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2월입니다. 한 해 동안 가장 잘한 사람들, 1등이었던 사람들을 뽑는 자리가 곳곳에서 열립니다. 1등만 수고했겠습니까. 중간도 꼴찌도 모두 열심히 달렸기에 2008년이 마무리됐겠지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뒤에서 묵묵히 받쳐준 이들을 다룹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90명 중 88위를 한 사이클 선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완주였지만, 그를 알아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도로 사이클 박성백 선수입니다. [편집자말]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거리는 약 250km. 시속 100km의 고속버스로는 약 세 시간. KTX로는 두 시간 걸리는 이 거리를 여덟 시간 만에 자전거 타고 가 본 사람이 있을까. 더구나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뭔가를 먹을 수도, 잠시 쉬어 갈 수도 없는 치열한 경기라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이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딱 한 명 있다. 바로 2008 베이징올림픽 도로 사이클 코스를 완주한 박성백(23·서울시청) 선수. 박 선수는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도로 사이클 부문에 출전해 역대 올림픽 코스 중 가장 어렵다고 평가 받는 만리장성 코스를 7시간 3분 4초 만에 완주했다.

완주한 선수 90명 중 성적은 꼴찌 수준인 88위. 그러나 그의 뒤에는 완주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선수 53명이 더 있다. 베이징올림픽의 '아름다운 꼴찌' 박성백 선수를 17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07 뚜르 드 코리아에서 우승하는 박성백 선수의 모습.

2007 뚜르 드 코리아에서 우승하는 박성백 선수의 모습. (올림픽 출전 당시 사진은 구할 수 없었다.) ⓒ 박성백 제공


- 사이클이 동양인에게 유리한 종목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도로 사이클에서는 아시아권에서 메달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그러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종목 자체가 동양인에게 불리하지는 않아요. 제 생각에는 서구의 사이클 선진국들에 비해 동양권에서는 아직 인프라가 덜 갖춰져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같습니다. 프로에 나가는 사람들 자체가 아직은 소수니까요. 미숙한 부분이 많죠.

예를 들면 예전에 독일에서 훈련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훈련량과 식사를 칼로리로 계산해서 엄격한 식단을 짜서 먹어요. 훈련을 5000㎉만큼 하면 오늘은 4000㎉를 먹는 식이죠. 사이클은 먹는 게 무척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도 무조건 '많이 운동하고 많이 먹어야 한다'하는 생각이 좀 자리 잡혀 있거든요. 독일이나 스페인 같은 사이클 강국의 프로 선수들은 훈련 중에는 짜고 매운 것은 절대 먹지 않지요."

- 도로 사이클 부문에서 20년만의 출전이었는데 올림픽 출전이 확정 될 때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사이클 선수가 국제 주요대회에서 입상을 하게 되면 순위에 따라서 해당 국가와 선수 개인에게 포인트가 쌓이게 되요. 여기서 국가가 받는 포인트를 '내셔널 포인트'라고 해서 이 포인트를 많이 쌓은 상위 5개 국가까지는 국가별로 출전권을 다섯 장씩 줘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베이징올림픽 이전까지 쌓은 내셔널 포인트가 근소한 차이로 6위에 머무르는 바람에 저는 제가 국제 대회에서 쌓았던 포인트를 가지고 올림픽 출전권을 받았습니다."

- 그러면 올림픽에는 혼자 출전한 거네요.
"그렇죠. 그런데 사실 사이클은 마라톤이랑 비슷해서 같이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가 매우 중요해요. 그런데 베이징에서는 같이 달려줄 친구가 없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혼자 장거리 경기에 남겨진 적이 처음이었어요. 항상 팀에서 다른 팀원들에게 도움을 받는 처지였거든요."

국내 도로 사이클 1인자, 그러나 세계의 벽은 높았다

- 베이징올림픽에서 박 선수 경기를 보면 23km짜리 만리장성 순환 코스를 도는데 세 바퀴 까지는 선두그룹이었었거든요. 그런데 선두 그룹에서 멀어진 네 번째 바퀴부터 좀 쳐지기 시작했어요. 이게 아까 얘기했던 페이스메이커가 없었기 때문인가요.
"음, 일단 수준 자체가 달라요. 출발선에 서서 첫 바퀴를 달리는데 옆에서 저랑 같이 달리는 선수들이 그야말로 제가 어릴 적부터 TV를 통해서만 봐오던 쟁쟁한 선수들이었어요. 저에게는 좋아하던 연예인들이랑 같이 시합을 뛰는 셈이라 이 선수도 보고 저 선수도 보고 신기했지요.

