심판들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베이징올림픽 남자 레슬링에서는 선수가 심판의 판정에 항의해 메달 수여를 거부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그레코로만형 84㎏급에 출전한 스웨덴의 아라 아브라하미안은 동메달을 차지했지만 심판의 오심에 항의하며 메달을 시상대에 내팽개치고 퇴장해버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메달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내렸지만 진상 조사에 나선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심판의 오심을 인정하고 선수의 손을 들어주면서 심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태권도에서는 선수가 심판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남자 80kg급에 출전했던 쿠바의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가 경기 도중 응급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시간초과를 이유로 기권패가 선언되자 이에 격분해 심판을 발차기로 폭행한 것이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은 즉각 영구제명이라는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렸지만 최근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에 골치가 아픈 태권도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해 뜰 날]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

 유로 2008에서 44년 만의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 축구대표팀

유로 2008에서 44년 만의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 축구대표팀ⓒ 유럽축구연맹


이제 올림픽 밖으로 눈으로 돌려보자. 올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수십 년이나 '음지'에서 고생하던 많은 이들이 오랜 기다림 끝에 우승이라는 감격을 누리며 당당하게 '양지'로 걸어 나왔다.

'미니 월드컵'이라 불리는 유로 2008(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스페인이 지난 1964년 우승 이후 무려 44년 만에 다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동안 월드컵 등 메이저대회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스페인은 이번 우승으로 '만년 우승후보'라는 꼬리표를 털어냈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러시아 축구의 돌풍 역시 놀라운 화제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러시아를 사상 처음으로 유로 대회 4강까지 이끌면서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누렸던 감격을 러시아에게도 안겨주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자축하는 필라델피아의 라이언 하워드

월드시리즈 우승을 자축하는 필라델피아의 라이언 하워드ⓒ 필라델피아 필리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2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했다. 필라델피아는 최근 박찬호와 입단 계약을 맺으면서 내년에는 한국 야구팬들의 관심까지 받게 되었다.
비록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필라델피아에게 우승 반지를 넘겨주었지만 창단 이후 10년 동안 9번이나 최하위를 기록했던 탬파베이 레이스 역시 '꼴찌 돌풍'을 일으키며 아름다운 조연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들보다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지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9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박지성은 비록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해 한국 축구팬들에게 짙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모든 이들이 그의 공로를 인정하고 있다.

오랜 인내의 시간을 견딘 끝에 달콤한 우승을 맛본 이들에게 송대관의 '불후의 명곡' <해 뜰 날>을 선사해주고 싶다.

[숙녀시대] 소녀들, 숙녀가 되어 세계를 '접수'한다

 김연아

김연아ⓒ 국제빙상경기연맹

앳된 소녀에서 내년이면 어느덧 19살 숙녀가 되는 김연아는 세계 정상급의 실력과 함께 귀여운 외모로 '피겨요정'에다가 '국민여동생'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김연아가 출전했던 2008~2009 국제빙상경기연맹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경기는 2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던 드라마들을 울리고 말았다.

비록 김연아 역시 일본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 밀려 2위를 차지하며 3년 연속 파이널 무대 우승을 이루지 못하고 울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아한 연기력으로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이제는 동계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더 큰 도전을 하게 된다.

역시 여자 골프의 20살 숙녀 신지애는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기대되는 선수다. 올해 메이저대회 브리티시오픈을 비롯해 3승을 차지하며 해외언론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신지애는 박세리, 김미현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던 한국 골프팬들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15년 넘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를 지배해온 스웨덴의 '골프여왕' 애니카 소렌스탐의 은퇴 발표에 누구보다 기뻐했을 '신 골프여왕'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로서는 신지애의 등장에 아마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일 것이다.  

[경제위기] 스포츠도 피할 수 없었던 경제 한파

이처럼 스포츠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지만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 한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동안 여러 스포츠대회는 물론이고 구단들과 선수들을 후원하며 스포츠마케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던 기업들이 경제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마케팅 비용을 대폭 줄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파산 위기에 몰린 이른바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스포츠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제너럴모터스(GM)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의 후원계약을 파기했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에 대한 후원도 중단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미국의 '미디어제국' 트리뷴 컴퍼니 역시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자회사인 시카고 커브스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차갑게 얼어붙은 투자심리 탓에 아직까지 마땅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주머니가 가벼워진 관중들을 잡기 위해 내년도 경기장 입장료를 동결하거나 내릴 수밖에 없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졸지에 후원사까지 잃게 되면서 성적이 아닌 생존을 놓고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경제가 살아야 스포츠도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겪고 있는 스포츠가 과연 2009년에도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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