그렇게 그냥 무난하게 첫 바퀴들 돌았어요. 근데 이 사람들 속도가 점점 빨라져요. 첫 번째 바퀴보다 세 번째 바퀴가 훨씬 빨랐고, 같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세 번째 바퀴 보다는 아마 마지막 바퀴가 더 빨랐을 거예요. 저도 신기해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다가 속도계에 시속 40km에 가깝게 나오는걸 보고 문득 오버페이스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아. 이게 세계 수준이구나. 이대로 따라 가다가는 완주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겠다' 싶어서 제가 속도를 줄였어요."

- 선두 그룹에서 쳐지고 나서 다른 선수들에게 계속 추월당하면서 혼자 달린 게 그 때 부터죠? 네 바퀴째부터 70km정도를 혼자 달렸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제가 이번에 베이징에서 7시간 정도 자전거를 탔는데. 여태까지 그렇게 오래 탄 적이 없어요. 그냥 도로에 난 차선만 보면서 계속 달렸어요. 달리면서 멈춰서 쉬고 싶다는 생각은 정말 수백 번도 넘게 했어요.

외국 선수들은 한 나라에서 여러 선수가 참가해서 자국 선수들끼리 서로 페이스 조절을 해줘요. 다섯 바퀴 지나니까 자국 선수들을 위해서 페이스 조절 해주다가 중도에 포기한 선수들이 풀밭에서 물마시고 누워서 쉬는 게 보여요. 그 선수들이 결코 못하는 선수들이 아니에요. 정말 쟁쟁한 선수들도 중도에 포기하고 그러고 있는 걸 보면서 저도 포기하고 싶었죠. 아니 저 사람도 쉬는데….(웃음)

그런데 애당초 올림픽에 나오게 된 계기도 있고 자기 휴가 희생해가면서 제 훈련 도와준 서울시청 팀원들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었어요. '내가 여기서 내리면 그 동안 그 사람들 도와준 거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다'하는 생각 때문에 이를 악물고 달렸죠."

- 세계의 벽은 이렇게 높구나 싶기도 했겠어요. 박성백 선수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마지막 바퀴는 어떻게 탔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금메달 딴 선수가 스페인 선순데 저보다 40분 일찍 골인했어요. 제가 마지막 바퀴를 도는데 뭐가 시끄러워서 코스 오른쪽을 스윽 보니까 이미 일찍 들어온 선수 셋 데리고 시상식 마치고 세리머니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경기 중인데 이미 시상식도 다 끝나고…,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죠. 저도 나름 자전거 좀 타는 줄 알았었는데 '아, 사이클 때려치워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저는 혼자 너무 오래 달려서 제가 완주한 선수들 중에 꼴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 뒤에 2명이 있더라고요. 홍콩 출신의 우킨산 이라고 저랑 친한 선수가 있는데 그 친구가 89등을 했어요. 그 친구가 경기 후에 밥 먹자고 해서 경기 다음날 식당에서 만났죠. 그 친구한테도 '혼자 돌면서 경기 중에 무슨 생각했냐'고 물어봤는데 그 친구도 '무슨 생각으로 돌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 만리장성 코스가 245.4km고 박성배 선수 기록이 7시간 3분이니까 시속 34.8km로 달린 셈입니다. 본인의 기록에는 만족하세요?
"아마 사이클 선수라면 누구나 평지에서 시속 40km이상은 나올 거예요. 하지만 이번 코스는 초반 10km가 '에누리 없는' 오르막길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원래 짧은 거리를 빠르게 질주하는 스프린터 타입이거든요. 단거리 출신 선수가 마라톤을 출전한 셈이니 저는 제 기록에는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단거리' 선수가 '마라톤'에 나온 이유

 2007 뚜르 드 코리아 경기 모습

2007 뚜르 드 코리아 경기 모습 ⓒ 박성백 제공


박성백 선수의 소속팀인 서울시청은 2007년에 열렸던 뚜르 드 코리아에서 박성백 선수의 막판 스퍼트로 역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9일간 매일 연속으로 진행된 이 경기에서 박 선수는 1등 5번, 2등을 1번, 3등을 2번이라는 놀라운 개인 기록을 세웠다. "9일 연속 출전해서 8일을 입상한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는 것이 사이클 계의 평가.

촉망 받는 스프린터인 그가 올림픽에서 장거리 종목인 도로 사이클에 출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어떻게 보면 운동선수에게 좀 멍청한 질문 같기는 한데 올림픽에는 왜 나오셨어요?
"(웃음) 멍청한 질문이 아니고요 세계적으로 보면 사이클에는 올림픽보다 큰 경기가 더 많이 있어요. 가장 유명한 프랑스의 '뚜르 드 프랑스' 같은 경우는 100년도 넘은 대회죠. 사실 사이클 선수들에게는 올림픽보다는 그런 경기들이 더 매력 있죠.

많은 선수들이 처음에 사이클을 시작할 때는 '뚜르 드 프랑스'를 바라보고 시작해요. 그런데 하다 보면 그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경륜으로 빠지게 되죠. 경륜은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원래 사이클 선수였던 사람은 경륜 선수되기가 어렵지 않거든요. 좀 빨리 간다 싶은 선수는 군대 다녀오자마자 22살에 경륜으로 가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사이클 선수가 나이 들면서 걷게 되는 길이 그렇게 나 있어요. 저는 그 길 말고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 이를테면 '뚜르 드 프랑스' 같은 세계 대회를 목표로 준비하는 선수 말인가요.
"그렇죠.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누가 '경륜 안 할 거냐'하고 물어보면 '절대 생각 없다'고 말해 왔어요. 사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거든요.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제가 부상을 당해서 프로 선수생활을 못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경륜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는 건데 저는 저 자신을 벼랑 끝에 밀어 넣듯이 일부러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죠.

국내에서 사이클 입지가 작다 보니 올림픽 때도 저는 TV에 나오지 못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세계 각국에서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어요. 누나가 호주에 사는데 호주에서는 7시간 내내 TV에서 생중계 해주고 제가 화면에 잡히면 간단한 프로필과 '어리지만 빠른 선수'정도로 해설자가 멘트도 해 줬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방송국에 '왜 사이클 중계는 안 해주냐'고 따지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한다는 말이 올림픽 이전에 중계권 협의를 해야 하는데 사이클은 그걸 못해서 중계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호주에서 친구가 제 경기 녹화한 게 있어서 그걸 줬는데 그 뒤로도 결국 소식은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박지성 선수처럼 차근차근 세계 무대를 밟아 나갈 생각입니다. 제가 세계 대회에 얼굴을 자주 비추고 좋은 성적을 내고 그러면 차츰 경륜 말고 다른 쪽으로 진로를 잡는 후배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아, 사이클에서 이번엔 올림픽에 출전했니?"

 17일 만난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박성백 선수.

17일 만난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박성백 선수. ⓒ 김동환


-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여러 가지 일화가 있어요. 보통 세계대회를 나가면 사이클 선수에게는 마사지사, 자전거를 정비해주는 '메카닉'이 붙어요. 그런데 저는 이번 올림픽에 그런 걸 전혀 지원을 못 받았어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죠.

국내대회라면 제가 따로 여분의 자전거를 한 대 가지고 다니는데 이번 베이징에는 못 갖고 갔어요. 결국 경기 중에 40km 지점에서 타이어가 펑크 나는 사고가 있었고, 저는 다른 선수 쌩쌩 지나갈 동안 타이어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야 했죠. 그것만 아니었어도 좀 더 일찍 들어왔을 텐데.(웃음)

또 하나는 선수단 내에서도 도로 사이클에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었어요. 얼굴은 모르지만 한국인이고 협회 분 같아서 인사를 했는데 대뜸 절 보고는 '그래, 어떤 종목이니'하고 물어보셔서 '도로 사이클입니다'라고 얘기하니까 '아, 사이클에서 이번에 (올림픽) 나왔니?'하시는 거예요.

많이 서운했어요. 아무래도 체육계에 계신 분도 몰랐다는 얘기니까요. 역시 사이클 종목이 제대로 지원받고, 대접받으려면 좋은 성적 내고 올림픽 효자종목 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그럼 그저 참가에만 의의를 두는 게 아니라 올림픽 메달도 딸 수 있을까요?
"제가 올해 스물 셋이고 올림픽은 한 세 번 정도 더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리면 대략 다음다음 번 정도에는 메달 권 진입을 노려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 비인기종목들 중에는 운동하는 것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종목들도 더러 있잖아요. 사이클은 어떤가요.
"제 생각인데 사이클은 별로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속해있는 서울시청 팀이 국내에서는 잘하는 선수가 가장 많은 팀이라서 평균적으로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웬만한 회사원보다는 연봉을 잘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실례지만 박성백 선수는 어느 정도나 버나요.
"저는 좀 많이 받는 편이에요. 1억에 적당히 못 미치는 수준. 좋은 경륜 선수가 되면 억대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죠.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사이클 선수가 경륜 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고요. 그러니까 금전적인 압박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에요."  

- 이제 올림픽도 끝났는데 박성백 선수의 다음 목표는 뭔지. 또 이 세상의 다른 꼴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우선 저는 올림픽이 끝나고 일본의 '메이탄 홈포'라는 프로팀에 들어갔고요. 국제 시합 준비는 이 팀에서 할 예정입니다. 차근차근 실력을 높여서 스물일곱쯤에는 유럽의 큰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요. 후배들에게도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기회가 있으면 도전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제 경험으로는 뱀의 머리보다는 용의 꼬리가 훨씬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전국에 있는 꼴찌 여러분! 비록 지금은 꼴찌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웃을 날이 올 거예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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